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은 흥청망청 낭비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물’은 흔한 것, 널린 것, 마구 써도 얼마든지 더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을 물처럼 원 없이 써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는 돈이 있으면 ‘서른한가지’ 아이스크림을 매일 한 종류씩 배불리 사먹고 싶고, 가난한 부모는 좋은 차 몰고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싶으며, 젊은 연인들은 장기간 세계일주에 오르는 꿈을 꿀 것이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ATM에 카드를 꽂을 때마다 돈이 무한정 쏟아져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콸콸콸…서민들은 오늘도 그런 꿈을 꾸며 로또가게 문을 연다.
물은 그런 존재다. 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쏟아져 나오니 ‘껌값’도 안 되는 비용으로 얼마든지 마시고, 씻고,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수도 덕분에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던 ‘변소’도 안방에 들어와 ‘화장실’이 될 수 있었다. 옛사람에겐 가히 ‘혁명적 사변’이다.
그 물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떤 과정과 경로를 거쳐 내게 도달하는지는 관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냥 당연한 거니까.
그런데 그 당연한 것에 사달이 났다. 지난 5월 말부터 시작된 ‘붉은 수돗물’ 사태가 두 달이 되도록 시원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관련기사 1면) 처음 주민들이 대경실색했을 정도로 지저분했던 물은 이제 많이 정제된 상태지만,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부유물이 뜨고, 필터에 붉은 띠가 형성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천 서구에서 시작된 물 사태는 진정기미를 보이는가 싶더니 이후 인천 중구와 서울 문래, 경기 안산과 평택, 충북 충주, 강원 춘천 등으로 확산되기까지 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과학시간에 우리 몸의 70%가 물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면 작은 충격에 빠지며 물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깨닫게 된다. 지구 표면의 70%도 물로 덮여 있다. 인체와 지표의 70%가 물이란 사실은 왠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그런데 그렇게 물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물 부족에 시달린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물이 극소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 중 담수의 비율은 3% 미만. 그중에서도 약 1%만 호수와 강에 분포한다. 그러니까 전체 물의 0.03% 정도만 인간이 사용할 수 있단 뜻이다.
한국도 한때는 ‘물부족국가’였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낸 보고서에 1인당 수자원량이 153개 국가 중 129위로 ‘물 스트레스 국가’에 올리고, UN이 인용하면서 공식화됐다. 국내적으론 정부가 이를 핑계로 댐건설에 나서면서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이권에 개입하려 한다는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물포럼에서 발표한 물빈곤지수(WPI)에 한국이 150여 국가 중 40위권에 위치해 물 부족 국가까지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연간강수량도 이집트, 리비아의 50㎜대에 비해 한국은 1,270㎜대로 중간 이상의 순위다. 이를 반영해 정부도 물부족국가 명칭을 철회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물을 물 쓰듯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도시화 역시 급속하게 진행되다 보니 초창기에 만든 각종 시설물들이 한꺼번에 문제를 일으킨다. 지역난방 온수관이 터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우리 발 밑엔 각종 시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쓸 만큼 쓴 물건들이 노후화 증상을 보이며 문제를 일으키는 건 필연이다. 관건은 부작용을 얼마나 최소화하며 개선해나갈 것이냐에 달렸다. 물이 한마디 한다.
“아직도 내가 물로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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