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김치
김장김치

 

김장

추운 겨울에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 먹을 것을 저장하는 풍습이 생겼는데, 대표적인 음식이 김치다. 김치에는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산균은 장을 튼튼하게 해준다. 어느 가정이나 겨울을 나기 위해 김장을 한다. 예전에는 월동을 준비하는 큰 행사로 다수의 인원이 대량으로 담갔다. 김장은 고려 시대에 이미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은 ‘무를 소금에 절여 구동지(겨울 3개월)에 대비한다’고 했고 요물고(料物庫)라는 채소보관소가 나온다. 조선 중기에 도입된 배추는 재배가 어려워 궁중에서나 쓰였다. 1950년대 우장춘 박사가 품종개량을 통해 통배추를 만든 이후에 대중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이전에는 주로 무나 당근 같은 뿌리채소를 이용했다. 고추도 임진왜란 이후 전파됐지만 1960년대 농업 생산성이 증대하면서 널리 쓰였다. 빨간 양념이 버무려진 현재의 양념 배추김치는 근래에 탄생한 비교적 새로운 음식이다. 

 

배종찬
배종찬

손이 시리고 입에서 입김이 나기 시작하면 김장철이 왔다는 뜻입니다. 김장이라는 것이 먹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하기는 참 힘듭니다. 저는 김장철이 되면 채칼이 아닌 칼질로 산더미만 한 무채를 썹니다. 1년에 약 3000포기 정도를 하자면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팔은 덜덜거립니다. 채칼을 쓰지 않는 이유는 오랫동안 아삭함을 유지하기 위해섭니다. 

김장은 많은 재료와 긴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마늘은 전년 가을에 파종하고 봄에 수확해 손질합니다. 고추는 봄에 심어 여름에 키우고 가을 햇살에 잘 말려둡니다. 먼바다에서 나오는 정갈한 소금과 젓갈을 준비합니다. 김치에 들어갈 재료 확보가 끝날 때쯤 비로소 배추와 무 등을 재배합니다. 뽑아온 배추를 소금물에 절였다가 다시 헹군 뒤 물을 뺍니다. 일꾼의 허리가 남아나질 않지요. 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통에 잘 보관하면 1년에 걸친 작업이 마무리됩니다. 양적으로 보나 질적으로 보나 요리계의 블록버스터입니다. 그래도 갓 담근 김치와 생굴을 곁들인 막걸리 한 잔이면 고단함은 싹 달아납니다. 

김치 맛은 집마다 다르지요. 어머니의 손맛 덕분입니다. 손맛은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된 ‘육감(六感)’의 결과입니다. 세세히 따지지 않고 쓱쓱 해버리는데 항상 맛이 같습니다. 숙련된 사람은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으니 양이 달라져도 맛을 유지할 수 있답니다. 

최근에는 레시피(recipe)가 널리 퍼져 많은 사람이 요리를 쉽게 접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따라 해도 이상한 맛이 날 때가 많아 공연히 손과 혓바닥을 원망하게 되지요. 레시피는 최고의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경험이 적은 이들의 실패 확률을 낮춰주는 참고서쯤 될 겁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TV 교양 예능에 과학자들이 많이 보이죠. ‘테라 스푸너’를 개발(?)한 경희대 김상욱 교수나 뇌과학으로 인문학을 풀어내는 정재승 KAIST 교수, 병리학으로 사회를 읽어내는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이 대표적입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과학의 분야를 누구나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과학자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도구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후 세대는 과학을 문화로 이해하고 있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다 과학자잖아요. 그런 걸 여태 놓치고 산 거죠, 과학은 본래 여러 학문과 연결돼 있는 거예요. 지금 현장에 있는 과학자들이 쓰는 글들은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고, 이들이 글을 쓰게 하는 일이 내가 할 일입니다.” 연구실에서 복잡한 계산식과 싸우고 있을 법한 과학자들을 대중에게 소개한 한성봉 동아시아 출판사 대표의 말입니다. 

핑크색 옷차림에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가게에 들어서는데 역시 꽃도 연분홍입니다. 좋은 일 있으신가 여쭤보니 “꽃이 있어서 좋은 날”이라고 받아줍니다. 늘 유쾌한 분입니다. 출판사의 대표란 독자(시장성)와 저자(예술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화에 치우침이 없습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만 자신의 생각도 정중하고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책은 가치를 담아 소통하는 통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책에 담을까 항상 지켜보는 거죠.” 

이분과의 대화가 재미있는 건 이러한 관찰과 관심에서 나오는 진심 때문일 겁니다. 그의 말버릇인 “뭐 어때?”처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도전 정신으로 흥미로운 책들을 출판하는 것 같습니다. 

김치를 담그려면 한 해 이상 재료를 모아야 합니다. 겨우내 저장된 김치가 깊은 맛을 내도록 기다림도 필요합니다. 책 만들기도 김장과 비슷해 보입니다. 한 권을 위해 보통 1~2년 작업해야 합니다. 새로운 이슈를 담기에는 늦어 보이지만 깊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매체입니다. 간단한 정보를 흔한 레시피로 처리한 게 아니라 모든 지적 요소를 솜씨 좋게 엮어낸 요리입니다. 한 대표는 종이 위에서 지성으로 손맛을 내는 요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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