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는 세상을 지배하는 불멸의 원리 중 하나로 관계의 질서를 잡는 핵심 요소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공동생활을 할 때 공존을 위해 서열을 매겨야 하며 서열이 매겨지면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서열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서열이 정해질 때까지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이것이 곧 전쟁 또는 싸움의 원인이다. 서열이 정해지면 그때 질서가 잡힌다. 갑을관계는 사회가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요소다. 
이 갑을관계가 오용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사회풍토가 만연하는 게 문제다. 
상위 권력자가 한 개인을 인격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조직 속에서의 지위로만 보고 대하는 게 ‘갑질’이다. 정보의 빅뱅과 기술의 발달로 세상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한 개인이 갖는 사회 속에서의 관계는 팽창하고 있다. 
수많은 관계를 갖고 그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다 보니 관계의 상대를 역할적 도구로만 보게 되고 이게 ‘갑질’로 이어진다. 회사나 조직에 권력자들의 ‘갑질’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갑인 권력자가 나를 도구로만 이용한다면 나란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일개 기계 부속에 불과하다. 
갑이 을을 도구로만 볼 때 갑은 을의 존엄성 경계를 함부로 침해한다. 을은 갑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갑질’에 대항하지 못하고 이를 수용하거나 회피한다. 그러면 ‘갑질’의 일방통행로가 쉽게 열리게 된다. 
‘갑질’의 일방통행을 막기 위해서는 갑에게 을인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갑의 인식 속에 을의 존재감이 생겨야 ‘갑질’ 일방성에 제동이 걸린다. 
‘갑질’ 일방통행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나의 존엄성을 알리는 것이다. 을인 나를 도구로만 볼 게 아니라 인간으로 볼 것을 요구해야 한다. 갑은 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고 을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을은 이 무기가 무섭고 생존에 필요한 갑의 열매는 계속 필요하기에 자아를 감추고 ‘갑질’을 감수하기 쉽다. 
그러나 이렇게 갑을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 결국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갑이 수용할 수 있는 속도와 강도로 나의 존재감을 알려야 한다.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통하지 않는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관계를 끊는 것이다. ‘갑질’을 수용하는 갑을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나를 망가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갑질’ 수용은 곧 자기학대와 자기모멸로 자존감을 해친다. 
관계를 끊는 것이 나를 구하는 일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러면 어떻게 살라고? 그럼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자존감을 담보해놓고 불행을 자초할 것인가? 
갑의 모든 것은 옳고 을은 모든 것을 갑에 맞추는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을은 제대로 살 수 없다. 갑을관계는 갑이 중심이 아니라 갑과 을이 각각 동시에 중심이 되는 관계가 돼야 건강한 관계다. 을이 갑을 파악하고 살피는 목적은 갑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을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갑을 살피는 것이다. ‘갑질’의 제동은 을에게 달린 것이다. 
-정혜신 저 ‘당신이 옳다’ 내용 참조

김호열  주택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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