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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풍경 속 작은 빛거기까지만 가면 괜찮아집을 즐겨 그리는 한 화가의 경력이 특이하다. 인체 해부도를 그리는 삽화가인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과학수사요원을 꿈꾸는 수사과학대학원 법정의학과 학생. 정미진 프리랜서 전업 작가는 이런 다양한 경험을 거쳐 집을 그리기로 작정했다. 희미하더라도 반드시 존재하는 희망으로서의 집이다.- 왜 집을 그리나.“우연한 기회에 미국 병원에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게 됐다. 미국에서 언어와 문화 차이를 실감하며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살기 위해 그림으로라도 소통해야 했다. 도심 속 집을 포함한 온갖 건물들을 보자기에 넣고 마구잡이로 흔든 다음 매뉴얼 없는 레고를 조립하듯 도시괴물 시리즈를 그리게 됐다.”- 화가 지망생이 병원에서 일했나.“부모님은 그림을 그리면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다. 졸업 후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열심히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부산대학교병원 신경외과에서 수술 사진을 편집할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다. 간단한 업무일 것이라 생각하고 이력서를 넣었다가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일을 처음 접하게 됐다. 나를 면접 본 의사선생님의 소개로 갑자기 미국 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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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309
2023.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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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위에 정성스레 집을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그리는 화가가 있다. 업무, 학업 등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요즘 손 그림을 고집하는 윤공주 작가다. 더구나 그는 웹 애니메이터로서 영상 애니메이션을 그렸고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이다.- 왜 집을 그리나.“모든 작가가 그렇듯이 나도 나만의 조형성을 가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문득 그동안 그려왔던 나의 스케치들 속에 항상 작은 집이 그려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하지만 그 후 오히려 고민이 더 깊어졌다. 여전히 집을 그린 이유와 그리고 싶은 이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윤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건 자기 자신뿐이라고 자신해왔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지는 대로 그냥 살아왔었던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 집의 어떤 장면을 포착하나.“집은 내게 양가적인 공간이다. 사는 게 외롭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집은 치열한 삶 속에서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이자 에너지의 보고가 된다. 동시에 집은 내 삶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자 굴레가 되기도 한다. 위로가 필요했던 나는 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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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307
2023.03.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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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뉴욕의 집‘무채색’ 일본의 집‘초록빛’ 한국의 집“집은 행복의 출발점”한국, 미국, 일본 등을 오가며 집을 그리는 서양화가가 있다. 장리석 미술상, 한국미술작가상 등 다수의 수상 내역을 보유하고 있는 김명식(74) 전 동아대 회화과 교수다. 김 화백은 국내외에서 80여 회의 전시를 했을 만큼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집은 모든 행복의 출발점 아닐까요. 집이 있는 풍경을 통해 화합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그가 집을 그리기 시작한 동기는 단순하고도 소박했다.“결혼 후 월세방부터 시작해 전세, 그다음 내 집을 마련하고…이렇게 옮겨가면서 내 집을 갖게 됐을 때 그 기쁨은 상상을 초월했다. 내 집을 마련했다는 기쁨! 그 기쁨이 나로 하여금 집을 그리게 만들기도 했다.”김 작가는 활동 초기 고향인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그리움을 담은 ‘고데기’(고덕동 옛 이름) 시리즈로 주목을 받았다. 고데기는 작가가 어린 시절 나고 자란 고덕리(高德里)를 지칭하는데, 당시 동네 어른들이 고덕리를 발음한 그대로를 따온 것이다. 고향은 도시개발로 옛 모습을 전부 잃어버렸다. 기억에 의지해 고향을 그려낸 작품에는 김 화백이 어려서 느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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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305
2023.03.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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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촬영하는 대상들은 모두 변화하는 것들이다.” 사람의 접근이 차단된 신도시 건설 현장이나 재개발 구역의 철거 현장은 도시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 사진작가가 이런 장면을 카메라에 속속들이 담고 있다. ‘아파트 키드’ 세대로 분류되는 정지현 작가다.정 작가는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 형태, 그리고 도시라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환경으로 인식하며 성장했다. 그는 1988 서울 올림픽 때 만들어진 주 경기장 근처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정 작가는 올림픽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 특히 서울에 올림픽 당시 저층의 아파트 단지들이 모두 사라지고 고층 빌딩으로 바뀌는 모습을 목격했다.그는 사진 작업의 주요 동기로 “어린 시절 태어나서 살던 동네가 개발로 사라지는 경험”을 꼽았다. 견고해 보이던 잠실 아파트 단지라는 세계가 재건축으로 순식간에 소멸하는 과정을 목격한 것은 충격이었다. 이것은 그를 자연스럽게 아파트라는 건축물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정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현재의 도시는 사람의 삶을 영위하는 터전으로서의 장소성을 잃어버리고 경제 개발 계획에 근거한 이익을 추구하는 기능적인 도시공간으로 빠르게 지어지고 쉽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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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303
