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2) 홀리데이 인 ‘치앙라이’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여행자의 도시를 떠나 치앙라이로 향한다. 어젯밤 치앙마이 ‘나이트마켓’ 광장에는 버스킹 가수의 통기타 선율과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wind)’이라는 밥 딜런(Bob Dylan) 원곡의 노래였다. 2016년 음악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까지 밥 딜런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로 반전운동을 대변하는 노래로 잘 알려진 곡이다. 오랜만에 이국의 땅에서 듣는 그 노래의 여운이 채가시지 않아 달리는 차 안에서 마음속으로 흥얼거려 본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자유라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은 얼마나 여러 번 고개를 돌리고 외면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속에 있다네/ 불고 있는 바람 속에서 날아가고 있다네’ 

지나가는 작은 마을들은 우리나라 온실에서나 볼 수 있는 부겐베리아 선홍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치앙마이주와 치앙라이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쿤째 국립공원을 지난다. 이곳을 관통하는 118번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에 태국 최북단 도시가 있다. 

 

해발 1000m 구불구불 산길 달려

치앙라이로 가는 중간쯤에 메카짠 온천이 있어 잠시 쉬어간다. 온천을 노천으로 흘려 무료로 발을 담글 수 있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여행자의 휴게소 역할을 한다. 역시 오늘도 날씨는 좋다.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마음을 청아하게 한다. 치앙라이주에 진입해 도심으로 직진하지 않고 구글 지도의 ‘Rural Road 3037’이라고 표기된 지방도로를 따라 산길을 오른다. ‘시골길 3037’이라는 뜻이다. 

구불구불한 산길. 도로 아래로 기암의 봉우리들이 메수아이댐(Mae Suai Dam)의 물에 비치는 뷰포인트다. 지나가는 차는 구불구불 산길을 곡예처럼 잘도 달린다. 해발 고도 1000m를 훌쩍 넘기며 고산을 오르고 있다. 

태국 치앙라이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미얀마의 샨주(州)의 산악지형에는 소수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우리가 마약왕이라고 알고 있는 쿤사는 1960년대 초 미얀마 샨족 반군을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산악지형인 그곳에서 양귀비 재배에 앞장서면서 40년 가까이 전 세계 마약의 70~80%를 공급했다. 나중에는 태국, 라오스, 미얀마의 국경에 거주하는 카친족, 라후족 등 소수민족까지 흡수해 골든 트라이앵글(황금 삼각주)을 마약 밀매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마약에 대한 전 세계적인 우려와 압박에 점차 고립됐다. 그는 결국 미얀마 정부군에게 투항한다. 2007년 사망하기까지 여생은 편하게 지냈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그렇지만 그 잔재는 치앙라이 곳곳을 황폐하게 했다. 반군 토벌 시에 탈출한 소수민족들이 태국 국경의 고산지역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삶을 영위하는 수단으로 화전을 택했기 때문이다. 

치앙라이와 치앙마이 등 태국 북부지역은 매년 2~4월 지독한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요 원인은 산악지역의 화전이다. 그래서 태국 왕실에서는 북부 소수민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로열 프로젝트(Royal Project)’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미얀마와 경계를 이루는 치앙라이주 도이퉁(Doi Tung·도이똥)’에는 현 국왕의 어머니이자 전 왕비의 별장이었던 로열빌리와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플라워가든인 매파루앙 정원(Mae Fah Luang Garden)이 있다. 왕비는 과거 아편 재배지였던 태국 북부에 1969년 도이퉁 재단을 설립해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인물이다. 도자기, 커피, 차 등을 생산하게 해 소수민족의 삶을 바꾸게 했다. 

 

마약재배가 커피재배로 탈바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도이창 지역의 도이창(Doi Chang) 커피도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도이창에 있는 아카마을 커피재배농장은 예전에는 마약 재배가 이뤄지던 곳이었다. 도이창의 도이는 산, 창은 코끼리를 뜻한다. 태국어로 ‘코끼리 산’이 있어 도이창이라는 지역 명칭이 됐다. 주변에 아카족들이 모여 산다. 

도이창 커피
도이창 커피

열흘 정도 같이 다녔던 자동차 기사가 도이창 커피농장을 들르기 전에 아카족들이 운영하는 아카팜(AkhaFarm Ville·양떼목장)을 소개한다. 자기도 아카족이라고 은근히 말한다.

아카마을에서 재배하는 커피는 800m 이상에서만 자라는 아라비카 커피다. 아카마을의 해발 1000~1500m의 고산에서 재배된다. 커피농장은 아카족 3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피사새두의 아들 아도파가 농장경영을 하고 농장에 소속된 65개 농가와 팀을 이루며 최고의 도이창 커피생두를 만들어 내는 협동조합식의 농장으로 발전했다. 

