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은 예산만 따면 그만
“입대의 설득하는 게 옳은 방향”

현장의 어려움을 감안해 한동안 유예됐던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선임 및 성능점검 과태료 규정이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안전이나 환경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면 이 분야에서 새로운 의무가 생겨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새로운 규정이 등장하면 새로운 과태료의 근거 또한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다. 관리현장이 의무 신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파트들은 과태료가 유예되면 관련 의무 준비도 유예하는 게 보통이다. 부지런한 관리사무소장이라도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쉽지 않다. 단속당하지 않는데 미리 돈을 써가며 의무 기준을 맞추려 하는 소장을 칭찬하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는 전국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간 과태료 유예를 이유로 자격 선임을 미룬 아파트들은 당장 압박을 받을 것이다. 바로 500세대 이상 1000세대 미만, 300세대 이상 500세대 미만 중앙난방식 공동주택들이다. 이들은 며칠 남지 않은 올해 연말까지 자격 선임을 하고 내년 4월 17일까지 최초 점검을 실시해야 과태료를 피할 수 있다. 

자격 선임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공동주택은 부랴부랴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우대를 내걸고 직원을 구하거나 기존 직원을 관리자로 선임하고 있다. 어떤 아파트는 소장이 자신보다 높은 급여를 내걸고 관리자를 찾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자격자들이 모두 아파트를 직장으로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기계설비법은 공동주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관리자 의무 선임은 연면적 1만㎡ 이상인 건물이 대상이다. 학교 건물도 그중 하나다. 경기도 교육청의 경우 “관련 예산이 없어 관리자 선임이 어렵다”고 주장하며 선임을 늦추다 지난 8월 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의 청구로 감사원의 기관감사를 받기도 했다. 경기도 교육청은 그 후 관리자 선임을 서둘렀고 현재 98%까지 선임을 마친 것으로 지역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비용에 관한 것이다. 경기도 교육청은 내년 자격자 선임비, 유지관리, 성능점검을 위해 예산 377억 원을 편성해놓았다고 한다. 정부 기관은 예산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세금에서 척척 지원된다. 아파트는 다르다. 같은 예산 편성 방식이지만 입대의를 설득하랴, 입주민의 불평을 들어주랴,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의 기계설비법 조항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는데 공동주택들은 왜 관련 관리자를 별도로 선임하지 않거나 선임을 늦춰왔을까. 현장은 “인건비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소장들이 아파트 인건비를 고민하느라 정부와 충돌하고, 법령을 어기고, 과태료를 맞을 필요가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다. 인건비를 걱정할지, 입대의 설득에 나설지, 선택해야 한다. 물론 어느 한 쪽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라는 말은 아니다. 무조건 관리비 부담만 중시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 공동주택 관리전문가는 “법령이 과도하거나 오락가락할 때도 있지만 환경과 안전 규제의 강화 추세를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관리주체도 이를 받아들이고 관련 법령을 바탕으로 입대의를 설득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다. 모 주택관리사는 “이미 전국 주요 아파트의 관리비 내역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마당에 두려울 게 무엇이냐”고 말한다. 법령에 따른 관리비 추가 부담은 당연히 입주민의 몫으로 전제하고 업무를 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소장들은 이를 “현장을 모르는 이상론”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업무 원칙 전환을 고민해 봐야 한다.

아파트 시설직 관리직원들은 “인건비를 올리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관리과장, 시설과장에게 기계설비, 전기 등 자격을 줄줄이 붙이려고 한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이들의 불만은 소장을 향한다. ‘소장은 입주민과 논의도 하기 전에 과장들에게 자격 선임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지적이다. 소장이 관리비 걱정하느라 굳이 직원과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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