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강정석  입주민
서울 성북구 정릉e편한세상


팩스 하나 보낼 일이 있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들렀다. 관리사무소 입구 벽에 ‘자동심장 자동심장충격기(AED)’ 상자가 매달려 있었다. 자동심장충격기를 보자 내가 석 달 전 1호선 전철 안에서 어느 노인에게 했었던 ‘심폐소생술’이 생각났다. 내 앞에서 한 노인이 풀썩 쓰러졌다. 심장마비 같았다. 달리는 전동차 안에서 순식간에 생긴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노인과 가장 가깝게 서 있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빠르게 손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전동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윗몸을 곧추세웠다. 심폐소생술을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0여 년 전, 조선소 현역시절 안전교육 시간에 심폐소생술 교육이 있었다. 플라스틱 인형을 눕혀놓고 심폐소생술 실습 딱 한 번 해 본 것이 흐릿하게 생각났다.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며 두 손을 포개서 노인의 가슴 가운데쯤 명치 쪽에 얹었다. 윗몸의 체중을 실어서 누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큰소리로 외쳤다.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누구 심폐소생술 잘할 줄 아는 사람 없어요?”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더 당황했다. 판단이고 뭐고 할 겨를도 없이 그저 노인의 가슴 가운데를 힘껏 눌렀다 놓기를 반복했다. 정신없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가슴의 어디쯤 눌러야 할지, 힘을 얼마나 줘야 할지, 시간 간격은 얼마쯤이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갑자기 맞닥뜨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허둥대며 ‘심폐소생술’을 할 뿐이었다. 그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노인을 살펴보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호흡해요!” 나는 동작을 멈췄다. 노인을 살펴보니 아주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건지, 잠시 정신만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두 청년이 노인의 양쪽 팔을 부축해 의자에 눕혔다. 한 청년이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다음 역인 종로3가역으로 구급대가 온다고 했다. 노인의 나이는 80대 초반쯤으로 얼굴이 아주 창백했다. 노인은 이제 괜찮다고 가늘게 말했다. “안 돼요! 구급대와 함께 꼭 병원에 가야 해요!”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청년들에게 구급대가 노인을 병원으로 모셔 갈 때까지 수고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119에 신고해 준 젊은이가 미더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긴박한 위기 순간이 잘 정리돼 마음이 편해졌다. 생과 사의 경계가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날 나는 ‘50플러스 도심센터’에서 ‘아름다운 마무리, 존엄한 죽음’ 강좌를 듣기 위해 가던 중이었다. 
이것 또한 우연이다. 죽음 강좌를 듣기 전에 죽음의 문턱에 선 노인의 가냘픈 생명을 내 온몸으로 직접 느꼈으니 말이다.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로 고귀한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100세 시대에 응급상황이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대한심폐소생협회, 대한적십자사, 소방서 등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심폐소생술 교육을 많은 국민이 받았으면 좋겠다. 위급 시에 가족은 물론 이웃의 생명을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존엄한 죽음’ 강좌를 듣고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쩌면 내 어설픈 ‘심폐소생술’로 노인의 생명이 되살아 난 건 아닐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귀한 일을 한 건 아닐까?” 팩스 한 통을 잘 보내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나올 때 벽에 붙어 있던 자동심장충격기를 다시 봤다. 녀석은 나를 보며 살짝 윙크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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