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노동자의 현실>>우리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 |아파트 관리소장들의 현장 이야기 <29>

Ⅰ 입주자대표회의 ‘갑’의 횡포

1. [특별 기획] 위기의 관리사무소 ‘벼랑 끝에 선 사람들’ 1)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과 사망 그리고 연속되는 자살, 저임금, 고용 불
안정성, 모멸감, 직업에 대한 자긍심도 잃어….

(1)A동대표의 부당한 업무간섭, 권한을 넘은 관리업무 개입 등 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 B관리소장

A동대표의 일과는 관리소장의 출근을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소장이 정시에 출근했는지 관리사무소에 나타나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관리사무소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면 전화로 직원에게 소장의 출근시간을 묻는다.오전에는 무슨 업무를 했는지, 점심을 먹고 언제 들어왔는지,오후에는 뭘 했는지, 단지 순찰은 했는지 묻는다. 지자체에서 이런 사업을 하는데 우리 아파트는 안 하고 뭘 하는가.수목 소독을 했는데 병해충이 많다. 잎이 상한 것 같다. 업체에서 질 낮은 소독약을 쓴 건 아닌가. 소장하고 업체하고 아는 사이인가? 관리소장은 의심이 받기 싫어 수의계약으로 할 수 있는 공사도 공개경쟁입찰에 부친다. 그러면 A씨는 “소장이 일을 스스로 만들고 있네”라고 핀잔을 준다.
입대의 정기회의는 저녁 8시에 시작되지만 시간 외 수당은 없다. A씨가 고용노동부 유권해석을 갖고 나타나 관리자에게는 시간 외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소장은 대응하는 것 자체를 그만뒀다.장기수선계획에 의한 도장공사도 입찰공고문 트집을 잡아 두 차례나 수정하고 한 차례 유찰을 시켰다. “세부 배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소장이 아파트에 애정이 없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에서 신물이 왈칵 역류하는 게 느껴졌다. 침착하게 마음을 추스르고 “배점표는 입주민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관리규약을 개정해야 해서요”라고 했지만 A씨는 관리사무소의 집기를 발로 차면서 “네가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공사 후에도 A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5억원짜리 공사를 했으니 소장이 2,000만원은 족히 챙겼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검찰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증거만 잡히면 콩밥을 먹이겠다면서….
관리소장은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차례 퇴직을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니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자식들은 아직 독립하지 않았고 매달 생활비를 드리는 노모도 있다. 노후를 대비해 모아놓은 돈도 거의 없다. 생계라는 것의 무게는 그림자처럼 견고했다.관리소장이 쓰러진 것은 그날 저녁 9시경이었다. 오후부터 머리가 유난히 아팠지만 근무시간에 병원에 갈 수 없어 6시에 퇴근했다. 퇴근하자 조금 나아져 오늘만 지켜보자 하고 집으로 왔다. 좀 나아지나 싶어 소파에 기대 TV를 켜는 순간 팔걸이 쪽으로 ‘쿵’ 소리와 함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아내가 급히 구급차를 불렀지만 그는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2)경기 의정부시 어머니의 산소가 있는 야산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D관리소장의 유서에 담긴 승강기 공사와 관련한 부담감과 약속을 지키지 않은 공사 관련자들에 대한 원망

의문의 유서, 그리고 승강기 : D소장이 근무하던 아파트는 승강기 리모델링공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지난해부터 3차례나 유찰을 겪는 등 부침을 겪었다. D소장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입대의 회장과 특정 입주민은 유족에게 D소장이 자살한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면서 유서를 보자고 했다. 유서를 확인한 이들은 이내 태도를 바꿨다. 연락을 받지 않거나 중언부언했고 취재에 협조하겠다던 D소장 소속 위탁회사 사장도 재계약을 앞두고 부담스럽다며 취재를 거절했다. D소장은 근 1년간 휴대전화와 소형 녹음기에 승강기 공사와 관련한 대화를 은밀히 녹음해 두며 자살의 동기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경찰은 “유족이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으면 처벌은 어렵다”며 신병 비관에 의한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손녀들에게 내가 자살했다는 건 알리지 말아달라는 유서를 남기면서도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제 영원한 미궁에 빠졌다.

(3)관리사무소 문서 회장실에 갖다 놓고 문 잠근 회장, 벌금 100만원2)

