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에 자주 다닌다. 산에서 걷기보다는 뛰기에 주력한다. 어지간한 오르막이나 평지를 만나면 상향등산 중에도 달리고 하산 때는 거의 달린다. 트레일런(Trail Run)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그런 기분을 내보는 중이다. 

그러다 11월 19일, 일요일 아침에 열린 ‘소아암환우돕기 행복트레일런 축제’에 참가했다. 첫 공식 트레일런 대회 경험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하루 잠깐 풀리면서 조금 흐린 날, 이른 시간임에도 500명이 대모산 등산로 바로 아래 있는 서울 강남구 수서역 6번 출구에 모였다.

나는 별다른 장비를 갖고 있지 않아 평소의 커다란 등산배낭에 준비물들을 꽉꽉 눌러 넣고 갔다. 많은 사람은 트레일런 선수급으로 보였다. 반바지에 짝 달라붙는 러닝 배낭에 얼굴 주변에 각종 방한 장비들을 썼다. 트레일런을 뛰는 사람들은 보통 마라토너보다도 더 강력한 사람들이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운동 종목은 대체로 공식처럼 흘러간다. 우선 조금씩 동네에서 달리다가 등산을 하고, 트레일런을 하고, 울트라마라톤을 하고, 철인삼종경기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운동 좋아하고 어느 정도 체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의 순차적 코스가 이렇다. 나로서는 첫 출전인 트레일런 대회의 15㎞ 코스(실제 뛴 거리는 16㎞) 3시간 40분 수준에 매우 만족하고 행복해하고 있다.

나의 첫 트레일런 대회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소아암 환우 돕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올봄, 소아암 환우 돕기 서울시민 마라톤 출전 이야기를 쓴 바 있지만 이렇게 전액을 소아암 환우 수술비 지원을 위해 기부하는 대회는 정말 특별하다. 

‘소아암 환우 돕기 행복트레일런 축제’ 출발지인 수서역 근처에서 대회 주최자인 이동윤 박사(오른쪽)와 건강 트레일런을 다짐했다.
‘소아암 환우 돕기 행복트레일런 축제’ 출발지인 수서역 근처에서 대회 주최자인 이동윤 박사(오른쪽)와 건강 트레일런을 다짐했다.

이 대회를 주최한 ‘달리는 의사들’ 이동윤 박사에 따르면 이번에는 백혈병에 걸린 두 어린이와 크론병에 걸린 한 어린이의 수술비를 지원한다. 세 어린이 모두 빈곤층 가정의 어린이다. 이 기부금은 내가 추측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떤 사람들에게 소중할 것이다. 평소 이기적 삶에 익숙한 내가, 내 건강과 재미를 추구하는 운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아주 작지만 힘이 될 수 있는 경험에 동참하게 해준 대회와 주최 측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코스를 뛴 30대 초반의 한 창업희망생은 마침 자신이 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이 불우한 어린이들을 상담하고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회 취지에 너무나 공감하고 행복하다며 찬바람에 상기된 볼을 붉혔다. 멋지다. 

나는 달리면서 즐겁다. 건강해지니 즐겁고, 함께 뛰며 다른 삶을 경험하니 또한 즐겁다. 그리고 간혹 이런 뜻깊은 일에 동참하는 기회를 얻게 되니 영광이다. 우리 모두 무언가 의미 있고, 건강한 습관을 시작해 보자. 아주 조금만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아주 많이 뜨겁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마련해 둔 판이 있다. 우리는 조금 발품을 팔아 거기에 끼어들기만 하면 된다. 

풍요로운 인생이란 이런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힘으로 일궈낸 멋진 성과들이 좋지만 타인과 손잡고 하면 더욱 뜻깊고, 가끔은 쉽게 편승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면 그 어찌 멋진 일이 아닌가. 

올해가 가기 전에 새해를 맞기 전에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고 건강하면서도 의미 있는 활동을 찾아보자. 그래서 내년 버킷리스트의 첫머리에 그것을 적어보자.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 내 출전번호가 2023번. 2023년 마지막 대회로는 제격이다. 2024년에는 더욱 헌신적인 대회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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