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건조하고 너무 각박한 여자다. 눈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바로 치우라고 하고 가을 낙엽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바로 치우라고 극성이다. 오래된 아파트 복도 바닥은 세월의 흔적에 변색돼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데 지저분하다고 손가락질을 해댄다. 더 박박 닦으라고 요구한다. 신축해서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아파트 복도 바닥과 비교하는 것 같다. 승강기를 조금 전에 깔끔하게 청소했는데도 얼룩이 그대로 있다고 지적한다. 불결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소독약으로 더 닦아주면 소독약 냄새가 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런 등살에 남아나는 미화원이 없다. 미화원이 새로 들어와도 얼마 근무하지 못하고 관뒀다. 미화원이 관두는 이유는 ○동에는 청소에 대해 극성맞게 지적해대는 A 여성 입주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일하고 있는 미화원은 2년 넘게 계속 근무 중이다. B 여성 미화원이다. B 미화원의 입사 면접 때가 생각난다. “소장님, 제가 귀가 조금 어두운데 괜찮나요?” 말을 시켜보니 조금 어두운 게 아니라 많이 어두웠다. 그때 나의 뇌리에서 뭔가 번쩍이는 게 있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내일부터 근무하세요.” 그렇게 근무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열심히 재밌게 일하고
“돈은 안 받겠습니다. 감사패야 이미 제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안 받을 수 없어서 받겠지만 감사포상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고, 다른 입주민들이 좋아하는 일에 쓸 돈은 나에게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일에 쓸려고 돈을 벌었지요.” 아파트 1층에 사는 입주민 A씨는 평소 수목에 관심이 많아 1층 베란다 밖의 화단 수목을 재미 삼아 틈틈이 손질하면서 보살폈다. 관리직원들이 수목 전지작업을 할 때는 음료수도 사다 주고 곁에서 말없이 작업을 도와줬다. 그리고 자기 비용으로 수목 이름표를 모양 있게 만들어서 아파트 전체 나무에 직접 부착했다. 이름표는 이런 식이다. ‘회양목 Buxus Koreana 회양목과, 상록성 관목으로 잎은 마주 달리고 두꺼우며 끝이 둥글거나 오목하다. 꽃은 4~5월경에 노랗게 피고 열매는 삭과로 6~7월에 갈색으로 익는다.’입주자대표회의에서 그 사실을 알고 의결을 거쳐 감사패와 감사포상금을 준비하고 입대의에 A씨를 초청했다. 그런데 그는 감사포상금은 거부하고 감사패만 갖고 갔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공과 사를 가리지 않고 돈은 얼마든지 쓰겠다고 했다. 그는 평판대로 여기저기 자선 모
“이 아파트에 채용된다면 Y씨가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요?”“제가 이 아파트에 채용된다면 아파트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관리과장 채용을 위해서 이력서와 주민등록등본, 자기소개서를 갖고 온 면접자에게 내가 한 질문과 면접자의 답변이다. 나는 그때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라는 답변을 기대했다. 업무를 인계하고 퇴직할 관리과장이 기다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입주민이 말을 다 할 때까지 기다릴 줄 몰랐다. 이런 식이었다. “안됩니다! 그런 민원은 전유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세대에서 알아서 해야 합니다. 저희가 해결할 민원이 아닙니다.” 입주민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면 그 정도는 관리직원으로서 입주민에게 서비스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입주민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 않고 입주민이 말하는 앞부분만 듣고 선뜻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만다. 그의 이런 점이 입주민들과 갈등 요소가 됐고 자기 혼란이 됐다. 그래서 나는 Y씨에게도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싶었다. 너무 추상적이고 문학적인 답변을 기대한 걸까?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싯다르타는 그 당시 유명한 상인 카마스와미를 찾아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소환장이 왔다. 3년 전에 근무했던 아파트에서 기존 동대표와 새로 선출된 동대표 사이에 고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관리사무소에 근무했던 관리사무소장의 진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소환통지를 받은 후부터는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었다. 소환통지서 한 장이 일상적인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아파트 관리업무는 물론 개인적인 생활의 리듬마저도 완전히 깨졌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는데 조사받을 걸 생각하니 머리가 하얘졌다. 그러나 불응할 수가 없다. 소장이라는 직책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일했는데 이런 일까지 당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경찰 조사 과정 중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는 TV 속 장면 등이 떠오르면서 별별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었다. 여러 날 밤잠을 설쳤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로 해당 아파트에서 근무할 때 사용했던 업무수첩 두 권을 들고 경찰서에 갔다. “소장님, 경찰서에 더는 출두할 일 없습니다. 소장님 업무수첩에 있는 내용이 고발 사건을 다 풀어줬습니다.” 조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한 말이다. 그는 정해진 양식대로 조사를 끝내고, 그 당시
“소장님, 오늘 10시 30분부터 근린공원에서 마을잔치가 있으니 꼭 참석해주세요!”C관리사무소장에게 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을 일부 예치하고 있는 동네 새마을금고에서 전화가 왔다. 새마을금고에서 주관해 아파트 입주민들과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마을잔치 행사가 있으니 꼭 참석해달라는 전화였다. C소장은 아파트 정화조 직관공사로 지중 배관의 구조를 파악하는 일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서 편한 작업복 차림으로 갔다. 이미 많은 아파트 입주민들과 인근 주택에 사는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행사 진행요원은 C소장을 반갑게 맞이하더니 행사장 맨 앞에 마련된 내빈지정석으로 안내했다. 순간 C소장은 후회했다. 내빈지정석의 다른 초청 인사들에 비해 외모에서 초라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귀빈 소개를 할 때를 비롯해 행사 진행 내내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편안한 마음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복장에 신경 좀 쓰고 올걸! 그 일을 겪은 후 C소장은 관리사무소에 정장 재킷을 꼭 준비해두고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배지가 장착된 재킷이다.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 소혹성 B612호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이 소혹성을 1909년에 터키 천문학자가 천체망원경으로 봤다. 이 천문학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