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赤水)와의 전쟁 60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획] 아파트 발밑의 시한폭탄 ④ 주말아침을 강타한 붉은 수돗물 사태, 치열했던 관리현장의 기록 이경석l승인2019.08.14 13:05:16l11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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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소장님 난리 났어요”


평화롭고 여유로운 주말. 나른한 아침시간을 보내고 있던 주택관리사 A씨에게 사무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A씨는 인천 서구 검단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소장님, 지금 수도에서 붉고 끈적거리는 물이 나온다고 전화통에 불이 났습니다!”
A소장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예전에 물탱크에 연결된 탄소필터 교체과정에서 검은색의 미세한 탄소알갱이가 수돗물에 섞여 나온 경우는 있었지만, 소장 재직 10년이 넘도록 붉은 수돗물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에 수도공사 중인 곳도 없었다. A소장이 도착하니 관리사무소에선 이미 10여 명의 입주민이 항의 중이었고, 당직기사와 경비원은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합니다”를 되뇌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A소장을 보자 목소리가 한 톤 더 높아졌다.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기에 물이 이 모양이에요!” “입주민들에게 이런 물을 마시라는 거예요?”
A소장은 “우선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니 조금 진정하고 집에서 기다려 달라”고 설득해 돌려보낸 후 기사와 함께 지하저수조로 내려갔다.
물탱크를 확인한 두 사람은 아연실색했다. 저수조엔 뿌옇게 오염된 물 수백톤이 넘실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과 저수조 물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옆 단지 소장의 번호가 떴다.
“소장님네 물 괜찮아요? 우린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대체 이게 뭔 일이지…”

 


저수조에 넘실대는 수백톤의 붉은물
입주민들은 관리사무소에 항의만

 

▲ 붉은 수돗물 사태 열흘이 지났어도 수도꼭지에
새로 설치한 정수필터엔 오염 물질이 가득 끼었다.

인천 서구 아파트들의 물난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기분 좋은 주말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씻기 위해 수도꼭지를 연 입주민들은 괴상하게 쏟아지는 물에 기겁했고, 계속 틀어놔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에 따지기 시작했다. 긴급연락을 받은 소장들이 각자의 현장에 속속 도착했지만, 거친 항의 속에서 직원들과 함께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연유를 알 수 없는 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수도사업소와 관할관청에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오히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되묻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됐다.
이날부터 동네 편의점과 마트에서 생수가 불티나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는 집은 물론이고, 정수기가 있어도 무용지물이 됐다. 금세 필터가 오염돼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월요일이 되면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수도사업소도, 구청도, 시청도 모두 까막눈이었을 뿐 명쾌한 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당국이 긴급 실시한 수질검사 결과는 식수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눈앞에서 붉고 뿌연 부유물이 떠다니는 물은 도저히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른들은 오염된 물로라도 대충 씻었지만, 아이들은 생수를 찔끔찔끔 따라서 씻겼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일 때도 당연히 생수를 이용했다. 결국 동네 생수가 바닥나 원정쇼핑에 나서야 했다. 대박이 터진 곳은 또 있었다. 정수기 구입 문의가 폭증했고, 필터가 바닥나 며칠씩 기다려야 했다.

▲ 한 입주민이 욕조에 물을 받았다가 사용하지 않고 흘려보낸 후 닦아낸 모습들. 처음 오염이 심했던 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상태를 보였으나 한 달이 지나서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당국 초기대응 엉망 책임회피 급급
샌드위치 신세 소장과 직원들


사태는 며칠이 지나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인천시에 이어 환경부도 나섰지만 혼란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검단맘카페’ 등 인터넷 지역모임에선 ‘수돗물이 아니라 똥물’이란 말까지 나오며 분위기가 험악해져갔다.
관공서 전화가 불통사태에 이르자 답답한 입주민들은 관리사무소를 물고 늘어졌다. 사태가 일어난 주말에 개인사정과 행사 등으로 출근하지 못한 소장들은 “이웃 단지 소장님은 곧바로 달려 나와 동분서주하며 애쓰던데, 우리 소장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며 공개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상가 음식점들은 문 앞에 ‘깨끗한 물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고 안내문을 붙였지만, 파리만 날릴 뿐이었다. 불안한 사람들은 외식도 차 타고 멀리 나가 해결했다.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검단지구에 수돗물 난리가 났지만 바로 옆 청라지구에선 깨끗한 수돗물이 나오고 있었다. 청라 모 주상복합 아파트에 근무 중인 B소장은 수도사업소 등에 문의한 결과 “검단과 청라는 송수관로가 다르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는 확답을 듣고, 불안해하는 입주민들을 위해 안심하고 수돗물을 사용해도 된다는 공고문을 붙였다.
그러나 공고문을 부착한 바로 다음날부터 붉은 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일부 입주민에게서 “대체 뭘 믿고 안심하라는 거냐”는 힐난이 나왔다.
B소장은 진상 파악을 위해 수돗물을 채취해 샘플을 들고 수도사업소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모든 시스템이 무너진 상태였다. 수도사업소와 구청과 시청은 서로 “저쪽에 알아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책임을 미루기 바빴다.
며칠이 더 지나서야 원인이 밝혀지기 시작했으나 붉은 수돗물은 그대로였다. 시에선 피해 상황을 접수하겠다면서 접수창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관리사무소를 지목해 공무원과 관리직원들 간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든 관공서의 초기대응은 책임회피와 민원무마에만 집중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중간에 낀 관리사무소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동네북 신세가 됐다.
☞다음 호에 계속
 

이경석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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