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주식으로 먹는 지역에서는 떡 문화가 발달한다. 청동기, 철기 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됐고, ‘삼국사기’에 ‘떡 병(餠)’ 글자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유래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떡은 본디 명절이나 관혼상제에 쓰이는 의례 음식이었으나 쌀 생산이 늘며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백일상에 올리는 백설기, 신부집에 들어온 함을 올리는 봉치시루, 이바지 떡으로 불리는 인절미와 절편, 회갑상이나 제례에 높이 괴여 올리는 고임떡이 있다. 절기에 맞춰 1월 정초에는 떡국을 먹고, 삼짇날에는 진달래로 화전을 지졌고, 한가위에는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어 차례상에 올린다. 만드는 법에 따라 찐 떡, 친 떡, 지진 떡, 삶은 떡으로 나뉜다. 

 

배종찬
배종찬

설날이 되면 가장 설레는 이는 어린아이들이지요. 어른들께 절 한번 올리는 수고로 적지 않은 세뱃돈을 받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리고 아침 차례를 마치면 수북한 떡국이 상에 차려집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떡국을 좋아해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설날 떡국을 먹는 풍습은 하늘에 제사를 지낸 음식을 음복하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제사 음식인 떡국을 나눠 먹던 것이 현재까지 내려왔다는 것이죠. 

설날 먹는 떡국 한 그릇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떡국에 사용되는 가래떡은 ‘갱생 부활’, ‘무병장수’의 의미가 있으며 엽전 모양으로 썬 떡은 재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한 해의 첫날에 먹기에 이만한 게 없네요. 

명절 전날, 온 동네 사람들이 떡방앗간에서 긴 줄을 만들고 서 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요즈음도 방앗간 앞 대기 행렬이 깁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명절 준비로 바쁘니 줄서기는 어린아이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래도 내일의 즐거움을 기약하며, 지루함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의 지인 중에도 떡방앗간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경기도 양주, 약간 외진 곳에 단골과 입소문만으로도 성업 중인 ‘송추 떡방앗간’ 김영순 씨입니다. 

2대째 영업 중인 점과 외진 곳이라는 점에서 전우애가 느껴집니다. 이곳은 영순 씨가 5살 무렵부터 부모님이 함께 운영하셨는데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니 혼자 힘든 일을 하시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나 봅니다. 그는 결국 하던 일을 접고 방앗간에 합류합니다. 어머니의 일을 물려받느라 처음에는 네 식구가 얹혀살게 됐는데, 불편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였답니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아침 일찍 필요한 음식이기 때문에 방앗간은 항상 새벽을 열어야 합니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몇십 년 동안 가게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어린 아들 둘을 키우며 힘겨워하던 어린 새댁이었습니다. 2018년 태풍 노루가 한반도를 휩쓸고 있을 때 옆집 지붕이 날라와 방앗간 지붕 위에 얹히는 어이없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남의 집 지붕이 노루처럼 뛰어와 우리 집 지붕이 돼 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때는 ‘이제 그만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는 가게를 그만두기가 너무 아쉬워 다시 자신을 추슬렀답니다. 

부모님의 곧은 심지도 같이 물려받은 처자입니다. 지금은 세월이 약이려니 하고, 일이 습관이 돼 별로 힘든지 모른다고 합니다. “떡 맛있게 먹었습니다”라는 손님들의 한마디로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고 하니 떡 장인이 됐나 봅니다. 지인들과 모임에서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주변을 빛내는 친구입니다. 편안함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까요? 

이렇게 밝은 영순 씨도 올해로 81세가 되는 친정어머니가 걱정입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저도 모친과 함께 식당을 하고 있으니 알 듯한 마음입니다. 대를 잇는다는 말에는 부모님이 해 놓은 것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책임감과 앞으로의 날들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이 섞여 있습니다. 가을 추수한 햅쌀로 맛있는 떡을 뽑아내는 영순 씨처럼 저도 내일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설날 떡국 한 그릇을 비웁니다. 지난해 열심히 살았으니 너의 인생 한 겹을 더 인정해 준다는 의미도 있겠지요. 두 그릇 먹는다고 두 살 먹지 않듯이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해서 올 한해를 펼쳐야겠습니다. 나이 허투루 먹었다는 소리 안 들으려면 말이죠. 송추 떡방앗간 영순 씨가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항상 내 편 우리 엄마,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줘요.”

 


배 종 찬 l 20대 후반에 차린 어묵전문점은 3년여 뒤 문을 닫았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한식집 토속정 운영에 합류해 18년째 손님을 맞고 있다. 주말에는 홍보마케팅 회사 대표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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