2023.02.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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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설움 고독 온기 뿌리? 다 함께 녹아있는 공간, 가족!고향집 그리며 상처도 치유…추억에 젖은 관객보면 뿌듯 따뜻하고 정감이 가는 고향 집을 그리는 작가가 있다. 이준이 작가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그리운 고향 집을 추억함으로 각박한 세상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는 고향 집을 현재의 자신을 만들고 이뤄준 뿌리라고 소개한다. 왜 집을 그리나.“어린 시절 형제가 늘어나니 집안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졌다. 부모님께서 4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돌보기 힘드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쌍둥이 언니는 각각 친가, 외가로 보내지고 첫째 언니와 막내 남동생만 본집에 남게 됐다.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가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에 외로움이 있었다. 까만 밤하늘을 볼 때면 외로움이 증폭됐지만,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며 많은 위로도 받았다. 이런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화가로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줬다.” 시골 생활은 어땠나.“부산이란 대도시에서 논밭밖에 없는 시골이었던 경남 고성으로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무리 잘해줘도 내 부모님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던 걸까. 어찌 됐든 그곳에서 자연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침 일찍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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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301
2023.02.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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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을 그리다 보니 행복이 찾아왔어요.” 행복은 추구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두요(斗姚) 김민정 작가는 말한다. ‘예쁜 별’이라는 의미의 호로 불리길 좋아하는 두요 김 작가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됐다.’ 그가 행복에 의미를 두고 집을 그리다 보니 행복이 쌓이고 있단다. 왜 집을 그리나.“그림을 그리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가 있다. 그때 나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1년 가까이 고민한 끝에 행복한 가족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행복 아닌가. 행복은 가족에서부터 채워져야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집은 가족 구성원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보금자리이자 안식처, 태어나고 성장한 출발점이다. 행복한 그림에는 행복한 가족의 집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그림에는 알록달록한 집, 기린, 물고기가 항상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김 작가는 동물원에서 기린을 마주친 후 기린의 아름다운 눈 속에 푹 빠져버렸다. 그 후 가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람 대신 기린을 그려 넣게 됐다. 동양에서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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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99
2023.0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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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기린, 그리고 풀이 한 화폭에 담겨 있다.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회색 콘크리트의 아파트를 생명력이 풍부한 공간으로 바라보는 한국화가 이보영 작가의 작품이다. - 왜 아파트를 그리나.“매일 아침 기상 직후 커튼을 열면 바로 맞은편에 아파트가 보였다. 아파트 뷰를 가진 아파트에 살았던 덕분에 아파트를 그리게 된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맞은편 아파트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사각형 창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획일화된 외관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아파트의 네모난 창 너머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의 겉모습과는 다르게 저 속에는 다양한 삶들이 펼쳐지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니 상상력이 마구 자극됐다. 그렇게 아파트를 한지 위에 그려 넣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어떤 장면을 포착하나.“초기에 아파트 그림을 그릴 때 창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네모난 창문 속에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세밀하게 묘사하다 보니 점점 창문의 면적이 커졌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한 유일한 통로이자 소통 창구는 창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개개인의 삶에 주목하고 싶었던 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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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97
