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우리  시대의 영화꾼, 이예춘의 아들, 이덕화의 파로호에 얽힌 부자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다. 그는 한참 잘 나가는  MC로 활동하다 오토바이 사고로 중환자실에서 보낸 세월도 만만치 않다. 얼마나 부모가 속을 태웠을까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요양 중이던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돼 아버지와 같은 병원의 다른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게 됐다. 자식은 아버지의 명을 단축한 죄인처럼 아픔을 안고 오늘까지 아버지가 요양 중이던 파로호에 가지 못한다. 파로호 근처에서 요양을 하던 중 종종 아버지를 찾아갈 때면 낚싯대를 가져갔다. 아버지와는 두 마디면 대화가 끝이다.
“왔냐?”
“쉬어 가거라” 
아들이 호수 건너편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밤낚시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는 아들이 오는 날까지 아들의 낚시 준비를 해둔다. 떡밥이며 지렁이까지 챙겨두곤 했다. 
그는 한 프로그램에 등장해 과거 이야기를 터놓고 울먹인다. 아버지가 “너 왔냐” 하고 나올 것 같아서 그곳에 가지 못한다. 울먹이는 가운데 슬픔이 호수처럼 고여 눈물보가 터질 것만 같다. 70세의 남자에게도 그런 눈물이 남아있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울컥한다.  
그는 후배들을 앞세워 가지 못하던 기억의 장소, 파로호로 발길을 옮긴다. 목적지가 다가오자 발걸음이 무겁다. 도중에 밀고 올라오는 슬픔을 완급 조절 하느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의 파로호에 얽힌 이야기는 어느 날 새벽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로호의 새벽 안개는 어색한 사람의 뱃길을 무안하지 않게 해준다. 요양 중인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러 갔지만 낚시를 하러 간 거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남자들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성향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의 어깨에 기대려고 들지 않고 기어서라도 아들에게 가서 아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아닌 듯 감추려고 든다. 멋있고 힘 있게 보이던 아버지 상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평소 인생에 대해 다분다분 대화를 나눈 사이가 아닌 이상 늘 조금의 간격이 있고 그 자리에는 위엄과 권위가 벽을 치고 있다. 그 거리는 서로의 존재를 더욱 멀게 만든다. 어찌 보면 자식이 라이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사는 동안 내내 아버지를 모방하고 자라면서 언젠가 아들도 어른이 되면 아버지보다 더 잘 할 거라고 작심한 듯 은근히 경쟁을 한다. 그것을 자식이 모를 리 없다. 아랫사람의 덕목은 윗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며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품고 가는 것이므로 그러한 그림은 보여졌다. 
그러나 사위어가는 인생길에서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여느 아버지나 크게 다르지 않다. 표현이 다소 다를 뿐이다. 아들 이덕화가 밤낚시를 하고 있는데 새벽  안개가 자욱한 강에서 삐거덕거리며 노 젓는 소리가 들린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한참 기다리다 보니 아픈 아버지가 노를 저어 강을 건너오고 있다. 당황한 아들은 아버지 건강이 염려되는데 배를 세우고 보온병을 들고 내린다. 아버지는 호숫가의 낚시꾼들에게 타온 믹스커피를 한 잔씩 따라주고 아들 앞에 이르러 보온병을 내민다. 
“한 잔 남았다”
평소에 잔 정을 내리붓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림짐작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속을 다 들여다보고 속울음을 운다. 
세월이 가고 그는 후배들과 함께 파로호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며 보온병에 믹스커피를 타서 들고 나온다. 그러한 행동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일행은 한참 후에 사연을 듣고 한 잔씩 받아 마시다가 최근에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한 남자를 울리고 말았다. 
매순간 섬세하고 풍성하게 느끼는 그 남자가 예술성과 대중의 박수소리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으면서 그 배분 비율을 조정하느라고 수고를 했을 듯하다. 어찌 번민이 없었을까. 생각과 매순간 담기는 감성을 가지고 위트와 순발력으로 10년간 이어왔다면 그 일에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며 그 일은 사랑을 바탕에 두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니 길게 할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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