동별 대표자 자격을 상실한 입대의 회장이 화가 나 관리사무소에 있던 문서를 갖고 나와 다른 장소로 옮긴 뒤 그 문을 자물쇠로 시정했다가 문서손괴로 벌금형을 받았다. 경기 양주시에 위치한 A아파트 입대의 회장이던 B씨는 2015년 12월 24일 양주시로부터 동별 대표자 자격이 상실됐다는 공문을 받아 동대표로서의 업무에서 배제되자 관리사무소장이 관리하는 아파트 계약서 철, 장기수선 설명책자, 관리대장을 임의로 갖고 나와 관리사무소 옆 자신이 사용하던 사무실(화장실)에 옮긴 뒤 그 문을 자물쇠로 시정했다가 문서손괴로 기소 당했다. B씨는 자신이 동대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문서를 볼 권한이 있었을 뿐만아니라 관리사무실에서 회장실의 열쇠를 보관하고 있어서 언제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문서를 옮긴 후 시정했더라도 문서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의정부지법 형사7단독(판사 김미경)은 문서손괴죄는 타인 소유의 문서를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함으로써 성립하고 문서의 효용을 해한다고 함은 그 문서를 본래의 사용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물론 일시적으로 그것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는 대법원 판례(2014도13083 판결)를 참조,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B씨가 ▲A아파트 10기 입대의 회장직에 있으면서 11기 입대의 임원 선출을 위한 선거업무를 방해했다는 업무방해죄로 2015년 11월 16일 벌금 200만원의 유죄판결을 받아 같은 해 12월 24일 확정된 점 ▲양주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공문을 통해 B씨가 동대표 자격이 자동 상실됐으므로 선관위를 구성한 후 동별 대표자를 선출해 입대의를 구성하라는 내용의 행정사항을 통보한 점 ▲B씨가 관리소장과 관계가 좋지 않던 상황에서 문서를 회장실에 보관한 점 ▲관리소장은 법정에서 B씨가 문서를 어디로 가져갔는지 알 수 없었고 한참 후인 2016년 2월경 회장실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서류를 가져왔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B씨는 사건 당시 동대표 자격이 법적으로 상실된 상태였다고 봤다. 법원은 설령 B씨가 관리소장에게 해당 문서들에 대한 열람을 요구할 권한이 있었더라도 문서손괴죄의 법리에 비춰보면 관리소장에게 사전에 열람을 요구하는 등의 절차 없이 소장이 관리하는 문서들을 임의로 가지고 가 일시적으로나마 그것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이상 문서손괴죄가 성립한다고 선을 그었다. B씨는 문서들이 관리사무소 바로 옆에 있는 회장실에 보관돼 있었고 관리사무실에 회장실 열쇠가 항상 비치돼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그 같은 사정이 문서손괴죄의 성립 여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Ⅱ ‘갑’의 횡포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있는 관리소장

1. 올해 3월 주택관리업자 재계약에 실패한 1,200가구 규모의 아파트에 근무하는 F관리소장, 입대의 회장이 기존 관리회사와 재계약을 거절하며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해 바뀐 관리회사3)

-소장의 입지 : 관리회사와 소장이 함께 바뀌는 일이 보편적이지만 F소장은 교체되지 않았다. 회장이 소장과 같이 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관리회사는 F소장을 “자기만 살겠다고…”라며 비난했다.
G소장은 경비용역 입찰에서 관리회사의 자회사가 낙찰을 받도록 동대표들을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회장이 “소장 입장도 잘 알지만 이번엔 이 회사로 가자”며 업체를 물고 들어왔다. 회장은 “다다음달에 청소 있잖아 그때 하자고”라고 했지만 몇달 후 진행된 미화용역입찰에서도 회장이 업체를 데리고 와 계약을 따냈다. G소장은 관리회사로부터 ‘참 무능한소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뇌졸중, 그리고 산재 포기 : 3년 전 경기 북부에서 가장 시끄러운 아파트로 꼽히던 H아파트. 세 사람의 입주민이 800가구를 좌지우지하며 아파트는 고소와 고발이 난무했다. 관리회사의 요청으로 이곳에 부임한 김모 소장은 부임 직후부터 시청과 경찰서를 매주 2~3차례 오가야만 했다. 입주민들은 상당시간 동안 어느 편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했다. 분열을 획책하는 이들에 휘둘리던 입주민들은 김 소장을 비난하기도 했다. 폭언과 물리력 행사, 협박, 얽히고 설킨 소송들 속에서 그는 몇 차례 몸의 이상을 느꼈으나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책임감이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천천히 누적돼 갔다.
3년의 싸움을 마치고 아파트는 안정화됐지만 몇 달 후 김 소장은 근무 중 쓰러졌다. 그의 나이 41살에. 지난해 7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 소장은 발병 직후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나도 몸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중추신경과 운동신경에 마비가 왔다. 말초신경 말단까지 신경이 죽어버린 것이다.
김 소장은 담당의로부터 완치는 사실상 어렵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아이들을 더 이상 안아줄 수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 “물건도 들 수가 없다. 고작 6~7살 정도의 힘밖에 없어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내가 짐이 된다는 게 가장 부담스럽다”고 그는 말했고, 주택관리사 동료들에게 “부디 자기 몸을 돌보라”고 전했다.
김 소장은 산재 신청을 하지 않고 자비로 치료를 받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뇌혈관 질환은 낮은 확률이지만 산재 승인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노무사와 산재 신청을 준비하던 김 소장은 신청을 포기했다. 함께 일하던 관리직원들에게 증언을 해달라고 말을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마 당신의 일자리를 걸고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1,3)[특별기획] “위기의 관리사무소 ‘벼랑 끝에 선 사람들’, 한국아파트신문, 2016년 11월 9일자
1,000호
2)의정부지법, 동대표 회장 벌금 100만원, 한국아파트신문, 2017년 7월 5일자 1,032호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