2023.01.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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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빛을 집이라는 조각품 위에 투영하는 작가가 있다. 지금은 잠시 가려져 있지만 곧 나올 빛. 찬란한 태양을 머금은 구름의 은빛 테두리를 포착한 빛의 조각가, 최은정 작가이다.최은정 작가에게 일상 속 하늘은 희망을 찾는 장소이다. 그는 “나의 작품은 집 속에 하늘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본질은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하늘빛을 담은 집을 조각하나.“6년 전, 순탄했던 나의 삶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집안의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반지하 집으로 옮긴 뒤 너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때 집과 하늘에 대한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당연하게 지나쳤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 말이다. 참담한 현실에 맞설 수 있었던 버팀목은 작업이었다. 가정과 육아, 작업을 병행하며 눈코 뜰 새 없이 살다 문득 지금의 하늘을 만나게 됐다.”나락으로 꺼졌던 삶의 질곡에서 하늘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된 것. 최 작가의 작업은 자전적 일상을 바탕으로 작가, 엄마, 아내, 며느리, 선생 등과 같은 역할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그는 종일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온 후에도 늦은 밤까지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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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95
2022.12.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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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화한 오각형의 집 안이 화폭에 펼쳐진다. 친근한 우리의 일상을 집 속에 17년간 담아온 작가가 있다. 지난해 동덕목화미술상을 수상한 최순민 작가다. 늘 보는 사물이나 일상에서 겪은 일에서 새로운 모습이나 가치를 깨닫고 이를 ‘집’이라는 상식적인 틀에 넣어 표현하는 일이 최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성이다.최 작가는 집 그림을 그릴 때의 자기 모습을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대사를 빌려 표현한다. “그냥 기분이 좋아요.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일단 추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다음은 최 작가와의 일문일답. 왜 집을 그리나.“하루아침에 가정이 심각한 경제난에 빠지게 됐다. 이때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읽은 것이 영감의 원천이 돼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최 작가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설명해줬다. 어떤 부자 노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먼 지역으로 떠났다. 그 아들은 방탕하게 살며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린 후 돼지치기가 된다. 귀한 집의 아들이었는데, 노예처럼 돼지들이 먹는 음식을 주워 먹을 만큼 가난하고 비참해진 것.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살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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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93
2022.12.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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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그리기 위해 여수, 속초, 목포, 대구, 제주도 등 국내는 물론 프랑스의 니스, 포르투갈의 리스본 등 약 30개국을 방문한 화가가 있다. 집을 소재로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고 ‘집유라’라는 별명을 좋아하는 지유라 작가다. 그는 강원랜드에서 12년간 총괄 아트디렉터로 근무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 작가는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해 집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이 남달랐던 것 같다”며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집을 그리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은 지 작가를 따뜻하게 반겨주고 품어주는 치유의 공간이 됐다. 다음은 지 작가와의 일문일답. 왜 집을 그리나.“나에게 집은 가족이고 행복이다. ‘House’가 아니라 ‘Home’의 개념이다. 집은 쉬고, 먹고, 자고, 싸고, 가장 자유롭고 솔직한 나만의 공간이다. 그렇기에 집은 내게 휴식, 안정, 즐거움을 준다. 빠르게만 변해가는 세상에서 쫓기듯 살아왔던 나, 그리고 관객들에게 집 그림을 통해 쉬어갈 자리를 내어주고 싶어 집을 그린다.” 집의 어떤 장면을 포착하나.“나는 집에 아스라이 서린 추억을 그린다. 1970~80년대 당시 영화처럼 향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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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91
2022.11.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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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1917~1990)은 화백, 교수라는 호칭보다 집 가(家)자를 쓰는 화가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만큼 집은 장욱진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소재이자 삶과 예술철학이 담겨있는 장소다. 그런 생각은 “집도 작품이다”라는 말로 자주 표출됐다. 집은 가족 화목과 평안한 안식 의미장욱진에게 집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환경에서 가족들의 화목은 물론 평안한 안식을 의미하는 곳이자, 중요한 창작 공간이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네 차례 집(아틀리에)을 직접 설계하고 지었을 정도로 집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덕소(1963∼1974), 명륜동(1975∼ 1979), 수안보(1980∼1985), 용인 마북동(1986∼1990) 등 시대별로 작업실을 달리했다. 집을 기준으로 그의 작업 양상을 논할 정도로 장욱진의 작품과 집은 불가분의 관계다.덕소 화실은 장욱진이 1963년 양주 한강 변에 지은 것이다. 남편은 가족과 떨어져 작업에 매진했다. 아내가 서울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주말마다 남편을 보러 왔다. 그런 아내를 위해 작가는 화실 옆에 한 칸짜리 한옥을 더 지었다. 1969년 작 ‘앞뜰’에는 그 집이 간결하게 묘사돼 있다. 1974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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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89
