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전 입대의 회장 도장 안넘겨 관리자금 못써”
전 회장 “선관위 구성에 하자” 주장 잇단 소송 제기
세무서, 분쟁 이유로 대표변경 거부…입주민들 고통

“체감온도 영하 20℃인데 난방이 안 돼서 집 안이 냉동고예요. 이게 사람 사는 곳인가요.” 

최강한파가 몰아친 1월 말,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가 노후화한 난방 배관이 파손됐는데도 수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입주민들은 13일째 추위에 떨고 있다. 무슨 사연일까. 

◇입주민 “이 피해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하나” 

이 아파트는 총 26개 동 2000여 세대의 대규모 단지다. 이곳 1403동과 1413~1416동 등 5개 동의 난방 배관이 동시에 터진 것은 1월 19일. 해당 동의 입주민 310세대는 금요일 저녁 배관 사고가 발생한 탓에 3일간 추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관리사무소는 월요일인 22일이 돼서야 급히 난방 배관의 누수 부분에 밴딩 처리를 했다. 하지만 23일 1416동(30세대)의 배관이 또 터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밴딩 처리로도 누수를 막을 수 없었다. 22일부터 시작된 강추위가 더 심해져 23일은 올해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이날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4℃. 한시라도 빨리 배관을 교체해야 했지만 공사 착수도 하지 못했다. 

이 아파트 김인해 관리사무소장은 “지난해 5월 임기가 끝난 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A씨가 아직도 자신이 회장이라고 주장하며 도장을 인계하지 않아 관리에 필요한 자금을 단 1원도 지출할 수 없다”고 속사정을 들려줬다. 그는 “앞서 배관이 터진 4개 동도 긴급조치만 취했을 뿐 여전히 물이 새고 있어 언제 난방이 중지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416동 입주민 B씨는 “남편이 전립선암과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데 추운 방 안에서 온풍기로 겨우 버티고 있다”며 “아파트 측이 추위에 떠는 입주민들을 위해 경로당을 열어뒀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데리고 나올 수조차 없다”고 한탄했다. 다른 입주민 C씨는 “양말을 두 켤레씩 신어도 바닥을 딛지 못할 정도로 바닥이 차갑고 냉동고 같은 곳에서 2주가량 살다 보니 울화가 치민다”면서 “이 피해를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하느냐”고 분개했다. 

서울 노원구 모 아파트에서 관리비 지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입주민 공청회가 1월 27일 열렸다.
서울 노원구 모 아파트에서 관리비 지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입주민 공청회가 1월 27일 열렸다.

◇입주민들 전 회장에 “도장 내놓아라” 

1월 27일 오후 3시, 아파트 단지 내 경로당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입주민 공청회가 열렸다. 입주민 100여 명이 참석한 공청회에는 17대 전 회장 A씨와 오의석 18대 현 회장, 김성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노원구병), 김준성 노원구의회 의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지난해 7월 입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오 회장은 “A씨가 도장을 인계하지 않은 채 선관위, 노원구청 등을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걸며 제18대 입대의 구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그는 “A씨가 (회장 시절부터) 2년이 넘도록 협력업체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 업체들이 용역을 거부하는 등 안전시설에 대한 위험이 증대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입주민 D씨는 A씨에게 “입주민에게 봉사하겠다며 회장에 취임해 놓고 왜 우리를 못 살게 하느냐”며 “당장 1416동 난방 배관을 고칠 수 있도록 도장을 넘기라”고 따졌다. 이에 A씨는 “난방 배관 파손 원인을 찾기 위해 도면을 갖고 왔다”거나 “내가 보일러 설비 기능사 자격증이 있어 해결할 수 있다”는 등으로 답변해 입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A씨가 김 소장을 향해 “나한테 (난방 배관 파손을) 왜 보고를 안 했느냐”고 외치자 일부 입주민들은 “소장이 당신에게 왜 보고 해야 하냐”고 맞섰다. 

공청회 내내 분노한 입주민들과 A씨 간에 여러 차례 고성이 오갔다. A씨는 입주민들이 “도장을 내놓으라”고 하면 “그럴 일 없다”고 맞대응했다. 입주민들이 “당신의 임기가 끝났지 않았느냐”고 항의하자 그는 “(회장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법정에서 만나자”며 자리를 떴다. 입주민들이 A씨를 둘러싸고 항의를 계속하자 A씨는 “왜 집에 못 가게 하느냐”며 경찰에 신고해 경찰이 두 차례 출동하기까지 했다. 

◇잇단 소송에 세무서는 ‘난 몰라’ 

A씨가 2023년 5월 23일 2년 임기를 마치자 이 아파트 선관위는 6월 2일 동대표 선거를 거쳐 7월 7일 오 회장을 제18대 입대의 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러자 A씨와 입주민 두 명이 동대표 선거를 관리한 선관위 구성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지난해 6월 선관위를 상대로 제기한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은 법원으로부터 기각됐다. 

노원구청은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오 회장 등의 입대의 변경 수리를 보류하다 법원의 결정문을 근거로 11월 9일 입대의 변경 신고를 수리했다. A씨 측은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고했으나 지난해 12월 또다시 기각됐다. 그러자 A씨는 최근 노원구청을 상대로 ‘제18대 입대의 구성 신고 취소’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겹치기 소송으로 분쟁아파트가 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A씨가 도장 인계를 거부하는 것. 관리비 출금을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증의 대표자를 변경해 은행 인감을 변경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사업자등록증을 발급하는 세무서는 ‘대표권에 대한 분쟁’을 이유로 사업자대표 변경을 거부하고 있다. 아파트 측은 1심과 2심 결정문을 근거로 세무서에 11, 12월 두 차례 사업자대표 변경을 신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결국 은행 인감 변경도 불가능해 관리비를 쓸 수도 없는 처지다.

공청회를 지켜본 김성환 의원은 “노원세무서장을 만나 ‘입주민들이 고통받고 있으니 고등법원의 결정을 반영해 대표자를 변경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으나 ‘분쟁 중이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상황을 전해줬다. 그는 “최근 구청에서 공문을 보냈는데도 세무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이어 “아파트는 비영리법인에 가까운데도 세무서가 과도한 권한 행사를 하고 있다”며 “국세청과 상의해 해당 예규를 변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A씨의 횡포와 노원세무서의 소극 행정 및 업무해태로 인해 6000여 명의 입주민과 관리직원, 협력업체 등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일단 세무서에 법원 확정증명원 등 필요서류를 제출하고 사업자대표 변경을 추진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추후 세무서를 상대로 형사고발은 물론 국민권익위원회에 세무서의 소극 행정을 신고하는 등 강력히 대응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아파트는 이미 2021년부터 당시 A회장의 인감 날인 거부로 직원들에게 임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올 1월 현재 28개 업체에 27억여 원이 미지급된 상태여서 각종 용역서비스가 중단될 위기다. 실제로 경비·미화 용역업체는 1월 말 아파트 측에 “2022년 10월 1일부터 용역비가 미입금돼 2월 29일 자로 서비스 종료가 불가피하다”고 통보했다. 이렇게 되면 50여 명의 경비·미화원은 직장을 잃고 아파트는 경비·미화원마저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관리비를 쌓아두고도 2년 6개월여 지출을 하지 못해 김 소장과 관리직원, 동대표들이 사비로 급한 지출을 겨우 때워가고 있다. 오 회장은 1월 31일 공사비를 사비로 선결제하고 1416동의 난방 배관 교체 공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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