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선제도 확 바꿔야 (7) 해외사례
일본, 종합 능력 갖춘 전문업체서 대규모 수선공사 진행
대만, 정부·지자체·건설사 투명·공정한 장충금제도 운용
한국, 전문가 지원・감시체계 등 외국사례 연구 적용해야

“승강기 교체든 장기수선충당금 인상이든 모두 좋다고 칩시다. 그런데 왜 갑자기 두 배씩 인상하는 겁니까.”

최근 경기도의 한 아파트는 장충금 ㎡당 단가를 2배 올려 입주민들의 항의가 거세다. A관리사무소장은 하루에 수십 차례 걸려 오는 항의 전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또 다른 아파트에는 전임 입대의 회장이 옥상 방수공사를 부정하게 진행했다고 성토하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이 아파트 B소장은 “장충금을 엉터리로 집행해 입주민에게 피해를 준 배경에는 폭리를 노린 시공사와 이에 놀아난 입대의 회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 회장이 수시조정을 통해 장기수선계획을 고치고 공사 입찰에 특허를 끼워 넣어 공사비를 계획의 3배로 집행했다”며 “승강기가 멈출 형편인데 장충금이 모자라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의 C소장은 “전문가가 아닌 동대표들이 멋대로 장기수선계획을 고쳐놓고 소장에게 입주민 동의를 받아오라고 한다”며 “지자체 감사에서는 장충금 관리의 심각한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계정과목 등 지엽적인 규정 위반을 찾아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파트 관리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장충금 논란 장면들이다. 전문가의 제대로 된 자문도 없이 장기수선계획을 수정하거나 애초 치밀하게 작성되지 않은 계획서에 따라 공사를 강행해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많다. 지자체 과태료 및 공사비 불신이 큰 상황에서 관리주체는 장기수선계획과 관련한 선관주의의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장충금은 공사업체의 탐욕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게 현장의 우려다. 한 관리회사 대표는 “장충금의 부적절한 사용에 소장이 말려들지 않도록 아예 장충금 공사업체 선정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공동주택관련 법령에 장기수선계획의 수립 및 장충금의 적립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현장의 전문가들은 법적인 강제만 존재할 뿐 장기수선계획이 적절하게 수립, 실행되도록 대상 공사, 시기, 금액을 제대로 알려주는 전문적 지원체계가 없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본, 사적자치에 맡겨 벌칙 없어”

일본의 맨션(아파트) 관리 제도를 연구한 김정인 주생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은 매 3년 장기수선계획을 검토, 실행하는 강행법 체제이지만 일본은 사적 자치에 맡겨 국토교통성의 장기수선계획 및 수선적립금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아도 벌칙이 없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그럼에도 수선계획이 매우 치밀하고 입주민들도 관리비보다 많은 수선적립금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장기수선계획 및 수선공사를 보통 위탁관리회사에 맡긴다. 위탁사가 디벨로퍼 계열이어서 아파트 건설 기획이나 시공 전문이고 아파트 상태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전문가는 “일본 아파트 관리회사들의 전체 매출 중 장기수선계획에 의한 공사 관련 매출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며 “종합적인 능력을 갖춘 전문업체가 대규모 수선공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입주민의 부담이 다소 늘어날 수 있지만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설계까지 전문업체의 자문에 따라 늘 새 아파트처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 NGO 감시 철저해 비리 없어”

지난해 OBS의 외국 장충금 제도 보도에 따르면 대만에서 적은 장충금을 내고도 높은 수준의 주거복지를 누리는 것은 건설사와 정부, 지자체가 투명하고 공정한 장충금 제도를 운용하기 때문이다. 대만의 건설사는 아파트 건설 후 바로 장충금을 적립하도록 법규로 규정돼 있다. 500억 원의 공사비가 든 아파트의 경우 약 3억 원의 장충금을 지자체에 납부해야 한다. 새집이라도 긴급한 수선항목이 발생할 경우 적립금을 신속하게 쓸 수 있어 초기대응에 필요하다는 것. 

OBS 취재기자는 “대만에서는 지은 곳이 수리도 책임져야 한다는 당연한 법칙을 따른 셈”이라며 “재건축이 까다로워 노후 아파트가 많은 이곳에 수리 비용을 입주민에게만 부가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원칙도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주거복지를 최우선 가치로 앞세운 OURs 같은 NGO(시민단체)의 감시가 철저해 장충금으로 장난칠 여지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에는 국토교통부가 장충금의 최소적립금액 기준을 고시할 수 있게 했다. 국토부는 또 아파트 장충금을 통합 관리하는 기금을 만들고 최소적립기준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한 전문가는 “장충금에 관한 법률만 엄격하게 만들어 놓는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현장에서 불거지는 문제의 개선 방안을 해외사례를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 지원체계 △부족한 장충금을 보완할 기금운용 등 금융지원 △장충금의 투명한 사용에 대한 감시 체계 등 외국 사례를 연구해 아파트 관리현장에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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