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칼럼 18 >>집건법과 공주법의 발전방향

김영두 교수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양 법의 적용 범위와 한계에 관한 논의 활발
이해관계자 간 갑론을박 과정 거쳐야만 합리적 대안 도출 가능성 높아져

지난 18일 국회에서 집합건물법과 공동주택관리법의 법제도 개선 토론회가 개최됐다. <관련기사 1면>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두 가지 큰 흐름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의 흐름은 집합건물의 관리에 있어서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 범위가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하나의 흐름은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사법(私法)인 집합건물법을 중심으로 집합건물의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전자의 주장, 즉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 범위가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집합건물법이 비현실적이고 관리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후자의 주장, 즉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것에 비판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은 공동주택관리법이 너무 공법적인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사적자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 흐름도 자세히 보면 결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소규모 공동주택의 관리에 공동주택관리법이 적용돼야 한다면서도 준주택인 오피스텔은 업무시설이기 때문에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반면에 오피스텔은 사실상 주거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공동주택과 유사하게 관리되기 때문에 공동주택관리법에 포함시켜도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집합건물의 관리에 있어서 집합건물법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집합건물의 유형에 따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의 도입을 통해 집합건물법의 공백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고, 특별법이 아닌 표준규약 등을 통해 집합건물법의 공백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피스텔의 관리가 공동주택관리법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주택관리사를 자발적으로 배치할 수는 있겠지만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고, 주택관리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지 않으면 공동주택관리법에 오피스텔의 관리를 포함시키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소규모 공동주택을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4월 초에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과 같이 입주자 등이 선택하는 경우에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이 되도록 하자는 견해도 있었고,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쯤 되면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확대하더라도 어느 정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쉽게 답할 수 없게 된다. 
웬만한 법률적 훈련을 받은 사람도 위에서 언급한 쟁점들을 전체적인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전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들이 계속적으로 분화하면서 수많은 주장과 주장들이 서로 결합하고 대립하는 복잡한 논의가 전개돼야 비로소 진실을 찾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주장들이 섞이는 과정에서 서서히 진실에 부합하는 주장의 모습이 만들어져간다. 섞음 속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일은 의외의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병 속에 들어 있는 콩알의 개수를 민주적(?)인 방법으로 알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여러 사람이 콩알의 개수를 추측해 적어내도록 하고 적어낸 개수를 평균하면 그 평균값이 병 속에 들어 있는 콩알의 개수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좀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실험해 보기 바란다. 
각각의 사람들이 적어낸 개수가 정답인 경우는 거의 없지만 초과한 개수는 미달한 개수에 의해서 상쇄된다. 각자 적어낸 개수들이 서로 뒤얽혀 서로의 오류를 보완하면서 평균값이 정답에 근접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답에 근접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실험을 하는 경우에 모든 사람이 충분히 병 속의 콩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 한다. 사람의 수가 적다면 평균값이 정답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느 정도 많은 사람이어야 할까? 
이를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정답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속에서도 섞음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민주적으로 병 속의 콩의 개수를 맞추는 방법과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는 방법을 사용하고 훨씬 더 복잡하지만 통계적 진실을 활용한다는 큰 틀에서 본다면 차이가 없다. 다만 콩의 개수를 많은 사람에 물어봐야 하듯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많은 데이터, 즉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집합건물법과 공동주택관리법의 발전방향에 대한 복잡한 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큰 흐름으로 정리되고 우리 사회에 맞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복잡함이 아니라 주장과 주장이 섞이지 못하는 것이고, 자유로운 주장이 많이 제기되지 않는 것이다. 인위적인 경향성을 띤 주장들이 난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런 경향성을 띤 주장은 섞음의 미덕을 파괴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에서 열띤 토론이 이뤄질 때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좀 에둘러서 말해 봤다. 
지난 18일 토론회는 법 제도 개선을 위해 주장과 주장을 섞는, 말과 말을 섞는 자리여서 논의가 복잡했더라도 답답한 마음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 섞음의 미학의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잘 비빈 비빔밥은 섞어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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