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아파트 배관공사를 둘러싼 입찰방해와 담합 움직임이 다시 나타났다. 문제는 강원지역의 28년차 A아파트가 급수배관 교체를 위한 입찰에 나섰을 때 일어났다. 이 아파트는 스테인리스관과 PB관을 혼합해 시공하면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0여 년 전에 공사한 곳이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A아파트 B관리사무소장은 입대의 보고 후 의결을 거쳐 ‘스테인리스관과 PB관(상층부)을 혼합해 시공’한다는 제한경쟁 입찰공고문을 K-apt에 올렸다. 그런데 재공고를 포함해 3차례의 현장설명회까지 거쳤지만 모두 유찰되고 말았다. 가장 큰 원인은 이런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드물다는 것. 제한경쟁입찰은 유효입찰이 3개 이상 들어와야 성립하는데, 계속 2건에 불과해 입찰이 마무리되지 못했다.

일부 업자들 지자체에 민원 공세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엔 일반경쟁입찰 또는 제한경쟁입찰이 2회 이상 유찰될 경우엔 수의계약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A아파트는 이마저도 못했다. 일부 스테인리스 전문 배관업자들이 지방자치단체에 “고의로 까다로운 제한을 걸고 유찰을 유도해, 특정업체와 수의계약하려 한다”는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시청은 이전까지 ‘과도한 제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으나 민원공세가 이어지자 입찰자격 완화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스테인리스 전문 배관업자 등 8~ 10명이 3차 현장설명회에 몰려와 입찰조건에서 PB관을 빼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함께 온 자칭 지역신문 기자는 ‘입찰부정을 저지르면 처벌된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B소장이 “인근지역 아파트들도 혼합배관방식으로 공사했는데, 왜 우리에게만 억지를 부리느냐”고 묻자 이들은 “작은 단지는 공사비가 적어 남는 게 없으니 따질 필요를 못 느낀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방해로 A아파트는 결국 싸고 좋은 조건을 앞에 두고도 계약하지 못했다. 

아파트에서 청결한 물은 필수적이다. 공동주택 저수조는 웬만한 수영장보다 넓고 깊다. 저수조는 수도사업소에서 보내주는 수돗물을 받아 보관하고 각 세대로 보내주는 시설로 조금이라도 오염되거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입주민에게 치명적 위해를 입힐 수 있다. 

아파트 배수관 교체는 필수공사

저수조 상태가 아무리 좋아도 물이 지나는 통로인 배수관이 오염돼 있다면 수질이 확연하게 떨어진다. 노후 상수도관 문제가 가끔 사회문제화 되는데, 이는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오래된 아파트들이 상수도 급수배관 교체공사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지어진 아파트들은 백강관(스틸파이프에 아연을 도금한 관)을 급수관으로 설치해 부식이 빠른 편이어서, 교체가 시급한 경우가 많다. 대단지의 경우 공사비가 수십억 원에 이른다.

배관 교체공사에 눈독을 들이는 업자들이 수년 전부터 우후죽순 생겨났다. 일부 업자들은 카르텔을 만들어 다른 업체의 입찰참여를 막고, 단가 후려치기로 막대한 이득을 취한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입주민 대표와 소장까지 공격한다는 말도 들린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들은 공사비가 막대한 큰 단지만 다니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약을 따낸다”면서 “다른 업체가 낙찰받으면 ‘1억 줄 테니 계약을 포기하라’는 회유와 협박까지 일삼는다”고 전했다. 이런 행태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지자체는 민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수사기관이 나설 필요도 있다. 아파트 수질 향상과 입주민 건강을 위해 먼저 업계의 이런 치부부터 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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