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 프놈펜・깜폿・시아누크빌 여행기

한국 시간 오전 3시는 캄보디아 시간으로 새벽 1시다. 프놈펜에서 살고 있는 지인의 안내로 시내 골목 여행자의 거리를 들어선다. 한밤중이라 더위는 없다. 일본인이 운영한다는 카페 야외 식탁에서 맥주 두 병을 시킨다. 골목길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이동시간의 피로를 날린다. 

눈이 많은 일본의 북부지방에 가려다 여행지를 갑자기 캄보디아로 변경했다. 자정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예약한지라 빠른 입국을 위해 대사관에서 미리 비자를 발급받고, 인천공항에서 항저우를 거쳐 프놈펜으로 가는 항공을 이용했다. 

앵무새의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어느새 아침이다. 고층아파트의 활짝 열린 창문으로 바삭 강이 유유히 흐른다. 시원한 바람은 넓은 실내 공간을 지나 반대편 창문으로 빠져나간다. 

톤레삽 강과 바싹 강이 메콩강으로 합류하는 프놈펜의 강변 /이성영
톤레삽 강과 바싹 강이 메콩강으로 합류하는 프놈펜의 강변 /이성영

 

메콩강 선상서 화려한 야경 즐겨

프놈펜은 프랑스의 식민 잔재와 크메르의 영향이 어우러진 도시다. 인구 200만 명 정도가 사는 캄보디아의 수도다. 화려한 은탑과 에메랄드 부처가 있는 왕궁이 보인다. 캄보디아 하면 북부의 앙코르와트를 여행지로 떠 올리지만 캄보디아의 수도와 주변의 도시를 보지 않고 그 국가의 현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도시의 건설과 함께 1373년에 거리의 언덕에 사원이 세워졌다. 펜 부인이라는 사람은 믿음이 깊은 여성으로, 강을 따라 흘러온 불상을 사원에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그 사원을 왓프놈(Wat Phnom)이라고 불렀고 그 언덕을 ‘펜의 언덕’이라는 ‘프놈펜’으로 불렀다고 한다.

프놈펜의 황금사원/이성영
프놈펜의 황금사원/이성영

늦은 아침 식사 후 왕궁 근처에서 툭툭이 기사와 흥정을 마치고 톤레샾 강을 끼고 달려본다. 툭툭이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이동 수단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아름다운 거리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거리를 달린다. 캄보디아 국왕이 살고 있다는 화려한 왕궁과 사원을 지나친다.

말로만 듣던 ‘킬링필드’의 현장도 지나간다. 1970년대의 전쟁과 학살로 인해 피로 얼룩진 도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킬링필드’로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건이다. 킬링필드는 폴 포트가 주도하던 민주 캄푸치아에서 크메르루주가 사람들을 대규모로 처형한 사건으로 이를 전후한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많은 학살을 일컫는 말이다. 수십 년 전의 사건들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는 그림자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날 밤 우리는 어둠이 밀려오는 메콩강 선상에서 도심의 불빛들이 화려한 조명으로 비추는 것을 봤다. 과거의 크메르 문화와 식민지배, 대규모 학살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몸짓처럼 보인다. 도심의 강 너머로는 개발의 흔적들. 뿌연 흙먼지들이 수도권의 도로에 풀풀 날리며 도약하려는 흔적을 남긴다. 

최남단 항구 도시 시아누크빌(Sihanouk ville)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시아누크빌은 프놈펜의 남서쪽 도시다. 226㎞ 떨어져 있어 고속도로로 3시간 30분 정도 달려야 만난다. 보텀 사코어 국립공원과 보코산 국립공원 사이에 있어, 국립공원을 들러 시아누크빌로 가기 위해 깜폿을 경유하기로 한다. 

깜폿의 과일가게 /이성영
깜폿의 과일가게 /이성영

보코산(Mount Bokor)국립공원은 캄보디아의 남부 깜폿주에 있다. 남부 해안지역에 있는 캄폿은 각종 해산물과 두리안, 후추, 소금의 주요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열대과일들을 재배하고 있는 농장들이 많아 과일시장은 싱싱한 과일들로 넘쳐난다. 두리안, 바나나, 코코넛, 롱간, 망고, 밀크프룻 등 수많은 과실수가 재배되고 있다. 도로 주변 시장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우리는 시장에서 과일을 한 보따리 산다. 

푸렉뜩츄 강으로 흘러가는 보코산 정상의 넓은 호수/이성영
푸렉뜩츄 강으로 흘러가는 보코산 정상의 넓은 호수/이성영

보코산의 호흡으로 시작된다는 강가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동남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맑은 물이다. 서양인들이 여행 와서 장기간 머문다는 깜폿의 강가는 잘 정돈된 숙소들과 카페들이 있어 정갈하다. 

 

다양한 액티비티 여행 매력 만끽

강가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인근의 보코국립공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국립공원으로 오르는 차도에는 원숭이가 길가에 많이 나와 있어 차의 속도를 천천히 늦춰 본다. 원숭이들이 밀림 곳곳에서 나와 줄지어 쫓아 오니 속도를 내 도망치듯 산길을 다시 오를 수밖에. 보코국립공원은 울창한 숲과 대규모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다. 

