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정 선 모 
서울 노원 불암대림아파트
도서출판SUN 대표

내가 사는 아파트는 1층이다. 일부 건설사 중에는 1층 입주민에게 발코니를 통해 오가며 가꿀 수 있도록 개별 정원을 분양하기도 하지만 우리 아파트는 그렇지 않다. 그냥 화단이 발코니로 막혀 있다.
처음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했을 때, 조경수로 심은 나무가 너무 볼품이 없었다. 싼 가격에 대량으로 구입해 심은 티가 역력했다. 가을에 입주를 했는데 준공검사를 받기 위해 부랴부랴 심은 나무는 겨울을 지나는 동안 삐쩍 말라버렸다. 입주 몇 달 후, 봄이 시작되자마자 화원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청단풍나무 두 그루를 사 와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심었다. 거름도 주고, 때마다 비료도 충분히 주며 정성을 쏟았다. 1층이라 호스로 마음껏 물도 줄 수 있었다. 
처음엔 1m 남짓이었던 나무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엉성하던 가지에서 마음껏 새 가지가 뻗어 나와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잎도 무성하게 자랐다. 너무 빽빽한 가지는 가끔 전지를 해 바람이 잘 통하게 해줬더니 푸르른 잎도 더 싱싱하고, 마음껏 키도 키워나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청단풍나무는 우리 집을 훌쩍 넘어 2층까지 넘보게 됐다. 여름이면 울창한 나뭇잎으로 인해 마치 산장에 온 듯하다. 이른 봄,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 잎눈이 볼록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기특하다. 비 오는 날, 초록의 나뭇잎에 빗물 떨어지는 모습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다가 주황색이 돼 떨어지는 모습도 참 어여쁘다. 나무를 직접 내 손으로 심지 않았다면 맛볼 수 없는 기쁨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나무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멋진 나무는 내가심은 이 청단풍나무다.  
해마다 봄이 오면 그 나무 밑 빈 화단에 한해살이 봄꽃을 사다 심는다. 주로 팬지, 페튜니아, 분꽃, 금잔화, 봉선화 등을 심는데, 더러는 모종을 사다 심고 더러는 꽃씨를 심는다. 처음엔 심어놓은 모종을 누군가가 뽑아갔다. 누가 봐도 애써 심은 것이 역력한데 뽑아가니 그렇게 괘씸할 수가 없었다. 뽑아 가면 또 심고, 뽑아 가면 또 심었다. 세 번째 심을 때는 푯말을 세워 놨다. “000호가 심어놓은 꽃이니 제발 뽑아가지 말라”며 “예쁜 꽃이 피면 함께 즐기자”고. 그 다음부터 모종을 뽑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그 화단에 어린이집 아이들이나 거동이 불편해 천천히 걸음 연습을 하는 어르신들이 종종 찾아온다. 아이들은 활짝 핀 꽃 앞에 그보다 더 예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걸음 연습하러 나온 어르신들은 분꽃을 들여다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관리비를 내는 것만으로 입주민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를 가꾸는  것 또한 입주민이 함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올봄에도 아파트 정원에 꽃을 심을 것이다. 해마다 조금씩 면적이 늘어나지만, 예쁘게 피어날 꽃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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