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일은 돈과 관련된 것들이다. 돈은 인간이 기본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요소 중 하나다. 물과 공기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돈 없이는-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누구도 버티기 어렵다. 음식점은 물론, 병원 문턱도 넘을 수 없다.
사람들은 돈 벌기 위해 일하고, 돈의 위력에 허리 숙이며, 돈의 냉정함에 눈물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번 피 같은 돈으로 자식을 먹이고 가족의 삶을 지탱해 나간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돈을 만질 때, 처리과정과 용처를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반드시 탈이 난다. 수많은 매의 눈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에도 돈과 관련한 기사가 빠지지 않는다.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에서 7년간 무려 16억원을 횡령한 경리직원이 붙잡혔다. <관련기사 4면>
한 가지 지출항목을 현금과 지로로 이중처리하면서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빼돌린 것이다. 7년 동안 16억원을 가로채려면 어림잡아 매월 2,000만원씩을 빼냈다는 얘긴데, 어떻게 그런 일이 수년간 들키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결국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사고당시의 입대의 회장과 감사 등 7명에게 감시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예금잔고증명서와 지출결의서 등을 대조해 확인했다면 횡령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1억5,200만원을 입대의에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부산에선 균열보수 및 재도장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유부분의 창틀 코킹공사에 장기수선충당금을 쓴 입대의 회장이 후임 입대의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관련기사 6면> 
장충금은 아파트의 가장 특징적인 돈이다. 건물과 설비를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수선주기를 계산하고 그만큼의 돈을 매월 저축하도록 법으로 강제한 항목이다. 지금 쌩쌩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각종 시설들이 추후 고장 날 것에 대비해 미리 돈을 걷는다는 면에서 입주민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아파트는 외국의 사례처럼 슬럼화했을 확률이 높다. 내 재산가치를 오래 보존해주며,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준다는 차원에서 보면 좋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아파트 생활이 정착하면서 장충금의 존재를 모르는 입주민이 거의 없고, 공용부분을 위해서만 쓰인다는 사실 역시 상식이 됐음에도, 개별가구의 창틀공사에 장충금을 지출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
돈을 만지고 관리하다 보면 남의 돈을 내 돈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은 내 돈처럼 생각되면 더욱 아끼고 소중하게 관리하기 마련인데, 이런 유형의 사람은 진짜 내 돈조차 흥청망청 써버리고 한 푼도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공적 업무수행에 최악의 인물이다.
얼마 전 모 아파트에선 기혼의 기전기사가 기혼의 여성 입주민을 스토킹해 물의를 일으켰다가 해고된 일도 있었다.
경리담당이든 시설담당이든 관리직원 한 사람 뽑을 때마다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지만 사고는 예상치 못한 때 엉뚱한 곳에서 발생한다. 특히 돈 문제의 경우 평소 완벽하다고 믿었던 직원이 급격하게 기운 집안문제로 사고를 치기도 한다.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중국의 고사다. 멋진 말이긴 하나 그래도 가끔 한 번씩은 살펴봐야 한다. 특히 견제가 약한 회장이나 소장자리에 있는 사람은 부하직원뿐 아니라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공(公)돈은 공(空)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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