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에게 잘 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사전적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용서(容恕)의 한문 뜻을 풀어보면 얼굴 용(容)과 용서할 서(恕)인데, 서(恕)는 같을 여(如) 아래에 마음 심(心)이 들어 있습니다. 즉, 상대의 잘못을 모두 받아들여서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얼굴을 대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바다와 인접한 포구에서 살았습니다. 마을 앞에 흐르는 강에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강물의 수위가 높아졌다 낮아지길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방학 때가 되면 마을 앞 강물에서 미역을 감던 아이들의 익사사고가 이 종종 나곤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버지로부터 강가에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그 대신 마을 가운데 있는 공동우물에서 세수를 하곤 했습니다. 공동우물에서 얼굴을 씻고 집에 들어가도 부모님은 강가에 다녀오지 않았는지 검사를 했습니다. 우물에서 씻고 들어가도 귓가에나 머리 아래 부분에 물기가 채 마르지 않고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화를 내면서 회초리로 무자비하게 체벌을 했습니다.
“이 놈이 강에 가서 미역을 감고 왔구나! 너 죽고 나 죽자.” 하면서 한참 동안을 때렸습니다. 사실 저는 환갑이 지난 지금도 수영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 고향 친구들은 다들 수영을 잘하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많이 미웠습니다.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떠나고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아버지의 체벌은 ‘사랑’이었습니다. 
귀한 아들이 강물에 익사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저를 그렇게 때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표현 방법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아니 저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해줘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용서는 이런 것입니다. 
알고 보면, 지나고 나면,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알게 되고 ‘그 마음과 같아지는 것’이 용서입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파트에도 미운 사람이 있지요. 그 사람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되돌아 생각해 봅시다. 
숫자 ‘9’가 있습니다. ‘9’자를 아래에서 보면 분명히 9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6이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같은 숫자를 보면서 6이니 9니 하면서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면 내 마음에 화가 납니다. 그러나 내가 미워하는 상대방은 내가 미워하고 화가 난 줄을 모릅니다. 지금 미워하는 사람들 모두를 다 한꺼번에 용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씩 하나씩 곱씹어보면서 적어도 미워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서는 안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도록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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