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양창익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기도회 전 부천지부장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서서히 아침이 밝아오는데 저 앞에서 경광봉 불빛 하나가 흔들린다. 주자인 게 분명한데 이 주자는 자꾸 길가의 꽃나무 앞에 서서 절을 하고 간다. 그도 데자뷔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침 5시쯤 되자 사물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고성은 마치 1970~1980년대 전주 외곽과 같이 개발이 전혀 안 된 자연 그대로의 시골의 모습으로 아주 고요하고 적막했다. 북한인가 하는 착각도 든다. 

배고프고 지쳐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길가에 주저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자고 말았나 보다. 차 엔진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소리친다. “창익씨! 빨리 안 가면 605㎞에서 아웃됩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니 3㎞ 남았단다. 전 연맹회장이다. 나는 몸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지만 여기서 실격되면 지난 일주일간의 사투가 헛일이 된다 생각하고 단숨에 달려 605㎞ 지점인 12CP 호국영웅쉼터에 도착한다(13일 오전 5시 55분). 제한시간 15분 전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12CP에서 2명의 주자가 안타깝게도 시간제한으로 실격됐다. 
12CP에 도착하니 조직위원들이 놀란다. 나보다 훨씬 고수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22명이나 접었는데 평소 스피드가 없어 굼벵이라 놀림 당하곤 하던 내가 들어오니 놀랄 만도 했을 것이다. 난 동화책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것을 보지 않았냐며 으스댔다. 
조직위가 제공하는 식사를 한 후 캐리어에서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인주마가 새겨진 싱글렛 두 개를 꺼내 배낭에 넣었다. 골인 지점에서 사진 찍을 때 입기 위해 챙겨온 것이지만 정작 골인 지점에선 생각이 안 나 입지도 못했다.
드디어 대장정의 마지막인 통일전망대 출입사무소 주차장인 골인 지점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이제 남은 거리는 17㎞로 하프도 안 된다. 시간은 5시간 반이다. 걸어도 가능한 시간이지만 450㎞에서 받은 페널티도 있고 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라 앞 주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앞서 나간다. 
17㎞를 4시간 정도에 간다 생각하고 7번 동해대로를 따라 616㎞ 지점 화진포 교차로를 지날 무렵, 출발점에서 본 이후 처음으로 강남지맹의 친한 형을 발견했다. 이 형은 종단대회를 8번 실패하고 도전 시작 9년 만인 9번째 도전에서 처음으로 완주했던 의지의 한국인이기도 하다. 이미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지만 이번 대회에 또 참가했다. 
서로는 검게 그을린 채 잡초 같은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을 마주보며 그동안의 고생을 위로하고 마지막을 함께하기로 한다. 어느덧 햇살은 따가운데 길가엔 그늘도 없다. 빨리 끝내고 싶다. 그렇게 뛰다 걷다 반복하니 금강산콘도를 지나고 드디어 골인 지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지친 다리에 힘이 솟는다. 카운트다운을 하듯 한 발 한 발 거리를 좁혀나가는데 갑자기 지난 일주일간의 사투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뜨겁고 진한 뭔가가 저 아래서부터 모세혈관을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감격적이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불꽃 같은 감동이다. 그동안 횡단은 두 번 성공했지만 종단은 세 번이나 실패했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터질 듯한 이 감동을 주체할 수 없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리고 드디어 ‘골인’이다(148시간 25분 622㎞). 그 기나긴 국토 종단의 대장정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울트라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2008년 이후 만 10년 만에 처음으로 종단 완주의 기쁨을 만끽한다. 
눈물에 가려 앞이 흐릿한데 여기저기서 “수고했다!” “장하다!”는 외침이 들린다. 조직위원들과 응원 나온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며 박수를 쳐준다. 나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추억하기 위해 멋진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울트라마라톤 입문 십여 년 만에 그토록 고대하던 완주증을 받은 것을 끝으로 ‘2019 종단극장’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약간은 자랑스러운 개선장군처럼 집에 오니 세 아이들이 따뜻한 환호성으로 맞아준다. 둘째인 딸은 눈물을 글썽인다. 아이들은 일주일간 인터넷 중계를 통해 내가 뛰는 모습을 지켜봤다. 초반은 가볍게 응원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아슬아슬하고 힘겹게 매 고비를 넘는 아빠를 보며 월드컵 국가대표 응원하듯 열심히 응원했단다. 그렇게 그들도 나와 함께했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몇 번의 위험한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너희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고 마침내 완주할 수 있었다. 너희들도 공부를 하거나 더 나이 먹어 사회생활을 할 때 당연히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오늘의 아빠를 생각하면서 슬기롭게 이겨내 주길 바란다. 그것이 아빠가 종단에 임한 이유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나 혼자 열심히 훈련하고 노력해 완주한 것이 아니라 대회 시작부터 끝까지 순간순간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응원, 가슴 아픈 사연 등이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덕분에 종단 완주라는 멋진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종단을 완주하고 나니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기본이고 바람에 누운 풀처럼 겸손해진다. 여기에 더해 환경 탓하는 것도 없어졌다. 마라톤을 하며 노숙자나 다름없이 길가에서 자거나 배가 고파 김밥 한 조각이 간절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어찌 잠자리나 반찬 투정 등을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말을 몸소 확인하고 되새기는 기회도 됐다.
마지막으로 이런 저런 갑질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소장들이 힘들 때마다 ‘저런 사람도 있는데’라고 한 번씩 생각하면서 힘내고 그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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