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펄펄 내리던 날, 북악산 팔각정까지 뛰어오르는 힘든 달리기 훈련을 했다. /사진=최윤호
눈이 펄펄 내리던 날, 북악산 팔각정까지 뛰어오르는 힘든 달리기 훈련을 했다. /사진=최윤호

눈이 내린다. 조금 날리다 마는 작은 눈이 아니라 제법 알이 굵은 눈이다. 함박눈이다. 눈이 거리를 덮고, 산과 들을 덮는다. 지상의 많은 사람이 걱정하기 시작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기회로 다가온다.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시기다. 인공설 아닌 자연설에서, 그것도 싸락눈이 아닌 함박눈 쌓인 슬로프를 달릴 수 있다면 천금을 주고도 바꾸고 싶지 않은 기회가 펼쳐진다. 

달리기하는 사람도 조금은 흥분된다. 좀처럼 해보기 힘든 경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눈 덮인 언덕, 눈 천지인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경험은 아주 가끔 우리에게 찾아오는 황금 같은 기회인 것이다. 

내가 좀 거칠게 달리기 훈련을 하고 싶은 곳이 있다. 서울 성북동 너머의 북악스카이웨이다. 올겨울은 서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13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는 날, 한창 눈이 내리는 도중에 북악스카이웨이 달리기에 나섰다. 너무 예쁘게 펑펑 쏟아지는 눈을 바라만 보기에는 아까웠다. 그 눈송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어디로 뛸까, 고민하다 북악스카이웨이로 코스를 정했다. 

눈 덮인 산을 뛰어보고 싶었지만 경험은 거의 없다. 장비는 어떻게 하고, 코스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연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는 두려움도 작동했다. 그래서 산은 아니지만 산 못지않은 오르막이 있고 차도를 벗어나면 설산의 스릴도 느낄 수 있는 산책로도 있는 북악스카이웨이를 택했다. 

나는 평소 40분 정도 거대하고 가파른 언덕을 뛰어올랐다. 눈이 쏟아지고 있으니 시간이 더 걸렸다. 미끄러질까, 잘못 디딜까 조심조심 달렸다. 가파른 오르막을 뛰는 허벅지의 통증과 허파의 찢어질 듯한 느낌이 더 심각한지, 미끄러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더 심각한지 헷갈렸다. 

가파른 오르막을 뛰는 것은 엄청나게 강한 운동이다. 심장 펌핑, 거친 호흡, 발가락 끝의 힘과 탄력으로 온몸을 위로 쏘아 올려야 한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다리를 지배한다. 복부에 힘을 주니 허리도 끊어질 것 같다. 그런데 눈이 덮인 길, 미끄러울 수도 있는 길, 시야가 방해받는 길을 뛰어오르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의 어려움을 두 배, 세 배로 높여준다. 

그 고통을 감수하고 왜 나는 눈 덮인 가파른 언덕 달리기에 나섰을까. 그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통쾌함을 느끼고 싶어서다. 하얀 눈을 뒤집어쓰며 느끼는 해방감을 맛보고 싶어서다. 헐떡이는 호흡이 머리 어디쯤에서 녹아내리는 눈과 만나면 줄줄 흘러내리는 체액이 된다. 그 맛을 보고 싶어서다. 무엇보다도 대자연의 황홀한 장면에 녹아들고 싶어서다. 

눈 덮인 가파른 언덕을 달려보는 것은, 인생의 극적 순간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행위이다. 극한의 수련이다. 손끝 발끝은 얼어붙고 콧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숨을 쉴 때 몸속으로 파고든 찬 공기가 허파를 때리는 것 같다. 머리와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린다. 노출된 코끝, 귀끝과 장갑 속 손끝은 끊어질 듯 차갑다. 두렵다, 혹시 동상이 생기는 것 아니야?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몸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생명감이 폭발할 듯 빛나지 않는가.

니체처럼 말해볼까. 이 모든 괴로움이여, 또다시 오라, 내가 기꺼이 그 고통 속으로 뛰어들리라. 인간의 한계는 상상력의 한계라지만 의지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나의 한계 실험이 눈 덮인 언덕 달리기의 맛이다.

 


최 윤 호 l ‘파워팩토리 동행’ 대표. 암 전문미디어 ‘캔서앤서’ 편집장으로 건강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 , 마라톤을 즐기며 태극권도 수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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