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락의 ‘산티아고, 나를 비우는 길’

바다 바로 옆에 지어진 묵시아 성당.
바다 바로 옆에 지어진 묵시아 성당.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대서양과 맞닿아있는 피스테라(Fisterra)와 묵시아(Muxia)에 다녀왔다. 피스테라라는 이름은 갈리시아어로 '땅끝'이라는 의미다. 스페인어로는 피니스테레(Finisterre)라고 한다.

2002년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 유출로 묵시아 및 인근 지역의 생태계가 파괴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두 동강이 난 기념탑을 세웠다.
2002년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 유출로 묵시아 및 인근 지역의 생태계가 파괴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두 동강이 난 기념탑을 세웠다.
묵시아의 0km 표지석. 그 아래에는 순례자들이 두고 간 사진, 가리비, 슬리퍼 등 다양한 물건들이 놓여 있다.
묵시아의 0km 표지석. 그 아래에는 순례자들이 두고 간 사진, 가리비, 슬리퍼 등 다양한 물건들이 놓여 있다.

산티아고까지 걸어온 순례자 중 일부는 피스테라까지 걷는다. 산티아고에서 사나흘 정도 더 걸어야 한다. 산티아고에서 본 ‘남은 거리 0km’ 표지석이 피스테라와 묵시아에도 세워져 있다.

피스테라는 성인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야고보 성인이 이곳에 살던 켈트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한 일화가 남아 있다. 야고보 성인이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신 후 제자들에 의해 유해가 수습되고 배에 실려 피스테라에 닿았다고 한다.

 

날씨가 상당히 좋았다. 맑은 하늘이 순례자 및 관광객들을 반겨줬다.
날씨가 상당히 좋았다. 맑은 하늘이 순례자 및 관광객들을 반겨줬다.

이른 아침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비가 부슬부슬 왔다. 오늘도 다니면서 비 좀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해가 나고 맑아졌다.

피스테라와 묵시아는 대서양에 접해있어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오늘은 바람도 잠잠했다. 하늘이 순례자들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좋은 날씨 덕분에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느낄 수 있었다.

 

성당 아래로 내려와 드넓은 대서양을 배경으로 한 컷.
성당 아래로 내려와 드넓은 대서양을 배경으로 한 컷.

피스테라에는 순례자들이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우는 전통이 있다. 지금은 태우는 행위를 금지해 자신이 가진 물건을 두고 온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행위라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의 안일하고 이기적이었던 삶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지나온 순례길을 다시 생각한다.

 

작은 어촌 마을인 피스테라.
작은 어촌 마을인 피스테라.

피스테라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진 뒤 산티아고로 돌아와 쉬던 중 63일간의 순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한 여성분을 만났다. 내가 걸었던 프랑스 길이 아닌 험한 북쪽 길로 오면서 여러 곳을 들르고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는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산티아고로 걸어왔단다.

하늘에서 헤엄치는 듯한 돌고래 조각상.
하늘에서 헤엄치는 듯한 돌고래 조각상.

정말 놀랍다. 그 정도는 돼야 진정한 순례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부족하다면 나도 또 걷는 수밖에 없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길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걷는 모든 이를 응원한다. 부엔 까미노!

 

싸야스 강을 따라 흐르는 물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생긴 에자로 폭포.
싸야스 강을 따라 흐르는 물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생긴 에자로 폭포.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간 나의 인생 첫 번째 버킷리스트일 정도로 오랫동안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미루기만 했다. 올해 들어 코로나가 점차 수그러드는 것 같아 계속 늦추기보다 실행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순례길에 오르면 가까운 친구들에게 소식과 정보를 줄 겸 사진 몇 장씩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아파트신문사의 권유로 사진과 글을 신문에 남기기로 했다. 마침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온 적이 있는 기자 한 분이 내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매일 몇 장의 사진과 글을 보냈다. 내 소식을 궁금해하던 친구와 친지들이 큰 관심을 보여 부담이 되기도 했다.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조용히 다녀오려 했는데 마치 여행기나 영웅담을 쓰는 듯해서 부끄러웠다.

 

피스테라의 십자가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자세를 잡아본다.
피스테라의 십자가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자세를 잡아본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관심과 격려의 말들이 순례길을 걸으며 큰 힘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을 통해 지인, 친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준 독자 여러분, 그리고 한국아파트신문사의 담당 기자와 관계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응원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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