2022.11.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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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붙어 끝없이 이어지는 판잣집들. 고만고만한 집들은 결코 음울해 보이거나 어둡지 않다. 초저녁 달동네를 훤히 밝히고 있는 노란 빛.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의 빛인지 단란한 가족들이 머무는 집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포근하고 따듯한 느낌을 넘어 안전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집집이 피어오르는 밥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기도 하고 행복한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지난 15년 가까이 달동네 풍경을 그려온 정영주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판자촌 파라다이스’라고 소개한다. 작품의 달동네는 특정 지역의 풍경이 아니다. 어린 시절 체험했던 한국 달동네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꺼내 완성한 것들이다. 그는 골목길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하기도 한다. 그는 유년 시절 기억이 뚜렷하다. 기와집과 초가가 모여 있던 동네에서 키우는 소와 닭에게 직접 먹이를 준 기억,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방에 메주가 달려 있던 기억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에 호롱불을 켜고 마당에는 모닥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었던 기억도 난다. 그는 “서로 가진 것을 비교하지 않았던 달동네에서 오히려 행복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림의 영감은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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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87
2022.10.3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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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벽화는 도시의 독특한 이미지를 알리는 데 효과적이다. 아파트 외벽을 도화지 삼아 야외에 공공미술을 전시하면서 도시를 홍보하고 경관을 개선하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부천 ‘만화도시’ 이미지 구축경기 부천시는 도심 경관을 개선하고 만화 도시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아파트 만화벽화 사업을 진행했다. 입주민들과 디자인 협의 과정을 거쳐 아파트 총 30개 동 외벽에 초대형 만화벽화를 완성했다.아파트 벽화들은 가로 10m, 세로 20∼30m 규모다. 아파트 한쪽 외벽을 모두 채울 정도로 커 인근 보행로나 도로에서 쉽게 눈에 띈다. 벽화들은 불편하지만 행복한 전원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홍연식 작가의 ‘불편하고 행복하게’부터 연애·직장 생활을 그린 이동건 작가의 ‘유미의 세포들’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됐다.삭막해 보이는 아파트 외벽이 만화로 장식되자 시민들은 “부천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전경이다”, “우리 도시의 자랑거리다”라고 호응했다. 하지만 부천시를 널리 알렸던 아파트 만화벽화의 상당수가 아파트 보수 도색작업으로 지워졌다. 현재 중동 중앙공원 주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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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85
2022.10.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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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 ‘뱅크시’, 국내에서 성황리에 전시되고 있는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는 모두 그라피티(Graffiti) 미술을 다룬다. 그라피티는 과거에는 불법적인 거리 낙서로 취급됐다. 지금은 어엿한 미술 장르로 대중과 예술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그라피티란 벽 같은 곳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이다. 사회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메시지를 담는 게 많다.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몰래 그려지는 그라피티의 일시성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뱅크시(Banksy)사회비판・풍자적 메시지 담아‘계절의 인사’는 환경문제 고발하루아침에 당신의 집값이 16배 오른다면? 영국 브리스틀의 한 주택 외벽에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가 그림을 그리자 실제로 이런 일이 생겼다. 그는 미켈란젤로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1위’로 꼽힌다.이 동네 주택의 평균 가격은 30만 파운드(약 4억6000만 원)였다. ‘에취(Achoo)’라는 이름의 벽화가 그려지자 500만 파운드(약 77억 원)로 값이 뛰었다고 한다. 이 집을 사들인 새 주인은 주택 외벽을 따로 잘라내 벽화를 고가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주민들은 벽화를 뜯어내 파는 미술품 거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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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83
2022.10.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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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코로나 블루’를 겪고 목숨까지 잃는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현대미술가 서도호 작가는 2017년 제27회 호암상을 수상한 후 인터뷰에서 “예술이 커다란 위기에 직접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예술이 인류와 함께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창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개인의 정체성과 집을 연결 짓는 서 작가의 설치미술은 우리에게 집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서 작가의 아버지인 서세옥 화백은 1970년대 서울 성북동에 창덕궁 연경당의 일부를 본떠 사랑채를 지었다. 서 작가는 그 집에서 자라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그는 타지의 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해야 했다. 그전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집이 사무치도록 그리울 것 같았다. 그는 출국 전, 집 구석구석을 줄자로 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내가 자란 서울 부모님 집을 같은 크기로 천으로 구현했다. 한옥 구석구석 치수를 재며 내 몸에 완전히 체화시키는 프로세스를 거쳤다. 비로소 나는 그 집으로부터 자유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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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81
