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갑질 없는 세상 항하여⑤ 본지 전국 표본조사 - 최저임금 인상에도 감원 공포 상당부분 사라져

최저임금에 대한 주민의식 긍정전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아파트 관리현장의 경비원 감원태풍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사회 직업군 중 최하위 직군으로 인식되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의 급여가 200만원 이상 시대로 본격 진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가 전국 아파트 단지를 표본 조사한 결과, 임금 인상 때문에 경비원을 내보낸 아파트는 거의 없었으며, 최저임금 인상률 적용 역시 연착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입주민들의 의식이 상당부분 긍정적으로 전환됐으며, 지난 몇 년간 이뤄진 공동주택 관리현장의 인적 구조조정이 더 이상 감원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최소인력에 소수정예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본지는 지난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서울, 경기, 부산 등 전국의 아파트 단지 70곳을 선정해 경비원의 인적 구조 변화와 휴게시간의 감소 유무, 임금 인상과 그에 따른 긍·부정 효과 등을 방문대면 또는 전화통화 방식으로 조사했다.
이 중 경비원을 감원한 단지는 4개 단지, 5.71%였다. 조사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올해 들어 경비인력 감축에 나선 아파트는 전체적으로 1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감원하지 않은 이유 역시 “더 이상 줄일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대부분 감원 없이 임금 인상

반면에 휴게시간은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37개 단지(52.9%)가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임금 인상의 충격을 최소화했으며, 증가시간은 30분에서 1시간이 대다수였다.
지난해 경비원 평균 휴게시간은 8시간 19분이었으며, 올해는 8시간 38분으로 평균 19분 늘었다. 가장 적은 휴게시간은 경기도 용인의 모 아파트에서 5시간, 가장 긴 휴게시간은 대구 한 아파트의 10.5시간으로 두 배가 넘는 편차를 보였다.
일각에선 관리비 절감도 좋지만, 장기 휴게시간을 적용하면 경비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조사대상 아파트들의 경비원 급여는 대부분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었으나 특히 야간 휴게시간의 다소에 따라 큰 급여 차이가 발생했다. 야간 휴게시간이 적은 아파트의 경우 월급여가 최상위권은 270만~290만원대로 거의 300만원에 육박했으나, 야간 휴게시간이 긴 아파트들은 180만원대에 머물렀다.
지역별로도 편차가 존재한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과 부산, 울산 등 대도시권은 대부분 200만원을 넘겼으나, 지방 소도시로 갈수록 급여가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또한 같은 지역 내에서도 신도시와 구도심의 급여 차이가 있었다.

몇 년간 감·단직 급여 수직 상승

사실 아파트에서의 최저임금 인상쇼크는 수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감시·단속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제외가 점진적으로 사라지면서 경비원 등 24시간 노동자의 급여가 해마다 20%안팎으로 수직상승해 왔기 때문이다.
그간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가 입주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수차례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설득작업을 벌인 덕분에 관리비 인상에 대한 불만과 인력감축 움직임이 상당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금 인상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휴게시간 증대책이 다른 형태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일선에서 입주민뿐만 아니라 외부인까지 상대해야 하는 경비원이 휴게시간에 자리를 이동하거나, 경비실을 걸어 잠그는 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관리사무소에 항의하기도 하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삿짐 차량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일반차량과 보행자 통제가 필수적이기에 휴게시간이라도 경비원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법적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 위험한 건 야간시간대다. 야간엔 주간근무보다 50%의 가산수당이 붙기 때문에 상당수 아파트들이 야간 휴게시간을 큰 폭으로 늘려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경비원이 각종 경보장치와 CCTV모니터가 설치된 경비실을 비우고 휴게실로 이동하거나 마음 놓고 취침을 할 경우 위급상황이나 강력사건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원인과 무관하게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나 관리사무소장 또는 위탁관리업체가 억울하게 책임을 뒤집어쓰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경비원 내심 반기지만 조심스런 모습

취재과정에 만난 한 경비원은 “점심이나 저녁 식사시간엔 밥을 먹으면서도 택배물품을 전달하고 주민응대도 할 수 있지만, 야간휴게시간에 불을 끄고 잠을 청하려면 불안한 마음이 들어 왠지 찜찜하다”고 밝혔다. 함께 있던 입주민 역시 “야간에 모든 경비원이 잠을 자면 경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모든 가구가 조금씩만 더 부담하면 최소한의 경비체계를 24시간 가동할 수 있고, 그래야 입주민이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아파트에선 극단적으로 야간엔 아예 경비원을 퇴근시키고 방범을 포기하는 단지도 나타나 입주민들이 위험에 더욱 노출되고 있다.
한 입대의 회장은 “올해까진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받아 큰 부담 없이 버티고 있지만, 이마저 끊긴다면 관리비 인상에 대한 입주민 불만을 어떻게 무마해야 할지 자신이 없다”며 “임금 인상이 오히려 노인 일자리를 빼앗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으므로 과거처럼 ‘감시·단속직 근로자’에 대해 예외적으로 적용 완화하는 방식을 재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이는 경비원들 스스로도 바라는 바”라고 주장했다.
경비원들은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 경비원은 “높은 급여 좋긴 하지만 이로 인해 자리를 잃게 되진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고 전했다.

경비원만 인상? ‘노노갈등’ 양상도

또 한편으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기술직 직원들은 단순노무직인 경비원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으나, 경비원 급여가 대폭 인상되고, 기사들의 급여가 정체되면서 엇비슷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기사들이 업무를 태만히 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이직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기사와 경비원 간에 충돌과 마찰이 잦아지는 ‘노노갈등’의 양상도 생겼다.
여기에 직원을 통솔하고 업무를 조정해야 하는 관리사무소장은 입주민-주민대표-경비원-미화원-기사-중간관리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신경전을 중재하느라 정작 자신의 급여인상에 대해선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는 형편이다.
한 관리사무소장은 “몇 년째 이어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덕분에 경비원의 생계가 향상되고 업무와 단지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간 점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지만,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았던 기술직·중간관리직의 급여가 별로 오르지 않아 사기가 매우 저하된 상태”라며 “입주민의 불만과 형편을 생각하면 소장 급여 인상에 대해선 말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면서 사회적 약자인 경비원의 생활이 향상되고 입지도 강화됐다. 현재로선 실직에 대한 공포도 상당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현재 공동주택 관리현장의 모습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식으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경비원의 지위 향상뿐 아니라 모든 직원이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정부의 혜안과 입주민의 지혜로운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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