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규정 ‘감사 재료’ 삼는 지자체
개정사항 알 수 있게 적극 홍보를

입주민 안전 확보, 관리 투명화라는 목적으로 다양한 법제도가 제정·개정돼 공동주택에 적용되고 있지만 관리현장에서는 과태료 부과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가 입찰공고를 낼 때 업체로부터 과징금 증빙서류를 받도록 한 개정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도 그런 사례가 될까 우려된다. 

개정 지침은 지난해 6월 시행됐다. 입찰담합을 방지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올라온 입찰공고 1000여 건 중 무작위로 60건을 살펴본 결과 10곳 만이 과징금 증빙서류를 요구했다. 물론 제출서류 목록에 과징금 증빙서류를 필수로 기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아파트 측이 업체로부터 서류를 받지 않아도 공정위 홈페이지를 통해 입찰 참가 업체의 과징금 이력을 확인해 문제가 없는 업체를 선정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파트를 직접 지도·감독하는 지자체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국토부는 일단 법령을 만들고 나면 공동주택 관리 관계자들이 알아서 법제도 개정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준수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지자체는 개정 법제도를 ‘주요 미비사항’으로 보고 허점을 파고들 준비를 한다. 마음만 먹으면 과징금 증빙서류를 요구하지 않은 아파트를 뽑아 기획감사 후 과태료를 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지자체 공동주택 감사담당자는 소장들이 바뀐 제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기획감사 소재로 좋겠다”고 눈을 번뜩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지자체가 공동주택에 과태료 처분을 내리는 사유 중 선정지침 위반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6개 지자체가 2019~2021년 내린 과태료 처분 691건 중 55.4%가 선정지침 위반사항이었다. 관리현장에서 지키기가 어려운 게 선정지침이다. 민원인이나 지자체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선정지침은 과태료 남발의 근원이 되고 있다. 하원선 대한주택관리사협회장이 선정지침을 폐지하겠다는 파격적인 목표를 제시할 정도다.

본보는 기획기사를 통해 관리 투명화와 입주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각종 제도가 관리현장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미적지근하고 때로는 과징금 처분 실적 경쟁을 벌이는 것 같은 모습까지 연출한다. 현장의 ‘죽겠다’는 비명이 되레 늘어나는 상황이다. 효율적이고 투명한 관리를 위한 제도가 공동주택을 향한 과태료 딱지를 쏘아 대는 ‘대포’로 변질해서는 안 된다.

바뀌는 법제도를 파악해 업무에 반영하는 것이 관리책임자인 관리사무소장의 역할이다. 문제는 워낙 여러 종류의 법제도가 공동주택에 적용되고 개정이 잦다는 점이다. 소장이 일일이 개정사항을 살피기가 쉽지 않다. 부산시 한 아파트의 소장은 대주관 부산시회가 개정 지침을 반영한 표준 양식을 배포한 덕에 입찰공고에 반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주택관리사는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 개정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관리업무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쁜 소장이 그 내용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별도 안내가 없으면 소장들이 개정 사실을 모르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기댈 곳은 지자체의 홍보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위탁관리업체의 교육이다. 김병직 대주관 부산시회장은 본회와 시도회, 위탁사가 법제도 개정사항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불이익 사례를 예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주관의 새 집행부가 법제도 모니터링을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회원을 대상으로 한 개정내용 홍보와 교육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지자체도 움직여야 한다. 공동주택 지도·감독의 취지는 적발이 아닌 계도다. 지자체는 법제도 개정내용을 즉각 반영하지 못한 점을 들쑤시기에 앞서 적극적인 홍보로 문제를 예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소장들은 하루에 수십 건의 팩스를 받아도 공동주택에 영향을 미치는 지자체의 공문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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