2022.09.1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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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신세계타운, 광명, 궁전맨션주거공간의 이상적 모델・이미지 반영도시화 극복 위한 꽃이름 아파트 눈길아파트 외벽에 그려진 글자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 정재완 북디자이너다. 그는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다. 신문, 잡지, 단행본 고급 인쇄물에서 활자를 다루는 학문 분야다. 그 수업을 통해 그는 개인이 연출한 디자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의도대로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현장에서 맞닥뜨린 거리의 글자들은 사뭇 달랐다. 그것들은 디자이너의 의도와는 다른 위상과 운명의 생태계 속에 살고 있었다. 간판 글자들은 가게 주인의 필요에 따라 지워지고 더해지기도 한다. 간판의 교체 주기는 생각보다 짧았다. 아파트는 어떤가.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아파트의 특성상 아파트 글자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공통된 미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그곳으로 향한 이유다. 그의 말을 들어본다. - 어떤 계기로 아파트 글자를 수집하게 됐나.“대구에 직장을 갖게 되면서 가족이 함께 이주하게 됐다. 서울에서는 빌딩 숲과 매번 새롭게 단장되는 아파트 그래픽 사이에서 아파트 글자들을 쉽게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구는 상대적으로 낮은 층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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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79
2022.08.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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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 볼 때마다거대한 절벽·계곡 떠올라빛이 닿는곳 의식하면더 사실적으로 그려져“아파트는 으레 흉물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아파트에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홍성우 작가는 “아파트를 그린 3D 그래픽 작품을 공개한 이후 가장 기분이 좋았던 피드백”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작품을 통해 아파트에 대한 관객의 인식을 바꿨다. 그간 아파트 미술 작품은 급속한 도시화의 이면과 함축된 역사적 의미를 주로 다뤄왔다.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 홍 작가는 아파트의 지역적 맥락이나 의미보다는 조형적 요소에 집중한다. 그래서 지역이나 아파트 브랜드는 드러내지 않는다. 홍성우 작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그림이다. 해가 질 무렵부터 완전히 질 때까지 빨리 감기 해 만든 영상이다. 조형적인 리듬감이 잘 표현돼 있다. 크고 작은 그림자, 진하거나 잔잔한 그림자 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표현이 됐다. (3D 그래픽 영상) 출처: 홍성우 왜 아파트를 그리나.“과거에는 아파트라는 건물 자체에 관심이 아예 없었다. 수도권에 사는 저에게 아파트란 어떤 동네에서든 볼 수 있는 흔하고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어느 가을날 오후 4시쯤 해가 지고 있을 때였다. 프리랜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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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호수 1275
2022.07.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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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파트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워주는 사람이 있다. 정재호 화가다. 그는 정직하게, 꾸밈을 배제하고 사실 묘사에 집중한다. 종이나 한지에 먹과 아크릴릭 물감을 사용해 벽면의 오래된 얼룩과 찌든 때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해낸다.정 작가가 바라본 1960~1970년대 서울의 아파트에는 한국의 역사가 담겨 있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개발로 고도성장을 이뤄낸 서울의 낡아버린 모습이 정 작가의 눈에 들어왔다. 한때 경제성장의 상징이었고 누군가에겐 희망이었고 한 가족의 모든 기록이 담겼던 집, 아파트를 붓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나섰다. 정 작가는 대학원 시절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이 멋있다고 느껴 도시 풍경을 자주 그렸다. 그때 자주 다니던 자하문터널 위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풍경이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정 작가는 “산길을 걸어 가봤더니 청운동 시민아파트가 철거를 앞두고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그걸 보는 순간 30년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았던 이 아파트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한다.1971년생인 정 작가는 근대화의 상징인 아파트들과 함께 컸다. 그에겐 아파트가 친구고, 그는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그 친구들을
라이프
김지혜 기자
호수 1273
2022.07.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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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 충정아파트가 머지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37년 준공된 서울 충정로3가의 충정아파트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기도 하다. 오래된 아파트는 사진작가 최중원의 눈을 자극한다. 그는 1세대 아파트 현장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댄다. 충정아파트 역시 그의 프레임으로 들어갔다. 약 9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청록색 건물.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충정아파트는 일본인 도요타 다네오(豐田種松)가 설계해 그의 이름을 따 도요타아파트 또는 풍전아파트로 불렸다. 이전의 공동주택들은 대부분 기숙사나 관사 형태고 3층을 넘지 않았다. 도요타아파트는 일반인 52세대의 세입자를 받은 4층 건물이어서 특색이 있었다. 한국전쟁 때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합동고문단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고 유엔의 전용 호텔로 사용된 적도 있다. 전후 김병조라는 사기꾼이 ‘아들 6형제를 6.25 때 모두 나라에 바쳤다’는 주장으로 미군으로부터 아파트를 통째로 불하받아 호텔영업을 했다. 결국 그는 거짓말이 탄로 나 구속됐고 아파트는 몰수당했다가 민간에 매각, 분양됐다.1979년 아파트 전면의
라이프
김지혜 기자
호수 1271
2022.06.26 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