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세계 최대 도시는 일본 ‘에도’였다. 아시아 최대가 아닌 세계 최대 도시가 200여 년 전 일본에 존재했다니, 별 관심이 없긴 하나 놀라운 일이다.
‘에도’는 현 도쿄의 전신이다. 19세기 문명을 꽃피운 영국 런던의 인구가 87만명, 프랑스 파리는 58만명이었다. 최첨단 도시의 인구가 그 정도였는데, 아시아의 변방, 일본 ‘에도’는 100만명의 대도시를 일구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이끌던 무렵이었다.
인구 100만의 거대도시를 형성하려면 어마어마한 인프라스트럭처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식량이 원활하게 조달돼야 한다.
당시 일본 에도엔 공짜로 집을 임대해 주는 기업형 부동산업이 성행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집을 그냥 빌려주다니….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밖에서 일하고, 나다니더라도 대소변은 반드시 집에 와서 봐야 한다는 것.
인분은 농사에 없어선 안 될 최고의 비료였다. 100만 대도시에 걸맞은 쌀 공급은 오로지 농업생산성에 달려있었기에, 각 가정의 인분을 모아 퇴비로 만들어 판매하는 도매상이 출현할 정도로 당시 일본의 농업은 선진적이었다. 똥이 곧 밥이 되는 시대였다.
‘똥’에도 등급이 있었다. 봉건영주 ‘다이묘’ 계급은 영양상태가 우수했기에 그들의 인분은 ‘킨판’이라 불리며 고가에 거래됐다. 인분을 도소매로 거래할 정도로 당시 일본은 농업뿐만 아니라 화폐와 상업경제까지 발달해 있었던 것이다.
인분을 귀하게 여기는 건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엔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도 똥이 마려우면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싸는 것’도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시절이었다.
1995년 1월 1일.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변혁이 시작됐다.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리는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쓰레기통만 있으면 아무 것이나 집어넣고, 길거리 쓰레기통이든, 남의 집 쓰레기통이든 가리지 않고 버릴 수 있었던 시대에서, 무엇이든 버리려면 그만큼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기상천외한 시대가 열렸다.
이전엔 아무 쓰레기나 집 밖에 내놓기만 하면 커다란 트럭을 탄 ‘청소부 아저씨’들이 모조리 실어갔다. 물론 처리비용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었지만, 물질풍요의 시대 사람들은 멀쩡한 물건도 내다버렸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며칠치만 모아놔도 산을 이룰 정도였다.
음식물쓰레기도 마찬가지. 농업기술이 혁명적으로 발달하면서 온갖 음식이 흔해졌다. 귀하디귀했던 산해진미도 집에서 간단히 조리해 먹거나, 전화기만 들면 배달시켜 먹을 수 있게 됐다. 마침내 ‘먹는 음식’보다 ‘버리는 음식’이 더 많아진 시대가 도래했다.
인류는 대단하다. 연약한 피부에 체력은 허약하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강력한 이빨도 갖지 못한 존재가 오로지 두뇌 하나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인류는 모든 ‘결핍’을 모든 ‘풍요’로 탈바꿈시키는 신묘한 힘을 갖고 있다. 다만 다른 종의 생존권을 무시하는 이기주의가 문제다.
음식물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아파트 배관이 막히고 있다. 몇백원의 종량제 처리비용을 아끼려다 몇천만원짜리 배관공사를 다시 해야 할 판이다. <관련기사 1면>
인류는 대단하다. 결핍을 풍요로 바꾸기도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도 안다. 이기적이긴 하지만, 현명한 존재다. 어린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출현이 이를 증명한다. 나쁜 이기주의가 지구를 망치고, 나도 죽인다는 걸 깨달은 인류는 이제 좋은 이기주의자로 변신 중이다. 당장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지구를 되살려야 한다. 내 자식과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인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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