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기획] 아파트 중장년층 일자리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라는 직업군에는 다양한 직종이 포함돼 있다. 

관리사무소장은 공동주택 형태에 따라 주거행복지원센터장이나 생활지원센터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장이 알아둬야 할 법과 규정이 수십 가지다. 수행하는 업무는 건물관리, 시설관리, 안전관리, 노무관리, 행정관리, 민원관리에 각종 행사관리까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단지 사정에 따라 하는 일도 조금씩 다르다. 의무관리단지의 관리사무소장이 되기 위해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직업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경쟁률은 매우 높다. 

아파트에 다양한 관리종사자가 근무한다는 사실을 입주민조차 잘 모른다. 입주민은 경비원이 편하게 경비업무만 한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화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제각기 전기, 보일러, 공조, 설비, 소방, 배관 등 분야별로 필요한 기술자격을 소지하고 있다. 기사의 주요 일터는 지하에 있고 옥상, 계단 등을 다니며 일하기 때문에 입주민들에게는 존재감이 제로에 가깝다. 

경리와 각종 커뮤니티 관리자, 강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아파트 규모와 성격에 따라 어엿한 직장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두 필수인력이고 각기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경비와 청소처럼 힘들고 고되며 박봉인 직업을 누가 하고 싶어 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구인광고를 내면 10대1이 넘나드는 경쟁률을 보일 만큼 취업 경쟁이 치열하다.

관리종사자 직업군은 100세 시대, 건강한 중장년층에게 주목받는 취업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불안요소는 고용의 불안정이다. 과거 근로계약서의 계약기간은 1년이 보통이고, 자동 연장되는 것이 관례였다. 언제부터인가 단기 근로계약이 판치더니 급기야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서까지 나돌고 있다. 업무 비중이 크고 입주민 접촉이 많은 경비직과 소장직에서 더 두드러진다.

한 단지에서 10년 이상 일하는 소장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20년이 넘도록 거목처럼 꿋꿋하게 버텨온 사람들이 있다. 관리사무소장직의 평균수명을 늘리고 있는 2명의 주택관리사를 만났다.

조경순 신성노바빌 관리사무소장

조경순 관리사무소장
조경순 관리사무소장

취임땐 여성 소장 자체가 화제
작은 봉사・희생이 큰 보람으로
‘소장님의 힘찬 숨결 있었기에’
아름다운 입주민과 22년 행복

조경순 씨는 주택관리사 3회 출신으로 올해 환갑을 맞았다. 소장 근무 28년차로 며칠 후면 현재 일하는 아파트에서만 22년을 꽉 채우게 된다. 소장 생활의 80% 이상을 한 단지에서만 했다.

“사회생활의 시작은 한 중소기업 사무직이었다. 당시 풍조 상 여직원은 결혼과 동시에 퇴사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지인이 주택관리사 자격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줘 1994년에 취득하게 됐다. 그 이듬해 관리사무소장으로 나가게 됐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여성이라면 그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실제로 조 소장은 1998년 한 일간지 화제의 인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의 일터 서울 송파 신성노바빌아파트는 한강이 내다보이는 236세대의 아담한 단지다. “재건축 입주단지인데, 위탁관리업체에서 3명의 주택관리사를 추천했다. 재건축조합 임원들이 면접을 봤는데 내가 선택받았다. 여성임에도 조경기능사, 보일러 취급기능사 등 자격을 취득한 점과 겸손함이 좋은 인상을 줬다고 들었다. 2000년 9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쭉 출근하고 있다.”

조 소장과 아파트는 다양한 상을 휩쓸었다. 송파구청의 모범관리자상(2004년), 명품아파트 우수상(2007년), 국토해양부 모범관리자표창(2012년), 서울시 에너지절약 경진대회 우수상(2015년)과 최우수상(2016년)이 그것이다. 개인 감사패 등을 합하면 20건이 훌쩍 넘는다. 지자체 등으로부터 받아 낸 지원사업 금액만도 3억3000만 원에 달한다. 

조 소장은 최근 새로운 자격을 취득했다. 

“장기근속하다 보니 어린아이가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봤고, 멋진 중년이 어느덧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과정도 지켜봤다. 탄생의 기쁨과 노화의 아픔을 함께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관리를 넘어 입주민과 생로병사를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새로 땄다. 입주민의 애환을 함께하며 좀 더 깊은 관리를 하고 싶어서 그랬다.”

한 아파트에서만 강산이 두 번 변했다. 어떻게 변했을까?

“예전에는 층간소음이란 용어자체가 없었다.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당연시 됐다. 이후 개인적, 가정적 프라이버시가 강조되는 반면, 이웃 간 정과 공동체 의식은 많이 희박해졌다. 예전에는 아파트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드물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많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어르신 혼자서 반려동물과 지내는 것을 볼 때면 가족해체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조 소장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이사, 서울시회 부회장, 여성회장 등을 지낼 정도로 대외활동도 왕성하다. 

