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조한 투표율에 현장 노심초사
과반 동의 불발 땐 입주자도 피해

주택관리업자 선정 시 중요사항에 대해 입주자등의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한 개정 공동주택관리법 조항을 완화·유예하려는 다양한 노력에도 정부는 꿈쩍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동의절차 완화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 관리현장이 걸었던 한 가닥 기대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문제의 개정법은 2022년 12월 11일 시행됐다. 그해 6월 10일 개정법이 공포된 후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등 관련 3단체는 시행을 막기 위해 6개월간 사투를 벌였으나 역부족이었다. 개정법 시행 후 서범수 의원이 발의한 전체 입주자의 과반수가 참여하고 참여자 과반수가 동의하는 방법으로 절차를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은 아직껏 국회에 머물러 있다. 

하원선 대주관 협회장은 지난해 협회장 선거 때 “개정법은 미래의 주택관리사 제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최악의 법”이라고 비판했다. 동대표들이 의결권을 갖고 있음에도 입주자등에게 권한을 넘긴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관리주체가 갖고 있는 집행권도 상황에 따라 입주자등의 동의를 받아 집행해야 하는 식으로 엉뚱한 법이 나올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동의절차를 완화하는 새로운 법안을 검토하지 않는다면서 “관리업체 재계약은 입주자들에게 민감한 문제”라는 이유를 들었다. 국토부는 지난해 초 논의 때도 입주자등의 참여를 보장하는 개정법의 취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입주자의 이익을 지켜주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입주자에게 민감한 문제는 관리 현장에는 훨씬 더 민감한 문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입주자의 권익은 확실히 보장하지 못한 채 관리주체와 관리종사자들의 부담은 확실히 늘려놓는 법규를 정부는 왜 지지하는가.

개정법 시행 후 1년 남짓하다. 그동안 주택관리업자 재계약을 경험했던 아파트들은 예상대로 입주자 투표율이 매우 낮은 걸 보고 혀를 찬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 지자체는 온라인 투표 지원에 나섰을 정도다. 전자투표 이용료 등을 지원해 투표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한 아파트는 저조한 전자 투표율 탓에 선거관리위원까지 총동원해 방문 투표에 나서 겨우 재계약 동의를 얻어냈다. 한 관리직원은 투표 독려 전화를 하면서도 불안에 떤다. 수화기 너머의 입주자가 재계약에 찬성할지 안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관리직원들은 목숨 줄을 잡고 있는 입주자에게 투표를 독려하며 이중 삼중의 고충을 느낀다고 한다. 

입주자 과반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70%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입주자가 많은 대단지는 만만치 않다. 현재 국내에서 세대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송파구의 헬리오시티는 9510세대다. 이곳은 6657세대가 투표에 참여해야 과반수 동의가 나온다는 것인데, 상상만 해도 쉽지 않다. 2025년 1월 입주 예정인 올림픽파크포레온은 1만2032세대나 된다.

투표가 저조해 재계약이 안 되면 관리의 공백이 생기기 쉽다.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관리사무소장과 직원들이 관리업체와 함께 아파트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 회장은 관리업체가 재계약을 위해 무리하게 관리직원 급여를 낮춰가며 입주민의 동의를 애걸하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입주민의 무관심과 미참여 등으로 과반의 동의가 불발돼 제때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대주관 10대 집행부는 올해 주요 과제로 입주자 동의 절차 완화 법안의 국회 통과를 꼽았다. 이를 위해 국토부, 국회와 꾸준히 대화하며 관리 현장의 어려움을 전달할 예정이다.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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