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피덕령 안반데기

백두대간을 사이로 구름이 머물다 가는 안반데기 풍경.
백두대간을 사이로 구름이 머물다 가는 안반데기 풍경.

강원도 평창·대관령·횡계리, 발왕산 용평리조트를 옆으로 도암호를 이루는 송천이 흐른다. 송천을 십여 리쯤 따라가다 좌측으로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면 피덕령으로 길이 이어진다. 피덕령은 대관령과 함께 평창과 강릉을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강릉의 성산과 정선의 구절리를 잇는 닭목재를 만난다. 겨울이면 도암호 피골에서 피덕령까지 눈꽃길이 펼쳐진다. 

백두대간 3구간이 지나가는 길목의 높은 산골에 오래전부터 화전을 일구던 마을이 있다. 피덕령 안반데기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나절 머물기도 하고 때론 어둠을 뚫고 밤이 돼서야 찾아오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겨울의 눈꽃과 광활한 하얀 설경이나 여름과 초가을 배추밭이 만드는 푸른 구릉지의 풍경과 더불어 하수가 흐르고 별이 쏟아지는 별밤을 기대하며 잠시 찾기 때문이다. 

 

안반데기 풍경
안반데기 풍경

 

해발 1100m 넓은 분지들 숨통 탁 트여

해발 평균 1100m 안반덕. 넓은 분화구 같은 분지들이 능선과 능선을 이어주며 초여름의 감자꽃과 한여름의 푸른 배추밭은 광활한 알프스의 초지처럼 하늘과 맞닿아 숨통이 확 트이는 장관을 이룬다. 하얀 풍력발전기의 커다란 날개는 새파란 하늘과 땅의 초록 물결을 어루만지다 백두대간 능선을 넘어오던 구름도 잠시 쉬어가게 한다. 고루포기산 정상까지 배추밭이 이어지고 고원의 평원 너머로 해가 서서히 지며 붉은 노을은 시계의 밤이 왔는데도 좀처럼 어두워지지 않는다.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 별 하나 반짝일 때 그제야 어둠이 짙어지며 운유촌 위로 하나 둘 별들이 뜬다. 

능선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간혹 구름이 머물다 내어주는 하늘의 우주공간 어둠 속에서 별이 흐른다. 바흐의 ‘환상의 폴로네즈’가 바람결에 들리는 듯 정적의 공간들 속으로는 바람의 시간이 지난다. 안데스 피리의 절묘한 음의 교차처럼 기억 속의 별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어린 시절 오줌 누러 나왔다 잠결에 봤던 별들. 여름날 친구와 막걸리 한 잔에 취해 개울가에 누워 봤던 별들. 정선의 어느 산골에서 모닥불이 꺼지며 한여름 밤이슬에 추위를 느끼며 올려다본 날의 별들. 그런 날의 별들은 무더기로 산마루를 넘어 달려오며 밤하늘을 채우고 채우다 별자리마저 길을 잃는다. 별들은 머나먼 성운들이 은하수 사이에서 흘러오듯 기억 속의 별들을 불러온다. 적막한 시골의 밤을 수 놓아 나를 위로해 주던 유년 시절의 별들. 막연한 미래의 희망과 불안이 암울하게 교차하던 시절 그나마 끈끈하게 내일을 이어주는 빛이었다. 

안반데기의 노을은 오래도록 고원에 머물며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안반데기의 노을은 오래도록 고원에 머물며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별의 정서는 과거에서부터 한 뼘 밤하늘 깊은 산골짝 풀벌레 우는 여름밤에도 소리 없는 우주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지금 이곳은 어둠의 공간으로 연결된 고원의 능선이다. 별과 별 사이 숨은 별들, 사람과 사람 사이 별처럼 숨어있는 사람들을 찾아 떠났던 신경림 시인의 ‘별을 찾아서’가 생각나는 밤이다. 

 

별과 별 사이에 숨은 별들을 찾아서 
큰 별에 가려 빛을 잃은 별들을 찾아서 
낮아서 들리지 않는 그들 얘기를 듣기 위해서
 
별과 별 사이에 숨은 사람들을 찾아서
평생을 터벅터벅 아무것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서 
작아서 보이지 않는 그들 춤을 보기 위해서
 
멀리서 큰 별을 우러르기만 하는 별들을 찾아서 
그래서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는 별들을 찾아서 
흐려서 보이지 않는 그들 웃음을 보기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은 별들을 찾아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이 다 돼버린 별들을 찾아서 
내 돌아가는 길에 동무 될 노래를 듣기 위해서 

 

- 신경림  ‘별을 찾아서’

 

그래서 사람들은 히말라야 라다크로 별을 보러 간단다. 이곳 안반데기에 별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쏟아지는 별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무언가를 찾고 있을까. 도심의 불빛에도 밝게 반짝이던 시리우스나 직녀성도 이곳에서는 별과 별 사이 수많은 별 속으로 숨어버리는 지금. 오늘도 은하수를 찾아 한여름 자동차의 불빛들은 별빛처럼 깊은 계곡을 오른다.

풍력발전기와 배추밭에 약을 치는 농부들의 모습이 고원의 하늘과 어울린다.
풍력발전기와 배추밭에 약을 치는 농부들의 모습이 고원의 하늘과 어울린다.

 

축구장 280배 크기의 배추밭 장관

◆안반데기

닭목령-고루포기산(1238m)-능경봉-선자령으로 백두대간이 이어진다. 고루포기산 남쪽사면 고봉의 산들이 평탄한 지형을 이루며 여름이면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직선거리 5㎞, 200만㎡에 이르는 배추밭이다. 

안반데기 마을
안반데기 마을

제무시(GMC) 화물차가 좌우로 비틀대며 산비탈 길 화전밭을 오르던 시절, 1960년대 화전민들이 곡괭이와 삽으로 산을 깎아 개간하고 정착하며 형성됐다. 1995년에는 대를 이어 밭을 갈아 낸 25가구 안반데기 주민들이 땅을 정식으로 매입하면서 실질적인 소유주가 됐다. 척박했던 땅은 축구장보다 280배나 이르는 배추밭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안반데기로 불렀다. ‘안반’은 떡을 칠 때 쓰이는 받침. ‘안반덕’은 안반처럼 넓적한 지역을 뜻한다. ‘덕’을 강릉 사람들의 사투리로 데기라고 부르니 안반데기의 지역명처럼 됐다. 구름 위의 땅 해발 평균 1100m다. 안반데기의 행정지명인 대기리는 큰 터가 자리하고 있어 ‘한터’, ‘큰터’, ‘대기’라 불렸다고 한다. 

안반데기가 있는 백두대간은 평창과 강릉시의 경계에 있다. 강원도 아라바우길 트레킹 5코스로 피덕령에서 출발해 안반덕마을-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휴게소까지 12㎞다. 한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이 고원을 지나고 별을 기다리는 밤이면 옷 한 벌을 더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하강한다. 

 


이성영 여행객원기자 
㈜한국숲정원 이사. 자연치유여행가, 산림교육전문가, 산림치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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