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정선모 
서울 노원 불암대림아파트
도서출판SUN 대표

우리 아파트는 일요일마다 재활용 분리수거를 한다. 평소엔 온 가족이 함께 분리수거를 하는데 지난 일요일에는 혼자 끙끙거리며 박스를 옮기고 있으려니 경비원 아저씨가 함께 사는 딸과 손주가 요즘 안 보인다고 안부를 묻는다. 새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입주민들을 다 파악하지 못했을 텐데 그렇게 물어와 깜짝 놀랐다. 잠시 해외에 나가 곧 돌아온다고 하니 안 보여서 조금 걱정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는 경비실에 간식을 놓고 오는 일이 더 잦아졌다.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물어주는 말 한마디가 참 따듯하게 느껴졌다.
말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언젠가 TV에서 실험을 통해 보여준 적이 있다. 컵에 물을 채워 양파를 담근 후 칭찬과 욕을 각각 써 붙여놓고 열흘 정도 지난 후 양파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12살 손주는 진짜 저런 결과가 나오는지 우리도 당장 실험해 보자고 같은 크기의 양파 두 개를 꺼내왔다. 컵 하나에는 ‘사랑해, 예쁘다’를, 다른 컵에는 ‘못생겼다, 싫어한다’를 써서 붙여놨다. 양파에 하는 말을 서로 듣지 못하도록 하나는 싱크대 위 창문턱에, 다른 하나는 발코니에 갖다 놨다. 두 곳 모두 햇빛도 바람도 엇비슷한 조건이었다. 그리고는 볼 때마다 “넌 정말 예쁘구나, 사랑해”를, 다른 양파에는 “어쩜 이렇게 못생겼니? 네가 정말 싫어”를 반복해 말해주고 말하는 횟수도, 물을 갈아주는 횟수도 똑같이 해줬다.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 차츰 변화가 나타나더니 2주일 후 양파가 변화한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칭찬을 들은 양파는 뿌리도 곧게 사방으로 쭉쭉 뻗으며 누가 봐도 싱싱하게 잘 자랐고, 잎도 짙은 녹색으로 튼실하게 위로 쭉 뻗었다. 반면에 날마다 부정적인 말을 들은 양파는 뿌리가 힘이 없이 구불거리며 자라다 만 모습이 역력했고, 잎도 옅은 녹색으로 힘이 없으며 칭찬을 들은 양파의 절반도 안 되게 자랐다. 뿌리의 색도 칭찬을 들은 양파는 튼실해 보이는 흰 색으로, 부정적인 말을 들은 양파는 병에 걸린 듯 흐릿한 갈색으로 선명히 구별됐다. 실험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손주가 한마디 했다.
“말의 힘이 이 정도인줄 정말 몰랐어요. 친구들에게도 이왕이면 칭찬을 많이 해야겠어요.”
그리고는 그동안 친구들과 장난치며 무심코 놀렸던 일들이 후회된다고 했다. 이번 실험을 통해 ‘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된 귀중한 순간이었다. 
별 생각 없이 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도 뉴스를 통해 예전에 한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본다. 말을 할 때 좀 더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은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할 것이다. 긍정적이고 온기를 전해주는 말 한마디가 세상을 훨씬 따듯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손주가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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