“주택관리사 28년을 돌아보니 작은 봉사와 희생이 나중에 훨씬 큰 보람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협회도 그렇고, 단지도 그랬다. 그럴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희열과 행복을 느낀다. 관리직원들을 배려해주는 아름다운 입주민들과 22년을 보냈다는 게 최고의 행운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무탈하게 단지 관리를 이끌고 싶다.”

2년 전 조 소장의 근무 20주년을 맞아 한 입주민이 공개편지를 보내왔다. 다음은 ‘20년을 한결같이’라는 제목을 가진 입주민 편지의 일부. 

부임 20주년을 맞아 입주민이 보낸 공개편지
부임 20주년을 맞아 입주민이 보낸 공개편지

‘우리 아파트가 송파구에서 최우수 명품아파트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지요. 조경순 소장님의 힘찬 숨결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중략) 앞으로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줘 진솔한 소통의 장을 펼쳐주십시오. 기쁨의 열매 맺으시도록 작은 응원이라도 드리고 싶어요.’

 

전종기 개포주공5단지 관리사무소장

전종기 관리사무소장
전종기 관리사무소장

이전 경력・기술자격 위력 발휘
겨울 난방・여름 누수 문제 해결
대화・소통으로 주민 갈등 풀어
신뢰 얻어 재건축 사무장 겸임

전종기 씨는 주택관리사 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이미 공동주택 관리종사자였다. 그는 보일러기사와 공해관리기사 자격을 취득해 피혁공장과 모 방송국 기술책임자로 일했다. 여기에 에너지관리기사와 환경관리기사자격까지 딴 후 1981년 9월부터 서울 잠실5단지아파트 근무를 시작했다.

“1985년에 주택관리사 제도가 생길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1990년 제1회 시험에 합격해 주택관리사 원년멤버가 됐다.”

잉크 바랜 22년전 임명장이 굳건하게 걸려있다.
잉크 바랜 22년전 임명장이 굳건하게 걸려있다.

자격을 취득하고 바로 소장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전 아파트 기술과장직을 바로 접을 수가 없어 2년을 더 근무하고, 지역난방이 공급되기 시작한 1992년 관리사무소장으로 처음 부임했다. 현재 근무 중인 개포주공5단지로 옮긴 것은 22년 전이었다. 지금도 그의 책상 뒷벽에는 잉크가 바랜 2000년 3월 1일자 소장 임명장이 굳건하게 걸려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근무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내가 왔을 때 이미 20년 가까이 된 아파트여서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터져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난방이었다. 난방비는 많이 부과되는데 방이 따뜻하지 않으니 입주민 불만이 컸다. 장마철이면 발코니 누수문제도 꽤 심각했다.”

이런 고질병을 해결하는데 전 소장의 이전 경력과 여러 기술자격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지역난방시스템을 수동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열손실이 심하고 비효율적이었다. 몇 번의 연구와 실험을 거쳐 자동제어 방식을 도입했다. 2010년 공사비가 2000만 원 들었는데, 첫해에만 7000만 원의 난방비를 절약했다. 당시에는 꽤 큰 금액이었다. 또한 따뜻하지 않은 집은 배관을 점검하고 막힌 배관을 모두 교체했다. 그 후 방이 따뜻해졌는데 돈은 덜 나가니 입주민 만족도가 크게 올랐다. 장마철 누수 역시 옥상 우수관이 문제여서 이를 외부드레인 방식으로 빼내 해결했다.”

그는 전형적인 엔지니어 스타일의 관리자다. 전기·소방·열관리·환경·위험물취급·기계설비 등 여러 기술 분야에 막힘이 없다. 그런 그에게도 힘든 점이 없을 리는 없었다.

“간혹 관리자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꼭 필요한 지출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입주민이 있다. 또 이웃과 관리직원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부녀회나 입주민대표들의 알력과 주도권 다툼이 있을 땐 관리자로서 중립적인 처신을 하는 게 꽤 힘들었다. 이런 문제에 왕도가 따로 없다. 대화와 소통을 더 자주 하고, 힘들수록 내 집을 관리한다는 마음을 먹고, 상대방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는 자세로 임했다. 진실은 통하기 마련이다.”

그의 어깨 뒤로 서울시와 강남구 등으로부터 받은 10여 개의 표창장과 인증서들이 반짝거린다. 

입주 40년이 다 된 그의 근무단지는 곧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이런 현실은 그에게 또 하나의 자격증을 따는 계기가 됐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계획수립부터 청산에 이르기까지를 다루는 도시정비사업 전문가라는 민간자격 정비사업전문관리사를 취득했다. 그 후 입주민의 요청에 따라 재건축조합이 결성된 2020년부터 조합의 사무장직을 겸하고 있다. 입주민의 요구와 목소리를 전하는데 많은 기술적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해 주더라.” 

전 소장이 입주민들로부터 얼마나 큰 신뢰를 받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그는 이 아파트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예정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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