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월드컵 열기가 막바지인 요즘.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한국과 일본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두 경기에서 무기력한 플레이로 실망감을 안겼던 한국선수들은 세 번째 게임에서 세계랭킹 1위의 디펜딩챔피언 독일을 2대 0으로 제압해 파란을 일으키며 세계를 경악시켰다. 덕분에 한국은 뜻하지 않게 멕시코와 브라질의 형제국이 됐다.
어느 팀과 싸워도 웬만해선 지지 않는 독일은 세계축구에 공공의 적이었던 모양이다. 전통의 축구강국들도 독일 앞에선 한판 붙기도 전에 다리 힘부터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경기는 세계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기록됐다.
일본은 사진 한 장 때문에 전혀 다른 차원에서 국제적 이목을 끌었다. 사진 속 일본 선수들이 사용했던 러시아 경기장 라커룸이 새로 단장한 듯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날 일본은 2대 0으로 앞서 8강 진출이 손에 잡힐 듯 했지만, 막판에 내리 세 골을 내줘 2대 3으로 역전패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라커룸을 청소한다는 얘길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상식적으로 진 팀 선수들이 정리정돈을 완벽하게 하고 떠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더구나 일본에서 날아간 원정응원단까지 지고 나서도 경기장 스탠드를 청소해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이번 월드컵 덕분에 한국과 일본의 국격이 한 단계 오른 것 같아 흐뭇하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놀랍고 기쁜 일이 태국에서 일어났다. 지난달 23일 태국 유소년 축구팀 소속 10대 소년 12명과 20대 코치 1명이 훈련을 마치고 인근 동굴을 관광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타전됐다.
태국 해난구조 잠수대원 등 군인 600여  명과 미국, 영국, 중국, 필리핀 등 여러 나라의 해군, 특수부대 출신 전문가들이 자원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실종자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몇 날이 지나도록 함흥차사. 그렇게 잊혀 갈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열흘 만에 아이들이 발견된 것이다.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이들은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수로의 물이 불어나면서 동굴 안에 고립됐다. 정부와 국민이 희망을 놓지 않았고, 구조대가 물속을 5~6㎞나 전진하며 끈질기게 수색했다.
전 세계가 환호했다. 이 사건이 더 큰 이슈가 된 건 사고 당사자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 동량이라는 거창한 수사를 떠나, 어른에게 아이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아이들도 4년 전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배와 함께 바다에 빠진 우리 아이들은 정부와 해경의 서툰 대처로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자력으로 탈출했거나 다른 승객에 의해 구조됐을 뿐이다.
태국은 수천미터를 전진했고, 우린 수십미터도 허덕였다. 물론 세월호의 골든타임은 태국 동굴의 골든타임보다 훨씬 짧았다. 구조할 시간이 모자랐다고 핑계 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정부와 구조주체의 태도와 진심에 있다. 그날 그 시각 한국의 대통령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감히 어느 누구도 즉각 깨우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기가 차다. 휴일도 아닌 평일 근무시간에 야간 드라마광인 대통령은 그렇게 엄청난 참사를 꿈속에서도 돌보지 않았다. 세계인이 가슴 졸인 그 시간에….
생각해보니 태국의 아이들도 축구선수. 성인이든 유소년이든 축구선수들이 세계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쳐드는 의문 하나.
태국이 선진국인가, 한국이 선진국인가.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