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체크리스트>

①나이를 먼저 확인하고 어리면 반말을 한다. ②아랫사람에게 명령어의 대화를 많이 한다. ③내가 한 고생에 비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편한 시대에 살고 있다. ④아랫사람이 나보다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면 심기가 불편하다. ⑤후배의 연애, 결혼 문제에 대해 자주 조언한다. ⑥연륜이 곧 지혜, 오래 살아야 현명해진다. ⑦힘들고 고되게 일하면 그만큼 실력도 는다. ⑧야근에 관대하다. ⑨윗사람에게 인사를 안 하거나 예의 없는 신입을 보면 혀부터 찬다. ⑩식사 시 아랫사람이 수저와 컵 등을 세팅하는 것이 좋다. ⑪고기를 굽는 건 아랫사람이 해야 한다. ⑫나 스스로 꽤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 믿는다. ⑬회사 상황에 따라 주말이나 휴일에 일하는 건 당연하다. ⑭아랫사람이 적절하지 않은 차림으로 출근하면 지적해 줘야 한다. ⑮은어와 축약어 사용은 언어 파괴다. ⑯어린 친구들과 대화를 오래 하기 힘들다. ⑰회식에는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⑱내 의견에 반대하는 후배가 별로 없다. ⑲내 전성기 때의 멋진 모습을 누군가는 알아 줬으면 좋겠다. ⑳요즘 젊은이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는 ‘자가 꼰대진단법’의 문항들이다. 내용이 많고 꽤 구체적이다. 영국 BBC에 등장할 정도로 국제적 관심을 끈 우리말 ‘꼰대(kkondae)’는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신문이나 소설 등에 보이기 시작했지만, 혹자는 일제시대부터 쓰인 말이라고도 한다. 하층민이나 불량배 또는 일부 학생들 사이에 통용되던 이 말은 어느덧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오르게 됐다. 그만큼 널리 쓰인다는 뜻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용도폐기되며 사라져가던 이 불량한 단어가 다시 각광받고, 다른 나라의 권위 있는 언론에서까지 소개하게 됐을까?
가장 유력한 이유로 ‘세대갈등’이 꼽힌다. 이제 막 은퇴했거나, 은퇴를 코앞에 둔 ‘베이비붐 세대(baby boom generation)’와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의 경우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로, 자신의 부모세대처럼 전쟁이나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진 않았지만, 힘든 곡절을 많이 겪은 세대로 분류되는 한편, 눈부신 경제성장기를 이끌었다는 강점도 지니고 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대부분 베이비부머의 자녀들로, 어린 시절엔 부모 덕에 호사를 누리며 자랐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희망을 잃은 세대로 요약된다. 외국어 구사능력이나 지식수준면에서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을 보유한 세대로 평가받지만, 국가적으로 긴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 사회진출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사회구조적 문제점을 도외시한 채, 집념이 없고 쉽게 포기하는(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훈계조의 일장연설만 늘어놓다 보니, 꼰대라 불리게 된 것이다.
꼰대는 최근 ‘나때마니아’라고도 불린다.(라떼마니아가 아니다) 늘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투를 비꼬아 붙인 이름이다. 신세대다운 기막힌 작명법이다.
그러나 두 세대 사이에 갈등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요즘 SNS엔 ‘온라인 탑골공원’이 유행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좋아했던 과거의 음악 프로그램이 재조명받는 현상을 지칭한 말이다. 또한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 ‘뉴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 부모세대의 패션과 유행을 재해석해 도입하는 복고풍 ‘레트로’의 최신버전이다. 부모가 입었던 옷을 입고, 부모가 먹었던 음식을 먹으며, 그 시절의 음악을 찾아 듣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대 간 갈등이 화해와 협력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참, 위 설문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문항이 3개 미만이면 꼰대기질이 전혀 없는 사람, 4~6개면 아직은 꼰대 문턱에 가지 않은 사람, 7~9개면 꼰대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 10~15개면 안정권에 진입한 꼰대, 16개 이상이면 타고난 모태꼰대라고 한다.
해당사항이 많다고 실망하지 마시라. 이글을 끝까지 읽고 관심을 가질 정도면 당신에겐 얼마든지 진정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가 남아 있다. 입을 다물고 귀만 열어도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나이만이 척도인 것도 아니다. 의외로 ‘젊은 꼰대’도 있다. 결국 관건은 생각과 의식이다.
꼰대를 벗어나는 첫 걸음. 우선 ‘나때마니아’부터 떼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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