깜폿은 정글 트래킹, 자전거 여행, 강 크루즈 여행, 낚시 여행 등 여행의 매력을 끄는 곳이다. 보코산은 1000m 정도의 넓은 구릉지로 이뤄져 있다. 그곳에는 1920년대 프랑스의 엘리트들이 사용하기 위한 휴양 산장이 지금도 건재해 있다. 건물은 한때 불길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5성급 르보코로 팔라스 호텔도 새로 갖췄다. 

보코산국립공원 정상, 영화 ‘알포인트’ 촬영장/이성영
보코산국립공원 정상, 영화 ‘알포인트’ 촬영장/이성영

이 호텔은 온난한 열대성 기후로 습한 날씨 때문에 연중 안개에 싸여있는 날이 많다. 그 묘한 분위기 때문에 귀신이 산다고 소문나 있다. 1972년 월남전을 배경으로 실종된 대원들은 찾아 나선 수색조가 유령과 싸운다는 퇴마적 공포 영화로 2004년 개봉된 ‘알포인트’의 촬영지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오후에는 안개가 없었다.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고요하다. 정원에서 발아래 까마득한 절벽과 멀리 뽀얀 안개처럼 보이는 바다를 바라봤다.

다시 시아누크빌로 가기 위해 4차선 정도의 비포장 3번 국도로 들어선다. 한때 우리나라의 모 건설회사가 도로공사를 했던 곳이라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포장길로 변했다고 한다. 지금이 건기이니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차를 덮는다. 우기에는 물웅덩이가 생겨 지나가기가 쉽지 않다고도 한다. 

볼거리 없는 평야 지대를 지나다 가끔은 제비집 공장을 만난다. 제비요리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바다가 가까운 깜폿과 시아누크빌에서는 제비집 공장을 종종 볼 수 있다. 높은 건물을 올려 제비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을 수없이 만들어 제비가 그 안에 들어와 제비집을 만들면 수거해 판매하는 방법이다.

제비가 바닷가 해초를 물어와 집을 지을 때 제비의 젤라틴 같은 침이 흰색으로 굳어지는데 그것을 분류해 요리의 재료로 쓴다고 한다.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시알산과 당단백질이 들어있어 항염 및 면역조절, 뇌신경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베트남의 깐저 등 동남아 일부에서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제비집을 채취해 중국으로 수출한다. 제비집을 짓는 제비는 몸길이 20㎝ 정도. 우리가 알고 있는 제비와 비슷하지만 칼새목 칼새과인 흰집칼새로 해안의 암벽이나 고층 건물 등에서 집단 번식하는 특성이 있다. 한국에도 신안군 칠발도에 번식지가 있어 천연기념물 33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캄보디아는 지도상으로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에 둘러싸여 있다. 출구는 바다가 있는 남서부의 타이만이 유일하다. 시아누크빌은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상 루트이기에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시아누크빌 도심을 경유하지 않고 바닷가의 외곽으로 차를 돌리니 끝없는 해변이 나타난다. 

 

끝없이 펼쳐지는 해안 모래 감탄

숨이 막힐 것 같은 비포장도로를 달려왔으니 옥색 바다와 새하얀 모래의 풍경들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고운 모래로 이어지는 소카비치, 인디팬던스 비치, 하와이 비치가 끝없이 연결돼 있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캄보디아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인구 20만 명 정도 되는 휴양도시이다.

시아누크빌의 구도심을 제외한 신시가지는 도시 전체가 중국 자본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실감케 한다. 일대일로는 육・해상 신실크로드 경제권을 형성하고자 하는 중국의 국가전략이다. ‘일대’는 여러 지역이 통합된 ‘하나의 지대(one belt)’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뜻한다. 

단조로운 중국식 건물들이 밤이면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빛나고 있다. ‘마카오를 옮겨 온다’는 말까지 들리니 크고 작은 카지노 100여 개가 성업 중이다. 멋없는 중국식 건물들을 벗어나니 고요한 해변이 세상의 일들을 잊어버리게 한다. 해안의 고운 모래 위로 맑은 바닷물은 수백 미터를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옥색 빛으로 찰랑거린다. 

10㎞ 정도 이어지는 시아누크빌의 해변과 옥색 물빛의 타이만/이성영
10㎞ 정도 이어지는 시아누크빌의 해변과 옥색 물빛의 타이만/이성영

시아누크빌은 코롱(koh Rong) 및 코롱 삼로엠(koh Rong Samloem) 섬 등 아름답고 조용한 10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보트 여행, 섬 탐험, 스노클링, 낚시 등 휴식을 제공한다. 우리는 항구의 시장에서 작은 게와 갑오징어를 사서 들고 호젓한 해변의 민가 같은 식당에 가서 찜 요리를 부탁한다. 맥주와 함께 식당에서 만들어 온 요리를 먹으며 타이만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보노라니 여행의 피로가 사라진다. 찰싹이는 바닷물과 부드러운 모래알이 발바닥을 마사지한다. 밤이 돼서야 바다로 들어가 보는데 포근하게 몸을 감싸 안는 따뜻한 바닷물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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