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택관리사보 상대평가 앞두고 취득 열기 고조, 하지만…

어느 주택관리사의 취업 성공 분투기

 

수도권의 한 아파트에 근무 중인 관리소장 A씨는 이제 갓 3개월차에 접어든 신출내기다. 10여 년 전 40대 중반의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치킨집을 운영하다가 5년 만에 접고, 그 와중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는 고심 끝에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시험준비에만 매달릴 수 없었던 A씨는 밤엔 대리운전을 하고 낮에 인터넷 수강을 병행하며 공부했지만, 두 번째 도전에서 가까스로 1차 시험만 통과했다. 다시 1년간 매달린 끝에 지난해 치러진 시험에서 최종 합격증을 거머쥘 수 있게 됐다.
합격증서를 받던 날, 아내와 함께 축배를 들었다. 취업이 녹록지 않다는 말은 들었지만, 경력 등을 감안할 때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기까진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서류를 접수했지만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조차 없었다. 결국 그는 다시 대리운전에 나섰다. 밤에 일하고 낮엔 접수하러 뛰어다니길 7개월여 만에 한 아파트에서 연락이 왔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우리 아파트는 영세하고 가구수도 많지 않아 급여가 적다 보니 소장들이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린다”며 “오래 버틸 수 있으면 일해보라”고 제안했다. A씨는 모든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취업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기사 한 명 없는 아파트에서 공용부분의 온갖 잡일이 모두 그의 몫이었고, 노후한 설비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지난겨울 몇 차례 배관 동파로 큰 곤욕을 치렀다는 얘길 듣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태산이 됐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장기수선계획서와 관리서류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급여가 얼마나 되는지 묻자 “아내가 맞벌이를 해주지 않는다면 아이 학원도 못 보낼 정도…”라며 끝내 입을 다물었다.
“취업 대기 중인 동기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한 그는 “처음보다 참석자 수가 확 줄었다”며 “대부분 취업을 포기하고 다른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기사로 취업한 동기도 있는데 그것도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사례는 주택관리사 자격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택관리사는 일정 규모 이상의 의무관리 공동주택에서 관리소장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지만, 소장 이외의 분야에선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회장 황장전)에 따르면 1990년 1회 시험부터 현재까지 모두 5만3,812명의 주택관리사가 배출됐다. 이 중 법에서 정한 의무관리 단지에 현직 관리소장으로 근무 중인 사람은 1만5,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취업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장 많이 응시한 사람은 8번째 시험에서야 겨우 합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10차례 이상 시험을 친 사람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험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수험생들의 학습능력과 수준도 계속 향상돼 합격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매년 과다배출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치러진 2차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며 일부 학원강사와 수험생을 중심으로 ‘재시험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재시험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랐다. 하지만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회를 더할수록 어려워지는 것에 불만을 갖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는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과 수만 명의 미취업 대기자가 층층이 쌓여 있는 현실이다.
주택관리사들은 모두 한결같이 취업 대기자수가 늘어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 주택관리사는 “나도 고난도 시험에 불만이 있었지만, 막상 합격하고도 취업이 안 되니 눈앞이 캄캄하더라”며 “일부 위탁관리업체나 입주자대표회의가 채용을 대가로 은연중 뒷돈을 요구하는 건 과다배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하고 “이런 반칙행위가 늘면 결국 피해는 전체 입주민에게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은 “밖의 자격취득이 전쟁이라면 안의 취업경쟁은 지옥”이라며 “천신만고 끝에 합격하고도 취업을 포기하는 동료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대주관 관계자는 “공동주택이 점차 대규모로 조성되면서 한해 예산규모만 100억원 이상인 단지가 늘고 있다”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 입주민의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과 투명하고 안전한 관리를 위한 자격시험의 난이도 상향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험문제의 오류가 아닌 난이도에 대한 이의제기는 제도의 근본취지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과다배출된 기존의 주택관리사 현황까지 고려한다면, 난이도가 좀 더 오를 필요가 있다”면서 “2020년부터 시행하는 ‘선발예정인원제’가 조속히 정착하면 출제수준에 대한 불만과 과다배출 논란이 함께 수그러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택관리사는 중장년층에게 최고 인기 자격 중 하나지만, 시험과 취업경쟁의 이중관문을 뚫고 막상 관리사무소장이 되고 나면,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기도 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살자가 나오기도 하는 고난도 직업이다. 그럼에도 지원자가 줄을 잇는다.
대주관의 다른 관계자는 “협회는 과다배출 문제해소와 오피스텔 등 주거용, 비주거용 집합건물의 투명하고 안전한 전문관리를 위해 주택관리사 활용방안을 지속 제기하고 있다”며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제2의 인생을 위한 생계수단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전문자격시험을 준비한다는 자세로 임해주길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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