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바다로 흐르다 그대로 머물렀다. 걷고 싶은 섬! 남고 싶은 섬! 그곳은 시간의 섬으로 또 다른 여행의 느낌을 만든다.
 

걸어야 보이는 섬

인천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삼형제 섬 신도선착장을 거쳐 20여 분 지나면 장봉선착장에 도달한다. 
장봉도는 섬이 길고 낮은 봉우리가 많아 부르게 된 지명이라고 한다. 최고 높은 국사봉이 150m니 낮은 구릉성 산지로 완만한 산줄기가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10㎞로 이어져 뻗어 있다. 해안선 길이는 총 22.5㎞로 폭이 좁고 길게 이어진 섬이다. 동쪽 선착장에서 서쪽 장봉3리 까지는 산으로 걷다가 바닷가로 내려올 수 있고 바닷길은 마을이나 산길로 다시 이어진다. 차도는 그 길들에서 가까우니 걷다가 머무는 곳에서 쉽게 대중교통을 탈 수 있다. 까닭에 장봉도는 트레킹족의 천국이란 말도 있다. 
장봉도에는 갯벌 사이의 섬 둘레길을 뜻하는 순우리말 ‘갯티’에서 비롯된 ‘갯티길’이 있다. ‘갯티길’은 하늘길, 산길, 바닷길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썰물과 밀물 시에도 길은 바다로 산으로 자연스럽게 섬 전체가 하나의 길로 연결된다. 
차도로 선착장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옹암 해변이 나타난다. 다른 해수욕장의 풍경과는 다르게 북적이지 않고 차도 옆에서 바로 연결돼 있다. 100년이 넘은  소나무 숲의 시원한 그늘은 해수욕장과 야영장의 장점을 다 갖추고 있다. 인어의 전설로 유명한 옹암해변은 만조 때는 해수욕을 즐기고, 간조 때는 갯벌체험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있다.  

거머지산에서 국사봉 능선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있는 말문고개를 넘어 밭을 따라 좁은 산길을 내려가면 한적한 작은 한들해변이 나타난다. 어촌의 한적한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경사가 완만하며 희고 고운 백사장으로 노송이 백사장을 감싸 안고 있어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초등학교와 보건소, 마트와 펜션들이 옛 마을과 어울리니 장봉2리는 장봉도의 중심지로 한들해변 끝머리에서 다락구지전망대를 지나 바다와 산길을 끼고 잠깐이면 걸어갈 수 있다. 동네 골목길을 지나 바다를 산책하듯 부둣길을 걷다 보면 야달선착장이 섬을 배경으로 한적한 풍경이 바다와 조화롭다. 
선착장 앞 날가지도, 아염도, 사염도 주변으로으로는 썰물 때면 나타나는 갯벌과 모래사막이 또 다른 섬을 만들어낸다. 그곳에는 바지락을 방류해 사라져가는 갯벌습지를 보호하고 있다. 어달선착장에서 동그랑산을 넘거나 바닷길을 따라가면 건어장이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해변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고기 말리기가 적합했던 곳이다. 지금은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아래 갯벌 해변과 예쁜 펜션들이 있어 장봉도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멀리 앞쪽으로 무인도인 동만도와 서만도가 외롭지 않게 서있어 서해 바다의 섬 풍광으로 이만한 곳이 드물 듯하다. 

