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하의 매연과 악취 속 땀에 전 점심식사

신년특집 연속기획 - 음지의 노동자-미화원 이경석 편집부장l승인2016.01.13 18:00:53l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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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② 더 춥고, 더 더운 청소업무
③ 수용소만도 못한 휴게시설
④ 어머니들의 6일 근무
⑤ 시리즈를 마치며

 

나이든 여성이 일을 찾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어떤 일자리도 나이든 여자를 반기지 않는다.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건 젊은이의 체력으로도 버거운 육체노동 밖에 없다.
평생 살림만 하다가 남편이 세상을 뜨거나 실직과 질병 등으로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져 뒤늦게 청소노동에 나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로 지하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일하기에 주민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그림자 같은 생활을 찾아가 본다.                <편집자 주>


a공동주택의 공지사항은 주로 게시판을 활용해 알리게 된다. 이 게시판에는 아파트의 각종 행사 소식, 관리비 관련 사항, 입주자대표회의 소집 공고, 각종 용역 및 공사 관련 입찰내용을 비롯해 소정의 비용을 치르고 들어오는 상업광고 등이 게시된다. 그런데 가끔 실소를 자아내거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의 공지사항들이 나붙는 경우도 있다.
지난 연말 경기도 모 아파트  게시판엔 <소변금지>라는 제목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밤늦은 시간에 승강기 내부에 소변을 보는 주민이 있다’는 것. 한두 번도 아닌 상습범. ‘CCTV 확인 결과 몇 층에서 내렸는지도 녹화가 돼 있으나 해당 주민의 체면을 생각해 사진을 공개하진 않겠지만 다시 같은 행위가 반복될 경우 화면을 캡처해 모든 입주민이 볼 수 있도록 공개 게시하겠다’는 계도성 글이 들어 있었다.
해당 미화원을 만나 사연을 들어보니 소변을 보는 행동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주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변의를 참지 못하거나 만용을 부리려 일부러 보는 경우가 많고, 주인을 따라 나선 반려동물이 실례(?)를 하기도 한다.
이 미화원은 “소변은 그나마 양반”이라고 하소연한다. 주말이나 특히 술자리가 잦은 연말엔 승강기 복도 계단에 토사물이 얼어 붙어 있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고. 그걸 청소하려면 뜨거운 물을 가져와 녹여서 제거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 라인 하나 청소할 시간을 모두 빼앗겨 버린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점심시간에 밥맛조차 잃기 십상이다.
다른 미화원은 몇 년 전에 겪은 끔찍한 경험을 들려줬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동 출입구에 경찰차와 119구급차가 와 있고 입주민들이 몰려들었다. 한 입주민이 투신자살한 것. 17층에서 몸을 던진 입주민은 1층 돌출 출입구 지붕으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119구급대원들이 수습해 갔고, 경찰은 몇 가지 사실확인을 마친 후 곧바로 현장을 떠났다.
사후처리는 직원들의 몫이 됐다. 관리소장과 기사, 경비원과 미화원들이 모두 동원돼 고인 피를 청소했다. 물을 수없이 뿌리고 세제로, 마지막엔 락스로 박박 닦아냈지만 밤새 콘크리트 깊숙이 파고든 핏자국을 완전히 지워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피 비린내가 그렇게 지독한 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공동주택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한 종사자를 꼽으라면 경비원과 미화원을 들 수 있다.
모든 민원을 직접 감당하는 사람은 관리소장이다. 대부분의 법률적·사무적 민원은 관리사무소에서 처리하지만 그 중 육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은 하위직급으로 전달된다. 기술적인 면이 필요한 부분은 기사가, 가장 허드렛일은 경비원과 미화원이 몸으로 때워야 한다.
지난해는 경비원의 인권이 눈에 띄게 신장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2014년 말 한 경비원의 분신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경비원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는 그후 일 년 내내 사회적 화두가 됐다. 일부 입주민에 의해 암암리에 벌어지는 폭행과 구타, 폭언과 욕설 등이 표면화됐고 휴식은 커녕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못하는 점들이 부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크게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각 지자체들은 경비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각종 대책과 아이디어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미흡한 부분이 훨씬 많지만 경비원을 바라보는 입주민과 사회의 시각은 이제 조금씩 온기를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화원들은 아직도 소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 규정에도 없이 위태로운 생활

주택법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및 규칙’ 등엔 ‘부대시설’과 ‘복리시설’ 설치에 관한 규정들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주차장, 관리사무소, 경비실, 자전거보관소, 조경시설 등의 부대시설과 경로당, 어린이놀이터, 주민운동시설, 독서실 등의 복리시설 등을 어떤 식으로 설치해야 하는지 나와 있지만 필수시설에 가까운 경비원과 미화원의 휴게시설은 전혀 명문화돼 있지 않다.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경비실에 간단하게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화장실 등을 설치해 주지만 예전 아파트들은 휴게시간에도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정당한 휴게시간조차 편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경비원보다 훨씬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게 미화원들의 현실이다.
미화원들은 매연이 자욱한 지하주차장이나 악취가 풍기고 해충이 들끓는 하수도 근처에 간이 칸막이시설을 지어놓고 옷을 갈아 입고 식사와 휴식을 취한다. 이 시설들은 당연히 불법 또는 탈법시설일 수밖에 없다. 사고위험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입주민은 집 앞에 흘린 음식물쓰레기 국물자국이 그대로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만 미화원을 찾아 꾸짖는다. 그들은 그렇게 희미한 그림자 같은 존재다.
본지는 늙은 어머니들의 위태로운 노동을 심층 취재해 연속 보도한다.
 【이경석 편집부장】

이경석 편집부장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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