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락의 ‘산티아고, 나를 비우는 길’ <32일차>
아르주아 → 몬테 도 고조 (35km)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유명한 루트인 프랑스 길과 또 다른 순례 루트인 북쪽 길이 만나는 도시가 바로 아르주아다. 두 길이 아르주아에서 만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진다. 강물이 모이듯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서 더 의미가 큰 도시다.

프랑스 길과 북쪽 길이 만나는 아르주아. 가로등이 어두운 새벽 거리를 환하게 밝혀준다.
프랑스 길과 북쪽 길이 만나는 아르주아. 가로등이 어두운 새벽 거리를 환하게 밝혀준다.

어제 묵었던 아르주아의 알베르게에서 북쪽 길을 따라 걸었다는 독일인 순례자를 만났다. 그는 북쪽 길은 산길이 많아 길의 기복이 심하지만, 풍광이 빼어나다며 나에게 꼭 가보라고 권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던 사이 포르투갈인 순례자 한 무리가 들어왔다. 그중 70대의 한 순례자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는 자신이 남한과 북한을 모두 여행했다고 자랑했다. 그가 전 세계를 다닌 기록을 보여줬는데 대단했다. 특히 순례길을 다양한 경로로 여러 번 걸었다는 게 부러웠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다.
고요한 숲길을 홀로 걷는다.
고요한 숲길을 홀로 걷는다.

오늘은 아르주아를 출발해 산티아고의 코 밑인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까지 35km의 여정이었다. 최근 가장 긴 거리를 걸었다.

산티아고에 약 5km 못 미쳐 위치한 마을에서 멈춘 이유는 옛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로 들어가기 전 기쁨의 탄성을 올린 곳이기 때문이다.

긴 순례 끝에 이 동네에 다다른 옛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래서 동네 이름도 기쁨의 언덕이라고 붙여졌다.

역시나 비가 쏟아진다. 순례자들 하나둘씩 판초 우의를 꺼내 입었다.
역시나 비가 쏟아진다. 순례자들 하나둘씩 판초 우의를 꺼내 입었다.

나도 기분이 한껏 고조된다. 내일 드디어 이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 산티아고에 입성한다. 옛 순례자들은 산티아고로 들어가기 전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했다고 한다. 나도 오늘 이곳에 머물며 순례의 기쁨을 천천히 하나하나 되새기려 한다.

비는 금방 그쳤다. 하늘도 맑게 갰다.
비는 금방 그쳤다. 하늘도 맑게 갰다.
따스한 햇살이 촉촉히 젖은 숲길을 한층 더 아릅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따스한 햇살이 촉촉히 젖은 숲길을 한층 더 아릅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기 전 처음 세웠던 목표인 인생에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지켜졌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선 한 달을 넘게 걸으며 깨달은 사실은, 순례길에서는 그리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 몸을 덮어줄 침낭, 지금은 구멍이 나버린 발가락 양말 두 켤레, 갈아입을 최소한의 옷과 바람막이, 세면도구, 상비약, 휴대전화와 충전기, 무릎보호대, 반 장갑, 스틱, 모자, 선글라스, 등산화와 슬리퍼 등 많아야 20가지가 안 되는 짐으로도 충분하다.

앞서 걷는 순례자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목적지까지 열심히 나아간다.
앞서 걷는 순례자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목적지까지 열심히 나아간다.

법정스님의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느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매달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꺼내놓고 다른 이에게 공개한단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경계하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돌아가신 후 자신의 저서를 더는 내지 말라고 했다. 무소유를 실천한 이 시대의 큰 스승이다. 마음을 비우려면 우선 물질에 대한 욕심부터 줄여야 한다.

내일이면 드디어 산티아고로 향하는 날이다. 나무 사이로 멀리 산티아고의 끝자락이 보인다.
내일이면 드디어 산티아고로 향하는 날이다. 나무 사이로 멀리 산티아고의 끝자락이 보인다.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 후손들을 생각해서 욕심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 산티아고 길은 욕심을 내려놓는 길이다.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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