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화제의 주택관리사 2인 인터뷰
■ 임상호 주택관리공단 제주지사장 /김연미 주택관리사

 

언론진흥재단 지원 기획

백세시대가 되면서 ‘평생직장’이라는 말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현재의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다. 이젠 ‘평생 직업의 시대’로 바뀌면서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주택관리사의 인기도 높아가고 있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주택관리사 시험 응시자가 매년 1만7000명에 이른다. 주택관리사 시험은 2020년부터 상대평가로 바뀌면서 매년 합격자 수가 정해져 있다. 올해 11월 30일 배출될 주택관리사가 1600명이니 경쟁률이 10:1 이상인 셈이다. 7월 발표된 1차 합격자는 50대가 가장 많았고 40대와 60대가 그 뒤를 이었다. 
주택관리사는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깨고 30대의 젊은 나이로 주택관리사에 합격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독특한 이력을 뽐내며 20여 년간 공동주택 관리현장을 뛰고 있다. 임상호(57) 주택관리공단 제주지사장과 시인 겸 작가로 활동 중인 김연미(55) 주택관리사를 만났다.                                         

 

임상호 주택관리공단 제주지사장
임상호 주택관리공단 제주지사장

 

입주민 행복 추구 사명감・자부심 필요

‘아파트 경영’ 생각으로 업무 임했으면

주택관리사가 된 계기는. 

“개인 사정으로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하다 보니 일반 기업에는 취직이 어려웠다. 당시 일반 기업들은 지원자 나이 제한을 두고 있었다. 그때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던 선배가 있었다. 그의 권유로 이 길에 들어서게 됐다. 2000년에 35세의 나이로 주택관리사 6기 자격증을 취득했다.”
 

젊은 나이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아파트 소장은 나이가 있는 사람의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어려웠다. 동대표들이 ‘소장님’이라 부르지 않고 ‘어이, 소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젊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서 이 일을 하느냐’는 말도 들어봤다. 그래서 더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소장은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다.”

그는 2001~2004년 3년간 소장으로 일한 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부산시회 사무국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본회 사무총장을 거쳐 올해 주택관리공단 제주지사장으로 부임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부산에서 처음 소장을 시작했다. 체계적인 공동주택 관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장들이 주변에 많았다. 이들은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법령이 바뀌거나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정리해서 소장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년이 지나고 주변 소장들에게 입소문이 나자 협회에서 제안이 왔다. 부산시회에서 1년 정도 근무한 뒤 본회로 갔다. 취임 시 4명으로 시작했던 사무국이 2009년 임기를 끝내고 나올 때는 10명으로 인원이 늘어났다. 임대주택 및 주상복합에 주택관리사를 의무 배치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도 본회에서 근무하는 동안 모두가 힘을 합해 이룬 일이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주택관리공단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임대주택을 공급하면 이를 관리·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임대주택 입주민 중에 고령자, 장애인, 홀몸노인 등의 비율이 매우 높다. 따라서 주택관리 임대 운영 업무를 기본으로 하면서 최근에는 임대주택 입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주거복지 업무를 더욱 신경 쓰고 있다. 과거에는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주거복지 업무의 필요성은 증가하는데 업무를 전담할 인력이 부족해 안타깝다.”
 

현재 공동주택 관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민 중 약 70%가 아파트에 거주할 만큼 공동주택은 압도적인 숫자를 점유하는 주거 형태가 돼 버렸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아파트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환경이 급변했지만, 각자의 머릿속에 공동주택 주거문화에 대한 인식은 아직 정착하지 못한 것 같다. 이로 인해 층간소음, 주차 문제 등 다양한 갈등이 파생되는 듯하다.” 

임 지사장은 예전에 봤던 “‘우리 집의 바닥은 아래층의 천장입니다.’라는 캠페인 문구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최근 층간소음을 둘러싸고 밤 10시 이후에 세탁 금지, 샤워 금지 등을 고지하는 아파트도 생겨났다. 그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민원을 처리하지 말고 입주민들에게 공동주거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질서를 잡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입주민과 관리종사자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아파트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관리직원이 아파트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아파트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시설관리, 회계 관리 등 일상적인 관리업무뿐만 아니라 입주민들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직원이 먼저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겠다. 뉴스에 입주민이 관리직원에게 ‘우리 집에서 일하는 하인’이라는 등 막말하는 경우가 나오기도 한다. 현장에서 일할 때 그런 입주민을 만나면 ‘당신은 우리가 제공하는 관리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고 우리는 전문 직업인’이라고 말해준다. 입주민들은 관리직원이 전문 직업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택관리사를 꿈꾸는 중장년층과 후배 주택관리사에 조언한다면. 

