[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기획]
아파트 30만 일자리, 중장년층 찾는다
④ 주택관리사 합격한 ‘젊은 소장님’들

 

 

“처음 봤을 때 너무 앳돼 보여서 깜짝 놀랐어요.” “관리사무소장님인지 일반 직원인지 구분이 안 됐어요.” 

인천 연수구 희영무지개아파트의 입주민들은 처음 관리사무소를 찾을 때 적잖이 당황한다. 관리사무소장이 어엿하게 자리에 앉아 있지만 “소장님은 어디 가셨느냐”고 찾는 일도 다반사다. 
 

김명준 관리사무소장
김명준 관리사무소장

27세 관리소장 생애 첫 직장
7급공무원 진출 꿈도 꿔요
일처리 빨라 입주민에 인기

이 아파트의 김명준(27) 관리사무소장은 “처음 만나는 입주민들은 제게 몇 번이고 소장이 맞느냐고 확인한다”며 “대답을 듣고 나면 다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며 웃었다. 

김 소장은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한 뒤 회계 관련 직종을 찾다가 주택관리사에 관심을 가졌다. 지난해 24기 주택관리사보에 합격하고 12월에 바로 부임한 김 소장은 이곳이 생애 첫 직장이다. 

이 아파트 입주민 이경국(75) 씨는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나 싶었는데 젊은 소장님이라 역시 활동적”이라며 “일이 생길 때마다 처리가 빨라서 나이 든 사람 입장에서는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수의 주택관리사가 정년퇴직 후 아파트를 새로운 일자리로 선택하는 것을 감안하면 김 소장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김 소장은 “친구들이 처음에는 주택관리사라는 직종을 특이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20대부터 시작할 수 있는 평생직업이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정부용 관리사무소장
정부용 관리사무소장

경험보다 의지 평가 받았죠
4차산업혁명 시대가 와도
아파트 관리 일자리는 필요

서울 서대문구 DMC이랜드해가든아파트의 정부용(32) 소장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두 번째 일자리로 주택관리사를 선택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3년 동안 일했던 정 소장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민하다 3년 전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처음에는 또래 친구들이 신기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정 소장은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친구들은 ‘그게 뭐 하는 일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한 20~30대의 청년들은 주택관리사 자격증에 대해 “생소하다”, “처음 들어 본다”, “공인중개사는 알지만, 주택관리사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따르면 1990년 제1기 주택관리사가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50대 주택관리사(48.94%)가 가장 많았다. 이어 60대의 비율이 32.14%에 이른다. 50~60대가 전국 아파트에서 일하는 주택관리사의 80%나 된다. 

정 소장은 “주택관리사 시험 응시 자격에 나이 제한은 없지만,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할 때는 보이지 않는 나이의 벽에 가로막힌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택관리사가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탓에 젊은 합격자들이 갈 곳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 소장은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한 뒤 지금의 아파트에 취업하기까지 약 1년이 걸렸다”며 “이력서를 스무 군데 이상 넣었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면접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1년여 간 수십 번의 고배를 마셨던 정 소장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김대군(65)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다. 이 아파트는 자치 관리로 운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정 소장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가 20대였다”며 “나이가 어리다 보니 동대표의 90% 이상은 채용을 반대했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그는 주택관리사로서의 경험보다는 정 소장의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경험은 쌓이게 된다”며 “소장을 채용할 때 성별, 나이 등에 얽매이지 않고 힘들어하는 청년층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회장들이 도와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주택관리사가 입주민들을 직접 상대하는 만큼 연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젊은 관리사무소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던 이들도 이제는 청년 주택관리사를 향해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이 아파트 김명환(68) 경비원은 지난여름 정 소장에게 받았던 배려를 기억한다. 그는 “경비원들이 대부분 60~70대라 더위에 취약한데 한여름 오후에는 야외업무를 제하고 휴식을 권유했다”며 “젊은 소장이라 추진력이 강한 것이 장점인데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미안해했다. 

두 청년 소장이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주택관리사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입을 모아 ‘정년이 없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이들만이 아니다. 본지가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함께 전국 주택관리사 41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가족 또는 지인에게 주택관리사를 추천하겠다고 말한 응답자들 또한 정년이 없는 점 (70.4%)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정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주택관리사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무인 시스템이 각종 일자리를 대체하더라도 아파트에서만큼은 인력이 꼭 필요할 것으로 그는 분석했다. 

현재 근무 중인 주택관리사 중 90.8%가 “미래에도 주택관리사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공동주택관리는 단순한 건물관리뿐 아니라 복합적인 업무가 필요하므로 로봇보다 사람이 더 잘할 것(63.9%)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본지가 만난 두 청년 소장은 정년은 없지만 현실에 안주하지는 않겠다는 자세다. 

정 소장은 현재 전기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며 자기 계발에 여념이 없다. 그는 “젊은 주택관리사가 현장에서 잘 적응하고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젊음이 주는 열정과 당당한 모습을 살려서 성실히 근무에 임한다면 앞으로 젊은 소장을 선호하는 단지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활용해 7급 임기제 공무원으로 진출하는 구상을 한다. 그는 “지자체들이 공고하는 임기제 공무원의 조건에 주택관리사 자격증 및 소장 경력 등이 포함돼 있다”며 “지난해에는 5개 지역에서 채용공고를 냈는데 올해는 더 많이 올라올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임기제 공무원은 전문지식이나 전문기술 등이 요구되는 업무를 담당하도록 일정 임기 동안 일반직으로 임용된다. 2013년 공무원 직종 체계가 일반직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능직과 계약직을 폐지하는 대신 임기제 공무원 제도가 도입됐다. 

김 소장은 “올해 임기제 공무원에 합격하면 현장 경험을 살려 관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지하 주차장 LED나 옥상 고가수조 교체 공사 등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공동주택 지원사업이 많다”며 “소장들 다수가 모르고 지나치는 사업들을 널리 알려서 관리현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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