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교체 입찰조건 완화 요구…으름장…지자체에 민원 공세”
해당 아파트 관리소장 “비용 적은 혼합배관 방식 결국 변경”

한동안 잠잠하던 아파트 공사 입찰 방해가 또 나타났다. 일부 공사업체의 영업 관계자들이 아파트에 입찰조건 변경을 요청하는 정도를 넘어 여럿이 몰려와 으름장을 놓거나 경쟁 업체에 입찰 포기를 종용하는가 하면 지자체에 민원 공세를 펴기도 했다.

입찰 방해는 강원지역 A아파트가 급수용 배관교체공사 3차 입찰을 위해 현장설명회를 개최한 지난 5월 발생했다. 이 아파트는 20년가량 사용시 녹물이 나오기 쉬운 백강관 급수용 배관을 일부는 스테인리스관으로, 일부는 PB관으로 교체를 추진하고 있었다. 혼합방식은 스테인리스관만 사용하는 경우보다 공사비가 20% 이상 저렴하다고 한다. 백강관 배관은 1994년 건축승인 때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설명회장에 여러 업체 관계자 8~10명이 몰려와 PB관을 혼합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전체를 스테인리스관으로 교체하는 방식도 참여할 수 있도록 입찰조건을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하면 혼합방식 공사경험이 없는 다수의 업체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고 공사대금도 커진다.

A아파트 김 모 관리사무소장은 “업체 부사장, 이사 등 명함을 가진 관계자들이 몰려와 막무가내로 요구해 설명회가 초반에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들 중 지역신문 기자라면서 기자 명찰을 목에 건 한 사람은 모 전문신문을 펼쳐보이며 ‘입찰 부정을 하면 처벌된다’는 등으로 으름장을 놓았다”고 전했다.

김 소장이 이들에게 ‘지역 아파트 세 곳이 같은 방식으로 공사를 마쳤거나 진행 중인데 왜 우리 단지에서만 억지를 부리느냐’고 묻자 이들은 “작은 단지는 공사비 규모가 작아 우리는 관심도 없고 따질 필요도 없다”고 응답했다는 것. 

A아파트는 1200세대에 육박하는 대단지여서 배관교체 공사비가 1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인근 아파트 3곳은 300세대 규모로 공사비가 수억 원대여서 이들 업체의 관심 밖이었다는 것이다.

당초 김 소장은 아파트 급수관에서 녹물이 나오고 수압이 약해 배관교체가 시급하다고 판단해 입주자대표회의와 협의를 거쳐 장기수선충당금을 증액하고 관련 공사에 관한 정보 수집에 나섰다. 그는 “인근 아파트의 공사 사례를 접하고 실제 공사를 한 아파트의 사후 상태를 점검하는 등 2년간 자료를 모아 아파트 입대의에 보고했으며 입대의 의결을 거쳐 혼합방식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절차를 거쳐 A아파트는 지난 3월 ‘공동구 스테인리스관과 입상PB관을 혼합해 시공 가능한 업체로 최근 5년간 시공실적이 3개 단지 이상인 업체’를 찾는 입찰 공고를 K-apt에 냈다. 그러나 5개사 입찰에 유효건수가 기준 3건에 못 미치는 2건이어서 유찰됐다. 4월의 2차 입찰과 5월의 3차 입찰도 유효건수가 모자라 결국 유찰됐다.

혼합방식 공사경력을 가진 모 업체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문제의 업체 사람들은 전국의 대규모 아파트 등 배관공사입찰 현장에서 자주 마주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파트 측에 PB관을 사용하는 혼합방식으로 발주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면서 경쟁 업체에는 ‘1억 원 줄 테니 먹고 떨어져’라고 회유와 협박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김 소장에 따르면 4월 동대표와 통장들에게 정체 모를 전화가 걸려왔다. ‘소장이 특정 업체와 결탁해 공사를 몰아주려고 고의로 까다로운 입찰조건을 내걸었다’는 식으로 소장을 비방하는 내용이었다. 아파트 측의 확인 결과 전화 발신 번호는 2차 설명회 참석 업체 관계자의 번호였다. CCTV에는 업체 관계자 중 한 사람이 입찰 설명회에서 관리사무소 탁자 위에 있던 입대의 연락정보를 촬영하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A아파트의 3차례 입찰 과정에서 업체 관계자들은 ‘담합 의혹’을 제기하는 집단민원 공세를 폈다. 이들은 A아파트가 4월 제한경쟁입찰 방식으로 2차 입찰공고를 낸 것에 대해 ‘특정업체만 입찰에 참가하도록 담합한 의혹이 있다’고 지자체에 민원을 냈다.

시 관계자는 2차 입찰 후 “관련업체들로부터 PB관 공사실적이 있는 업체만 입찰하도록 한 의혹이 있다는 민원이 다수 제기됐다”고 A아파트 측에 연락했다. A아파트는 “아파트 전체의 PB관 시공으로 오해될 수 있으므로 1~5층은 스테인리스, 6~15층은 PB관으로 구체적으로 표기하겠다”고 답신했고 시로부터 ‘과도한 제한에 해당되지 않음’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시는 3차 입찰 직후 “과도한 실적 제한으로 고의유찰 후 수의계약을 맺으려는 것 같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며 자격자가 10인 이상이 돼야 하고, 유찰이 계속된다면 입찰자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공문을 다시 보냈다. 이에 A아파트는 ‘2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의 급수배관 시공실적 3개 단지 이상 업체’로 완화하겠다고 시에 답신을 보내야 했다. 결국 PB배관 공사실적 조건을 뺀 것이다. 

김 소장은 “아파트 입주민의 큰돈을 들여야 하는 공사를 앞두고 안전성과 내구성, 경제성, 실제 사례 등을 종합해볼 때 혼합방식이 최선이라고 입대의와 함께 결론을 내렸는데 PB관 공사경험이 없는 일부 업체가 끼어들어 공사방식까지 변경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K-apt에 따르면 전국 급수, 난방, 소화전, 정화조 등 배관교체 공사는 2014년 147건에서 2015년 76건으로 급격히 감소했고 2019~2021년에는 연간 17건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6월에만 33건으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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