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택관리사는 많은 자격들 중 매우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중장년층에게 큰 인기다. 응시자 수로는 공인중개사가 압도적이지만, 여기엔 미리 자격을 확보해 놓으려는 20~30대 젊은층도 상당수에 이른다. 중장년층으로만 한정해서 보면 주택관리사에 대한 인기가 매우 높다.
다른 자격과 크게 다른 또 한 가지는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격이란 점이다. 주택관리사는 오로지 취업만을 위한 자격이다. 개인사업이나 자영업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중장년층이 대거 몰리다 보니 합격자들의 연령대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반기 사회생활을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며 나선 50~60대가 요즘 배출되는 주택관리사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관리현장에선 새롭게 배출되는 주택관리사들의 연령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자칫 노년기의 전유물로 인식돼 젊은 사람들이 아예 외면해 버리면 그만큼 관리의 활력이 떨어지고 젊은 입주민들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한다. 또 이미 연금 등 나름의 노후 대비책을 갖춘 사람들이 진출하면서 임금 수준을 낮춰 취업하는 경향으로 인해 관리직원 전체의 급여가 낮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도 꽤나 다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관리책임자로서 최일선에 서서 입주민을 상대해야 하고 많은 입주민들로부터 존중받기도 하지만, 때론 막말과 폭행의 대상이 될 때도 있다. 기사, 경리, 경비원, 미화원 등의 관리직원을 통솔하는 한편, 입주민을 모시기도 해야 하는 양면성을 지녔다. 스트레스를 못 이겨 자살자가 나오기도 하는 대표적인 감정노동직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 대기자가 수만 명에 이를 정도로 겹겹이 쌓여 있다.
주택관리사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으로 취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지난해까지 배출된 주택관리사가 5만3,000명이 넘지만 이 중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1만5,000명 정도로 취업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관련기사 1면>
피곤하고 힘든 직업임을 모든 이들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장년층이 매우 선호하는 신기한 직업이다. “전엔 관리사무소장을 하찮게 여겼지만, 주택관리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하고 대단한 자리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그런 주택관리사보 자격시험이 내후년이면 대전환점을 맞게 된다. 2020년부터 ‘선발예정인원제’가 도입돼 정해진 수의 합격자만 배출되는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너무 많은 자격자가 쏟아져 나와 취업률이 20%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이를 앞두고 현행 절대평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벌어지는 노력도 전쟁을 방불케 한다. 어렵게 출제해도 수험생 수준이 그만큼 따라붙으니 다시 더욱 어렵게 출제하는 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치러진 제21회 주택관리사보 2차 시험이 너무 어렵다며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재시험이 치러질 리는 만무하지만 수험생들의 심정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한정된 자리에 무한정 자격자를 배출하는 건 실업자만 양산하는 꼴이 된다. 20%대에 불과한 취업률이 ‘뒷돈’ 취업비리의 최대 주범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밖에서 자격취득을 위해 몰두하는 게 전쟁이라면, 합격하고 안에서 벌이는 취업경쟁의 사투는 지옥”이란 말까지 나온다. ‘개업’할 수 없는 자격이라면 자리에 맞춘 인원을 선발하는 게 합당하다.
부디 빈다. 치열한 전투를 끝내고 들어온 수험생들이 지옥이 아닌 천국을 경험하는 날이 어서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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