“아파트 소장은 제2의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30대에 시작했듯이 젊은 층도 이 일을 선택하고 잘 해낼 수 있다. 물론 지원 연령이 비교적 자유로워 현실적으로는 정년퇴직을 앞둔 연령층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다. 그들에게 이전에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쌓은 경험을 관리업무에 잘 활용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전에 했던 일이 기술직이었다면 시설 관련 업무를 더욱 잘 볼 수 있고, 재무를 담당했다면 회계 업무를, 계약을 담당했다면 아파트의 사업자 선정 등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과거에 지녔던 권위는 내려놓고 아파트를 관리하고 경영한다는 생각으로 관리업무를 하길 바란다.”
 

 

김연미 주택관리사
김연미 주택관리사

 

현실 안주 말고 새로운 것 계속 배워야
‘스트레스 탈출’ 자신만의 활력소 찾길

주택관리사가 된 계기는. 

“어려서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29세 때 제주를 떠나 홀로 서울에서 학원 강사를 하던 중, 학원 데스크에 놓인 주택관리사 홍보 안내문을 보게 됐다. 마침 자격증을 하나 따고 싶었던 참이라 공부를 시작했다. 시설 분야 용어가 생소해 암기하는 것만도 오래 걸렸다. 1998년 12월에 주택관리사 5기 합격증을 받고 다음 해 제주에 내려와 소장으로 취업했다. 그때가 서른둘이었다.”

 

32세의 나이에 소장으로 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 

“당시에는 나이도 어리고 세상 물정도 몰랐다. 이론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직원이 ‘저기 가서 전기 패널 좀 보고 오세요’라고 말하는데, 패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2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소장으로 10년 정도 일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해결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고이 접어뒀던 작가로서의 꿈이 생각났다. ‘지금 해도 될까? 글을 쓰면 나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등단한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해 2009년에 시 ‘연인’으로 등단했다.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조금씩 풀렸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소장으로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관리사무소장으로 일하며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나. 

“나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지 않을 때 힘들었다. 어떤 일이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데 이때 만족하지 않는 소수를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것들을 혼자 삭이다 보니 오히려 나한테 독이 되더라. 감정을 풀어놓을 곳이 없었는데 글을 쓰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소장과 작가를 병행하는 비결은.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고 할 일이 많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지금은 소장이라는 직업이 생업이니 아파트 관리업무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소장의 업무가 최우선이고, 퇴근 후나 주말에 틈틈이 글을 쓴다. 그러다 보니 엄마나 아내의 역할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두 가지 직업이 각각의 업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몇 년 전 ‘제주의 소리’라는 신문에 시에 대한 감상문을 기고한 적이 있다. 박흥순 시인의 ‘나, 떠나가야 하기에’라는 시를 읽고 故 이경숙 주택관리사가 떠올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이처럼 주택관리사로서 느끼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기회가 된다면 어디에든 글로 써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김 소장은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 오는 날의 오후’ 등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최근에 ‘알다시피 제주 여행’ 책을 출간했다. 다른 여행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주 여행안내서는 이미 너무나 많이 나와 있다. 워낙 기발한 책들이 많지만 가끔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제주에서 발간되는 대부분의 여행안내서는 제주 토박이 작가가 아닌 한 달 살기, 혹은 입도한지 얼마 안 된 작가들이 쓰는 경우가 많다. 진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제주도를 안내하는 책을 써보고 싶었고, 슬픈 역사인 제주 4.3의 이야기도 함께 하고 싶었다. 제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관광지에 얽힌 사연을 알고 관광했으면 좋겠다.” 
 

주택관리사와 작가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주택관리사로서는 이제 조금 편안해졌다.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면서 재미있는 일들도 많다. 예전에 1~2년 정도 일을 쉬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파트가 자꾸 생각나 현장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관리는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나갈 생각이다. 글을 쓰는 건 삶의 활력소다. 대작을 쓰려는 욕심은 없고, 그저 일상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정도면 족하다.” 
 

주택관리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주택관리사는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 때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충분한 경험이 있는 중장년층이 하기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분야가 얽혀 있다 보니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많은 만큼 그 안에서 문제점도 많이 발생한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전선의 사람이 바로 소장이다. 입주민, 동대표, 직원들과 충분한 소통을 해야 공동주택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

김 소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자신만의 활력소를 꼭 찾아보라고 덧붙였다. 원래의 꿈을 좇아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은 행운아라며. 

어떤 소설은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챕터마다 소개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아파트 단지’라는 소설 속이 아닐까. 그곳에는 관리사무소장, 관리직원, 입주민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소장이 하는 모든 일은 소설 속 에피소드다.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각각의 에피소드는 아파트 관리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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