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락의 ‘산티아고, 나를 비우는 길’ <33일차>
몬테 도 고조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5km)

엊저녁 몬테 도 고조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밤새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에 잠을 설쳤다. 아침에 나가보니 근처 공원 주변은 버려진 술병들로 어지러웠다. 

산티아고에서도 지난밤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비 오는 음울한 날씨에 사람들 기운을 올려보자는 뜻이 아닌가 싶다.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로 향하는 날이다. 순례 마지막 날인 만큼 발걸음도 가볍다.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로 향하는 날이다. 순례 마지막 날인 만큼 발걸음도 가볍다.

아침에 매번 일찍 서두르다가 오늘 천천히 나오려니 오히려 어색했다. 천천히 걸어도 목적지까지 한 시간 남짓 걸으면 도착하니 일찍 나올 필요가 없었다. 표지판을 보고 여유 있게 걷다가 문을 연 카페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산티아고 시내에 들어서자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산티아고 시내에 들어서자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산티아고 대성당. 하늘도 나의 마지막 순례길을 축복하는 지 맑게 갰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산티아고 대성당. 하늘도 나의 마지막 순례길을 축복하는 지 맑게 갰다.

카페를 나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얼마 안 가 드디어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 종탑이 보였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냥 담담했다. 그간 나의 마음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던 순례의 상징과도 같은 대성당도 여느 도시에서 본 성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됐다.

 

순례자사무실에 방문해 순례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순례길 위에서 받은 도장이 담긴 순례자 여권을 제출하면 사무실 측에서 내용을 확인 후 발급해 준다.
순례자사무실에 방문해 순례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순례길 위에서 받은 도장이 담긴 순례자 여권을 제출하면 사무실 측에서 내용을 확인 후 발급해 준다.

성당 앞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17분이었다. 이 시각이 최종 도착 시간이다.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은 뒤 순례 확인서를 발급하는 순례자사무실에 갔다. 

거기서 그동안 같이 걷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프랑스의 생장 피에드 포트(Saint-Jean-Pied-de-Port)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걸었다는 확인서를 받았다.

 

웅장한 모습의 산티아고 대성당.
웅장한 모습의 산티아고 대성당.

순례자사무실에서 나와 오늘 머물 알베르게에 짐을 내려놓고 정오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내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그동안 못 만났던 순례길의 인연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며 미사 시작을 기다렸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성전.
산티아고 대성당의 성전.

미사가 시작됐다. 내 마음은 평소와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놀랐다. '주여 왜 저를 이곳까지 부르셨나이까?' 

미사 중 성체를 모시는 순간에도 눈물이 났다. 일반 미사가 끝난 후 산티아고 대성당의 유명한 향로미사가 진행됐다.

 

향로미사에 사용되는 거대한 향로. 일반 미사와 달리 향로미사는 일주일에 두 번밖에 열리지 않는다. 운 좋게 향로 미사에 참석했다.
향로미사에 사용되는 거대한 향로. 일반 미사와 달리 향로미사는 일주일에 두 번밖에 열리지 않는다. 운 좋게 향로 미사에 참석했다.

성가가 울리는 가운데 젊은 수사들이 줄을 잡고 향로를 좌우로 흔들었다. 향로에서 나오는 향이 성당 안을 가득 채웠다. 장관이었다. 

성당에서 나와 점심을 먹고 내일 갈 묵시아(Muxia), 피스테라(Fisterra)행 버스를 예약했다. 피스테라는 중세 시대부터 세계의 끝이라 불렸던 작은 어촌마을이다. 산티아고에서 90km 떨어져 있어 도보로 3일 정도 걸린다. 나는 일정상 버스를 타고 방문해보려 한다.

내가 이 길을 걷는 동안 만난 순례자, 숙소 및 식당 주인 등 모두는 성인, 성녀, 천사 그리고 성모님이셨다. 

아낌없이 나눠주고 힘이 되어준 그들 덕분에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다시 얻게 됐다. '부엔 까미노'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격려와 힘을 주는 말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33일간의 순례가 드디어 끝이 났다. 순례길 위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33일간의 순례가 드디어 끝이 났다. 순례길 위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언젠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적이 있다. 길에서 본 낙서에서 답을 찾는다. 

'Love is the answer.' 의역하자면 ‘사랑이 곧 진리다’라는 뜻이다. 사랑이 가득한 길이다.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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