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뜨겁다. 양국 간에 얽히고설킨 문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런 가운데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자국 내부 사정으로 더욱 복잡하고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먼저 주먹을 날린 건 일본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갖고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국가 간 협상과 개인의 청구권 문제가 별개라는 건 일본 법원에서도 판결한 바 있다. 아베정권의 주장은 삼권분립이 엄연한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사법부의 판단에 개입해 판사를 조종하란 얘기와 같다.
과거 식민지배와 수탈의 제국주의 역사를 반성조차 하지 않는 아베정부의 안하무인을 보며 한국 국민이 격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아베와 각료들은 한국인의 정당한 분노조차 비웃고 조롱하며 ‘냄비는 금방 식는다’고 단언했다. 혐한시위와 혐한방송과 혐한보도는 더 기승을 부렸다.
온갖 잔악한 수탈이 합법이라 우기며, 위안부를 납치하고, 노동자를 끌고 가 노예처럼 부려먹고도 돈 몇 푼에 모든 배상이 끝났다고 강변하는 일본을 보면서, 저들의 심장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고, 가슴엔 과연 휴머니즘이란 게 있기는 할까, 회의하고 좌절하며 절망한다.
오랜 세월 일본의 주류사회는 한국과 한국인을 이유 없이 멸시해 왔다. 한 극우인사가 방송에서 “일본인은 백인, 한국인은 흑인”이라며 “한국사람들에게 흥이 넘치는 건 흑인기질 때문”이라고 발언하자 함께 나온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버젓이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에 퍼졌다. 서구사회에선 인종주의를 반사회적, 비인륜적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희지도 검지도 않은 아시아인이 백인우월주의에 도취돼 있는 모습은 우습다 못해 서글프다.
일본에 두 번째로 큰 무역흑자를 안겨주는 나라가 한국임에도 그들은 한국을 그저 재주 잘 넘는 곰 정도로만 여겨왔다. 가마우지 경제란 말을 처음 쓴 것도 저들이다.
그런데 한일 간 기류가 묘한 반전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관광객의 발길이 현저히 줄고, 일본 맥주와 의류 등 저가품부터 자동차 등 값비싼 제품까지 외면당하자 일본 정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수시장이 탄탄한 일본에게 한국에서의 판매 부진이 큰 타격은 아니지만, 한국 관광객 의존도가 컸던 지방소도시들은 위기의식을 느끼며 정부에 강력하게 사태해결을 호소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애써 무시해왔던 일본 언론도 이런 기류를 심각하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일본수출규제에 직접 대상이 됐던 기업들이 신속하게 대안을 마련하고, 여기에 한국 정부가 ‘한·일군사정보 보호협정(GSOMIA)’ 종료결정까지 내리자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의 한 IT전문가는 아베정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일본 내 반도체 관련 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재주 잘 넘는 곰도 놓치고, 생선 잘 잡는 가마우지까지 날려버릴 판이다.
이 놀라운 반전드라마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단결’에 있었다. ‘일본에 가지 않고, 일본제품을 사지도 않겠다’는 이 단순한 발상이 온 국민의 전폭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며 생각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태풍으로 발전했다.
‘단결’은 쉬워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예전 같으면 “일본 잘못 건드리면 한국이 결단난다”는 친일파 또는 공(恐)일파의 엄포에 눌려 맞설 엄두도 내지 못했을 우리 국민이 지금처럼 하나로 뭉친 건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외세에 맞서려면 정부의 의지만으론 어림도 없다. 국민이 굳건하게 받쳐줘야만 비로소 힘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나라를 곧추세우는 원초적 동력이다.
지금 주택관리사법 제정안이 국회에 올라 있다. 이 법에 대해 “입주민을 무시하고 주택관리사만 먹여 살리는 법”이란 흑색선전을 퍼트리며 판을 엎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주택관리사법이 외부세력에 막혀 주저앉을 것인지, 오해와 편견을 깨고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는 오로지 당사자인 주택관리사들에게 달려 있다.
단결은 어렵다. 하지만 그 힘은 늘 겁쟁이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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