▲ 옹암해변의 노송

인천시 옹진군 장봉리에서 서쪽 해안으로 약 20.5㎞ 떨어진 무인도인 작은 섬 신도에는 노랑부리백로 및 괭이갈매기 번식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나 지금은 개체수가 사라지고 있다. 그 후 서만도에 마지막 한 가구가 섬을 나온 후 여름 철새인 멸종위기종 1급인 천연기념물 205-1호 저어새와 천연기념물 361호 노랑부리백로, 멸종위기종 2급인 천연기념물 326호 검은머리물떼새 등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서식처로 변했다. 섬의 남북 경사진 면에서 정상까지 약 200m 범위에서 집중적으로 번식한다. 인간의 간섭이 생태의 큰 축으로 자리하고 있는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은 환경부가 관리하는 특정도서로 지정됐다. 
장봉4리 버스 종점에서 좌측 길을 따라가면 물이 맑다는 윤옥골해변이 있다. 가막머리전망대 까지 2.4㎞인 가막머리해안길은 바다를 바라보는 숲길로 옹진 숲길10선으로 꼽힌다. 옹진 숲길10선은 백령도 달맞이 숲길, 대청도 삼서길, 굴업도 낭개머리능선길, 대이작도 부아산 숲길 등 옹진군 섬의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명품길들이다. 가막머리는 장봉도 북서쪽과 강화도 서쪽 사이로 낙조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곳으로 전망대가 설치돼 있어 낙조를 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옛날에 큰 봉우리라는 뜻의 장봉도 서쪽 끝 ‘감악산’의 머리로 가막머리가 됐다. 또는 예전에 감옥(監獄)이 있던 곳이라서 ‘감옥머리’라 불리던 것이 가막머리가 됐다는 설도 있다. 
전망대에서 해안길로 되돌아오거나 위쪽으로 잘 정돈된 산길을 따라 임도와 만나는 소루개진뒤 언덕에서 우측 시멘트 도로를 따라 원점 회귀 할 수 있고, 내친김에 산길을 따라 장봉선착장까지 종주할 수 있다. 마지막 마을 장봉3리의 진촌해변은 고운모래와 노송숲이 어우러져 경치가 일품이며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서해의 낙조가 장관을 이룬다. 잠시 지나는 길이라면 진촌 해변의 사유지를 통과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빈선착장옆의 데크길로 걸어 갈 수 있다. 장봉선착장→인어상→구름다리→혜림재활원→말문고개→국사봉정상→진촌해수욕장→봉화대팔각정→가막머리전망대 구간이 10㎞에 4시간 정도 소요되나 힘들지 않고 꾸준히 걸을 수 있어 산행객들이 찾는 걷기 코스로 이름이 나있다.

▲ 동만도・서만도의 일몰

 

또 다른 시간들의 섬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은 안다. 아침 햇살의 풍경과 한낮의 풍경 또는 저녁 일몰의 빛이 주는 감도가 다르다는 것을. 장봉도는 낮과 저녁과 밤의 풍경이 다르다. 또한 밀물과 썰물의 풍경은 같은 섬이더라도 시간에 따라서 아주 다른 느낌을 준다. 시원하게 툭 트인 서해바다가 있다면, 가막머리전망대에서는 먼 바다로 떨어지는 노을이 바다를 하얗게 만들다가 점점 검붉게 변해가는 풍경, 진촌 해변의 모래톱으로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바다로 물들어가는 감투섬, 썰물 때면 가막머리까지 물이 빠져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는 색깔을 입힌 한 폭의 수채화다. 파도가 세찬 건어장 방파제에서 동만도·서만도 구름 사이로 하늘을 물들이며 떨어지는 일몰이 있다면, 썰물 때 나타나는 모래사막인 풀등은 그 섬들 주변을 맴돌듯 아스라하다. 풀등은 야달선착장 앞 날가지도, 아염도, 사염도 주변으로으로도 썰물 때면 나타난다. 
신도에서 출발한 배가 장봉도 선착장에 들어설 때 우측으로 100m 정도의 잔도길이 보인다. 독바위해변 앞에는 작은 섬이 있다. 조류 때가 되면 신도와 장봉도 사이로 빠른 물살이 흐른다. 가깝지만 먼 곳이라 해 멀곳이라 불린다. 주변의 옹암구름다리는 작은몰골인 섬으로 이어져 있다. 자칫 밋밋한 다리는 밤에 걸어보면 다르다. 특히 오후 9시 30분 마지막 배를 기다리다 잠시 짬을 내 어두운 그곳을 걸으면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달이 뜨는 밤이면 잔도 아래로 빠르게 흐르는 바닷물의 유속을 느끼고 시원한 해풍이 부는 은은한 조명 속을 걸어 무인도 작은 섬으로 걸어가는 기분은 호젓하다 못해 마음이 정갈해진다. 작은 정자와 나무 데크가 바닷가로 이어지고 밤바다의 정적은 오래 머물러도 좋을 나만의 비밀정원으로 남는다. 시간은 하루의 풍경조차 변하게 하며 그 섬에서는 또 다른 여행을 맞이한다.

이성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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