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직원 일기]

최락원 시설대리/진천 영무예다음1차아파트
최락원 시설대리/진천 영무예다음1차아파트

아파트 관리사무소 시설 근무자들은 당직 업무가 있다. 휴게시간을 포함해 24시간을 근무한다. 당직 직원은 교대 직전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늦은 저녁이나 새벽에 관리사무소 전화벨이 울린다는 건 특이 사항 민원일 경우가 크다. 

어느 날 야간 휴게시간이 마무리될 때쯤인 새벽 5시에 전화가 걸려 왔다. ‘ㅆ’으로 시작되는 욕설과 함께 이중주차에 대한 항의 전화였다. 이중주차 차량이 사이드브레이크를 걸어놔서 자신은 출근도 못 한다는 내용이었다. 민원인이 불러준 차량번호를 확인해 보니 입주자 차량이 아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눈으로 직접 보니 입주민이 화가 날 만했다. 방문 차량이 길목 한가운데 주차하고 사이드브레이크까지 채워놓았다. 

차주의 전화번호를 확인하려는 참에 문제의 차량 차주가 내려왔다. 참다못해 민원인이 직접 차주에게 연락을 수십 통 했던 것 같다. 차주가 이동 주차하면서 일단 상황이 종료됐다. 민원인에게 다시 연락하니 문제의 차주가 방문했던 세대를 알려달라고 했다. 요즘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함부로 알려줄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관리 측면에서는 미흡했던 점이 있다고 판단해 사과했다.

그러자 입주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동호수를 확인하겠다는 집착이 이어졌다. 나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계속했다. 전화를 먼저 끊으면 화를 돋울까 봐 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실랑이하면서 30분이 흘렀다. 그 입주민은 동호수 확인은 포기하고 소장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것 또한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하는데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폭언과 함께 관리업체 변경을 요청하겠다며 겁박했다. 주차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의 “모든 민원을 걸어 악성 민원인이 되겠다”는 분노의 외침이 이어졌다. 해가 뜨기도 전에 괴로운 새벽을 맞았다. 그렇게 또 10여 분간 같은 내용으로 실랑이를 벌였다. 겨우 “소장님한테 연락 후 연락을 드리겠다”라는 말로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였다. 

그동안 5년을 관리사무소에서 일했는데 이것도 내 선에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악성 민원을 여기서 막지 못하면 관리사무소 모두가 힘들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죄송한 마음을 갖고 소장님에게 연락했다. 당직자의 새벽 전화는 어떤 소장이라도 놀랄 것이다. 

벨이 두 번 울린 뒤 전화를 받은 소장은 “직접 통화하겠다”고 답변했다.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했다. 소장이 출근 후 확인할 수 있게 민원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문제의 이중주차 차주가 방문했던 세대에 소장이 직접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기로 마무리됐다. 교대 후 쉬고 있을 때 소장이 잘 해결됐으니 푹 쉬라는 문자를 보내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아파트신문 보도에 따르면 임대아파트 관리종사자가 입주민으로부터 폭언·폭행을 당한 일이 최근 6년간 1000건 넘게 발생했다고 한다. 전국의 아파트 직원 피해는 훨씬 더 클 것이다. 관리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간섭방지법이 시행되고 있어도 현장을 보면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경리직원은 “우리에게 입주민은 모두가 사장님”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입주민이 채용주고, 관리종사자들은 직장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법의 실효성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갑질 피해를 신고하는 직장인은 직장을 떠날 생각으로 해야 한다. 채용주는 신고한 직원을 계속 보기 힘들 것이다. 신고의 사후 보장에 대한 제도가 필요하다. 신고자를 해고하거나, 자진 퇴사하게 하는 교묘한 업무지시 등을 못 하게 해야 한다. 신고 이력의 보안을 지켜줘야 한다.

관리사무소는 입주민을 관리비만 내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귀한 자식이고, 사랑받는 사람이고, 의지하고 존경받는 부모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입주자가 와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입주민이 직원을 보는 마음도 똑같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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