아카족들이 운영하는 도이창지역의 양떼목장
아카족들이 운영하는 도이창지역의 양떼목장

태국의 대표적인 커피 와위(Wawee), 도이퉁(Doi Tung), 아카아마(Akha Ama) 브랜드와 더불어 도이창의 오가닉 유기농 커피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잘 익은 커피체리만을 한 알씩 골라 손으로 수확해 자연건조 후 판매한다. 호텔의 아침 식사 때마다 제공되는 커피의 맛이 일품이었던 것이 그 이유에서였을까.

아카족 농장과 마을들이 있는 해발 1500m를 정점으로 차 한 대 다닐만한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 보면 소수부족들이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산촌들을 만난다. 

도이퉁에 있는 전 왕비의 매파루앙 정원에서 민속춤을 연습하는 아카족의 어린이
도이퉁에 있는 전 왕비의 매파루앙 정원에서 민속춤을 연습하는 아카족의 어린이

태국의 주요 고산족으로는 카렌(Karen), 몽(Hmong), 라후(Lahu), 아카(Akha), 야오(Yao), 리수(Lisu) 등이 있다. 그중에 카렌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카렌족은 치앙라이, 치앙마이 등의 북부지역뿐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산다.

롱넥 카렌도 그중 하나다. 길이 30㎝ 정도의 황동으로 만들어진 코일을 목에 두른 여성들의 모습이 언론에 소개되며 세계적으로 카렌족의 명성을 알리게 됐다. 치앙라이에는 ‘5개 부족마을’이라는 관광지가 있다. 우리의 민속촌 정도 되는 목적성 마을일 것이다. 높은 산, 깊숙한 지역으로 들어가야 진짜 그들의 삶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치앙라이는 란나 왕국의 초기 수도였던 곳이다. 치앙라이(Chiang Rai)는 당시 왕이었던 멩라이(Meng Rai)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태국어로 치앙이 도시라는 뜻이니 ‘멩라이왕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후 미얀마(버마)의 잦은 침입으로 1296년에 남쪽에 신도시 치앙마이를 세웠다. 태국어로 마이는 새로움을 뜻한다. 

치앙라이는 1558년부터 미얀마의 지배를 받게 됐다. 1774년에는 딱신 왕에게 정벌된 후 현 태국의 왕조인 짜끄리 왕조의 조공국이 돼 치앙마이에 속해졌다가 1993년 별도의 주(짱왓)가 됐다. 치앙라이는 북서쪽으로 미얀마와 경계를 이룬다. 북동쪽으로는 메콩강을 사이로 라오스에 접해 있다.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리며 1997년부터 지금까지 건축 중인 백색사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리며 1997년부터 지금까지 건축 중인 백색사원

 

백색사원, 청색사원, 흑색박물관

접경지역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치앙라이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에 좋은 잔디를 갖춘 골프장들이 있어 골퍼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도시기도 하다.

태국의 아티스트인 찰름차이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백색사원 왓 롱쿤(Wat Rong Khun)이 지어지고 있다. 그의 제자 푸타 살라녹 캅깨우가 설계한 청색사원 왓 롱 쓰아뗀(Wat Rong Suea Ten)의 현대적 불교 건축물도 있다.

치앙라이 출신 태국의 국민화가 타완 두차니가 살던 곳을 박물관으로 만든 블랙하우스 반담박물관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40여 개의 검은색 건물 안에 죽음과 어둠을 표현한 수집품 박물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원을 돌아다녔던 호랑이를 위해 지어진 왓 렁 쓰아텐(춤 추는 호랑이의 집) 청색사원
사원을 돌아다녔던 호랑이를 위해 지어진 왓 렁 쓰아텐(춤 추는 호랑이의 집) 청색사원
어둠과 죽음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반덤 박물관
어둠과 죽음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반덤 박물관

도심의 황금색 시계탑도 야간에 볼거리다. 색색이 어우러진 컬러풀한 도시는 지금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방법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다.

메콩강을 사이로 태국의 치앙라이주, 미얀마의 샨주, 라오스의 보케오주가 만나는 3국 접경지역은 골든트라이앵글(황금의 삼각주)로 불린다. 메콩강은 티베트고원에서 시작해 중국, 미얀마와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관통한다. 

메콩강을 달리는 롱테일보트. 왼쪽은 라오스, 오른쪽은 태국이다.
메콩강을 달리는 롱테일보트. 왼쪽은 라오스, 오른쪽은 태국이다.

우리는 골든트라이앵글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메콩강의 황토색 물보라를 맞으며 라오스 완충지역에 다다른다. 문득 10년 전 까마득한 협곡의 산길을 따라 중국 윈난성의 란창강 물길을 바라보며 동티베트으로 가던 길을 떠올린다. 그때 란창강 물도 황토물이었다. 그 강이 이곳의 메콩강이 된다.

 

이성영 여행객원기자 / ㈜한국숲정원 이사. 산림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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