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어느 시골마을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있었다. 어느 아침 아들은 평상시처럼 일터로 향하고, 며느리는 장을 보기 위해 두 살 아기를 어머니께 맡기고 길을 나섰다.
오후께 며느리가 돌아오니 부엌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며느리를 반갑게 맞으며 고생하는 아들내외를 위해 곰국을 끓이는 중이라고 했다.
며느리가 솥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엔 두 살배기 손주가 끓여지고 있었다. 온몸이 퉁퉁 불은 채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의 일부분이다. 시골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쓴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책이기에 -공포소설도 아니고 잔혹범죄나 학살을 다룬 스릴러도 아니었기에-그리고 명백한 실화였기에, 이 부분을 읽고 한동안 멍한 상태로 한숨만 내쉬었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낮엔 정상이다가 야간에만 치매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는 손주를 애지중지 보살피며 사랑했다. 그날 낮에도 멀쩡한 어머니였기에 아무 의심 없이 아기를 맡겼는데 하필 그때 증상이 발현된 것이다.
치매는 잔인한 병이다. 한 사람이 평생 쌓아온 인격을 일거에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무섭고 끔찍하다. 그런 파괴적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가족의 고통 역시 참담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진주에서 조현병을 앓던 입주민이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화마를 피해 뛰쳐나오는 입주민들에게 무차별 칼을 휘둘렀다. 무방비상태로 경황없이 나오던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범인은 평소에도 위험한 사람이었다. 윗집 여고생을 위협하고, 현관문에 오물을 뿌렸다. 입주민들을 욕하고 위협해 여러 차례 신고가 접수됐지만, 별다른 조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살인마가 됐다. 그 여학생도 칼에 찔려 사망했고, 일가족이 화를 당하기도 했다.
최근엔 40대 조현병 환자가 세 살 아들을 트럭 옆자리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 충돌사고를 일으켜, 자신과 아들은 물론 정주행으로 차를 몰고 오던 생면부지 예비신부의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다. 의붓어머니를 마귀라고 때려 죽이고, 약국에 찾아가 몇 년 전에 자신을 욕했다며 약사와 직원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람도 있다. 여자친구를 구타해 죽이고, 친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경비원 2명을 죽인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친절하게 상담, 치료해주던 의사를 살해한 사람까지 나타났다.
이쯤 되면 온 사회가 정신질환자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일로다. 특히 공동주택의 경우 피해가 집단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에 공포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신병환자가 아파트에서 이웃을 폭행하거나 살해한 뉴스를 검색하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의학계 연구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약 1%가 조현병을 앓고 있고, 전체 범죄 중 이 환자의 범죄비율이 0.04%로 특별히 범죄율이 높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제는 임의로 약을 끊거나,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 사고위험이 급격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가족이 치료받도록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치매는 이제 국가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대통령과 정부도 어르신의 노후를 돌보겠다고 공언했다. 치매와 조현병은 모두 뇌질환이다. 숨어 있는 정신질환자들이 수치심이나 거부감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정신병은 죄가 아니다. 방치하는 것이 죄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