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조기(助氣) 

몸에 기운을 돋워 준다는 뜻의 이름이 붙은 생선이다. 일반적으로 조기로 부르는 참조기는 가슴지느러미부터 꼬리지느러미까지 사각형 모양의 일자 형태이며 비늘은 조금 큰 편이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튀어나왔고 배 밑이 노란색이다. 조기 중 맛이 가장 뛰어나 참조기라고 불린다. 유사종인 수조기는 참조기보다 비늘이 작고 몸통 비늘에 검은 점들이 있다. 위쪽 입이 아래턱보다 튀어나와 주둥이가 뾰족해 보인다. 백조기는 보구치라고도 불린다. 부세는 참조기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크기가 좀 더 크다.
난류성 어종으로 3월경부터 국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해 6월까지 추자, 법성, 낙월, 변산 일대(칠산바다)를 횡단하며 북측 해안까지 이동한다. 평저하고 파도가 얕은 곳을 찾아 산란하기 위한 것이다. 원래 5년 정도 자란 성채가 산란하는데 인간의 남획 이후 자구책으로 2년 정도면 산란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산란 장소도 바뀌고 있다. 과거의 조기 어장은 대부분 꽃게 어장으로 바뀌었다. 한반도 바다에서 가장 많이 잡히던 조기가 귀한 생선이 됐다. 

 

배종찬
배종찬

어릴 적 어머니나 할머니가 “이거 맛있으니까 한 번 먹어봐”라며 내민 음식이 그렇게 싫던 때가 있었습니다. 산나물무침일 수도 있고, 냄새 독한 청국장일 수도 있고, 비릿한 생선찜도 있겠지요. 저에게는 조기인 것 같습니다. 먹을 것도 없이 가시만 많아서 발라 먹기도 귀찮고, 비린내가 나는 것이 그리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었죠. 그런데 부모님도 조기를 먹을 때마다 맛있으니까 먹으라고 하셨고, 시골 할머니 댁이나 외갓집에도 항상 조기 반찬은 빠진 적이 없습니다. 

억지로 한 입 먹긴 하지만 역시 싫은 건 싫은 겁니다. 밥 위에 올려진 조기를 몰래 치우고 좋아하는 소시지나 김에 싸서 재빨리 밥공기를 치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왜 그게 맛있다는 것인지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었죠. 영화 ‘집으로’에서 프라이드치킨을 원했는데 백숙이 올려진 느낌! 다들 아시죠? 

그런데 요즘은 조기를 보면 젓가락이 무의식중에도 옮겨집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조기를 좋아하고 있네요. 여러분도 혹시 그런 음식이 있지 않나요? 먹을 게 많아진 요즘에도 조기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입니다. 잘 구워진 조기 한 마리면 밥 한 그릇도 뚝딱이고, 칼칼하게 끓여진 조기 매운탕 한 냄비면 술 한두 병은 꿀꺽이지요. 그걸 밥도둑이라고 하나요? 어른이 돼서야 이 맛을 알게 된 것이 약간 억울하긴 합니다.

조기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생선입니다. 육지에서 나는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없었으니 바다에서 올린 단백질은 무척이나 귀한 식량이었을 겁니다. 조선 시대에는 ‘포작간’, ‘생선간’이라는 직책을 둬 조달할 정도였습니다. 공납이나 왕실 제수용이 주목적이지만 그 결과 값싸고 맛있는 생선을 백성들에게도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칠산바다(전남 신안에서 영광, 부안에 이르는 해안)에는 4~5월이면 인근 백성들이 조기잡이에 열중해서 ‘사흘칠산’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농사일과는 비교도 안 되게 위험하고 힘든 조업이지만 사흘을 고생하면 1년간 배 굶주릴 일은 없었답니다. 잡아 온 조기를 말려 굴비를 만들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었고 큰돈도 벌 수 있었겠지요. 

과거 그물을 이용한 ‘주벅’이나 대나무 방책을 이용한 ‘어살’로 조기를 잡을 때는 한해 먹을 양을 취하고 다음 해 조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 동력선과 ‘안강망’을 이용한 일본 어선이 뛰어들어 어획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도미나 상어 지느러미를 잡기 위해 온 것인데, 조선인들이 조기를 많이 먹으니 이마저도 그들이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렇게 바다도 조기도 모두 빼앗겼다가 나라를 되찾은 후 조기 조업은 다시 성황을 이룹니다. 동력선과 어군탐지기, 튼튼한 나일론 그물이 보급되면서 ‘기선저인망’ 방식이 도입된 것이지요. 기계의 도움으로 1960, 70년대 조기잡이가 절정을 이뤘답니다. 그 결과 조기 씨가 말라 우리의 식탁에서 다시 멀어지게 됩니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어떤 음식은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뒤돌아봤을 때 지난 시간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따뜻한 물에서 사는 조기가 차가운 물을 찾아다니고 한반도 북단까지 헤엄치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가족을 만들고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 조기가 어느새 내게도 ‘소울푸드’가 됐습니다. 어렸을 때 싫어했던 조기가 맛있어진 것은 저도 그 시절 부모님의 나이에 이른 때문이겠죠. 


배 종 찬 l 20대 후반에 차린 어묵전문점은 3년여 뒤 문을 닫았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한식집 토속정 운영에 합류해 18년째 손님을 맞고 있다. 주말에는 홍보마케팅 대표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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