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연속기획 - 음지의 노동자-미화원

 

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② 더 춥고, 더 더운 청소업무
③ 수용소만도 못한 휴게시설
④ 어머니들의 6일 근무
⑤ 시리즈를 마치며

류순옥(가명) 미화반장은 지난해 가을 가족과 함께 태국여행을 다녀왔다. 류 반장의 환갑에 대비해 두 딸과 외아들이 3년 전부터 별러 온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한글날이 금요일이었으므로 직장인은 목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3박 4일의 일정을 소화하기에 무리가 없었고, 다달이 곗돈을 모아 여행경비도 충분했다. 남편은 은퇴해 쉬고 있었지만 문제는 류 반장이었다. 토요일에도 청소일을 해야 하므로 목, 토 이틀을 빠지는 게 쉽지 않았다. 자녀들은 이참에 그만 두고 쉬었다가 일을 하고 싶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보라고 권유했지만 집과 가깝고 깨끗한 단지의 일자리를 놓치긴 싫었다.
고심 끝에 관리사무소장에게 사정을 털어놓은 그는 입대의 회장의 승인 덕에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다. 꿈 같은 여행을 다녀온 류 반장은 자기 구역을 나눠 청소해 준 동료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에 속한다. 대부분 1년 계약직인 미화원들은 단 하루만 빠져도 바로 교체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


한국은 ‘장수국가’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70년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 58.6세, 여성 65.5세였으나 2014년에 태어난 아이의 수명은 남자 79.0세, 여자 85.5세가 될 것으로 추정됐다. 불과 40여 년 만에 20년이나 늘어난 것이다. OECD 평균보다 높고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하는 수치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오래’ 살 것이냐 하는 것이다. 갤럽이 발표한 2014년 세계 웰빙지수에서 한국은 145개국 중 117위에 랭크됐다. 세계 최하수준이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자살률 역시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청년실업이 국가적 난제가 된 마당이니 이젠 늙은 부모가 자녀에게 의존하는 풍속은 먼 옛날 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은퇴 후에도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모아 둔 돈이 없는 노인들은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60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는 10년 동안 2.5배 증가했다. 특히 60~64세 고용률은 20대 고용률보다 높게 나타났다.
은퇴한 노인들에게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로 손꼽히는 직종 중의 하나가 남자에겐 경비원, 여자에겐 미화원이다. 홀대받는 직종이지만 그래도 늙은 노동자를 받아주는 몇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나 용역업체에서 구인광고를 내면 수십 명의 지원자가 몰려드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특히 미화원의 경우 정해진 휴게공간이 없어 지하주차장이나 배수시설 같은 자투리 공간에 얼기설기 칸막이를 해놓고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몸을 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지 기자들이 찾아 나선 아파트의 미화원들은 생각보다 밝았다.
“이 나이에 작은 액수지만 생활비라도 번다는 게 뿌듯하다”며 자부심도 보였다. 그 밝은 표정과 자부심이 다행스러웠지만 마른 체구에 빨갛게 곱은 손을 보이기 싫어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힘든 점이나 희망사항을 물으면 하나 같이 주변을 의식하며 “만족한다”, “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특히 자신들의 휴게공간을 보여주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공인된 공간이 아닌 불법 또는 탈법시설이다 보니 괜히 언론에 노출됐다가 그만한 공간이라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지만 그 안엔 냉장고, 선풍기, 전기난로, 전기장판 등의 편의용품들도 구비돼 있었다. 간혹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마련해 준 안전하고 깔끔한 제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재활용터에서 주워온 것들이다. 당연히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워 보였다.
본지가 새해 첫 기획으로 미화원을 찾아 나선 이유는 그들이 공동주택 관리 구조상 최하위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관리종사자에겐 자기 ‘자리’가 있지만 미화원만 자기 자리가 없다. 아니 모든 청소구역이 그들의 ‘자리’인 셈이다. ‘청소하러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에게 무슨 자리가 필요하냐’는 고정관념 탓이다.
그러나 기계가 아닌 이상 사람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더구나 팔팔한 청춘이 아닌 점점 굳어가는 노년의 몸이다. 차갑게 식은 점심도시락을 먹고 온기도 쬐지 못한 채 일하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전통적인 굴뚝산업의 산업재해가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서비스 업종의 산재가 늘어나는 걸 정부에서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적절한 휴식은 업무효율을 높여주고 사고로 인한 사용자의 처리비용 등 손해율도 경감시켜준다.
신년기획 ‘음지의 노동자-미화원’편이 이번 회로 막을 내린다. 독자의 반응이 뜨거웠다. “다음 차례는 누구냐?”는 기대 섞인 질문도 많이 받았다.
오늘 본지의 사설 제목은 ‘소녀’다.
“미화원들은 어머니가 됐고, 할머니가 됐지만 그들도 전엔 찬란한 ‘소녀’였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어머니들이다. 한 평생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며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역군들을 길러냈다. 그 어머니들에게 얼음장 같은 손을 잠시나마 녹일 수 있도록 따뜻한 난로와 쉼터가 제공되길 바란다”고 고언한다.
공동주택엔 입주민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입주민의 편의와 안전한 삶을 위해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법규정엔 입주민 위주의 시설들만 명문화돼 있을 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에 대해선 별다른 규정이 없다. 그렇다보니 입주민의 시혜가 있어야만 칸막이 시설이라도 얻을 수 있는 궁박한 처지다.
그런 동정만으로 종사자의 복지를 기대하는 건 구시대적이다. 법의 이름으로 관리직원에 대한 복리를 규정하는 게 선진사회의 모습이다.
작고 마른 체구여도 기자에게 밝고 건강한 미소를 보여준 미화원들. 그들이 잠깐씩이나마 온풍기와 에어컨의 호사를 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게 진짜 ‘명품아파트’다.
【이경석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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