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맡은 바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마을에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초입의 개가 먼저 짖어 이방인의 출현을 알리고, 이는 곧 후방으로 전파돼 모든 개들이 짖어댐으로써 주민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개들은 온 마을 사람의 체취와 발걸음까지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담장 밖의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가 외부인인지를 분간해낸다.
고양이는 쥐를 잡으면 반만 먹고 나머지 반은 주인의 방문이나 대청마루 앞에 전시해서 자신의 공과 사냥실력을 자랑한다. 선물의 성격도 있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서는 주인이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있지만, 칭찬을 해주면 고양이는 더욱 열심히 쥐를 잡아다 바친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신한 나머지 오버액션에 빠질 때도 있다.
평소 얌전하고 소극적이던 사람이 팔에 완장을 차게 되면 안하무인으로 돌변하는 것도 자신의 역할에 과도하게 매몰돼 상식과 몰상식의 경계를 스스로 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3월,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은 국토교통부, 경찰청과 합동으로 공동주택 외부감사 실태점검 및 합동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전해 전국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한 외부회계감사에서 조사대상의 20% 가까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받은 언론들은 ‘줄줄 새는 아파트 관리비’, ‘김부선 말 사실…아파트비리 공화국’, ‘관리비는 쌈짓돈? 전국 아파트 5곳 중 1곳 구멍’ 등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대서특필했다.
보도를 접한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온라인상엔 “그래서 눈에 불 켜고 동대표와 입주민대표 하려는 것 아니냐” “온천지 도둑이 들끓으니” “도적놈을 주민 손으로 뽑는다는 게 참 아이러니네” “관리비…어떤지 몰랐는데 잘 됐다. 도둑들을 다 잡아 감방에 보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 보도들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었다. 외부회계감사는 그 전부터 여러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아왔으며, 내용도 이미 공인회계사회의 발표를 통해 수차례 기사화된 것이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감사 지적사항을 분석한 결과 현금흐름표 미작성, 항목분류 등 회계처리 부적정, 장기수선충당금 과소적립 등이 대다수로 이는 회계교육 등을 통해 개선이 가능한 단순 업무미숙이었고, 횡령 등 형사처벌을 받을 만한 관리범죄는 2.5%(29건) 정도였다. 현재 현금흐름표는 공동주택 현실에 맞지 않아 ‘공동주택회계처리기준’에서도 삭제된 조항이다.
결국 이 보도들은 공인회계사회의 밥그릇 챙기기와 부패척결추진단의 한탕주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지난달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구성 사업자인 회계법인 등에 2015년 1월부터 최소 감사시간 100시간 기준을 준수해, 아파트 단지 외부회계감사 보수를 책정하도록 결정·통지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와 함께 형사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공회는 모든 공인회계사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법정단체로, 위와 같은 행위가 있었던 2015년에 아파트 단지 외부회계감사 보수수준(평균)이 213만9,000원으로 2014년도 96만9,000원에 비해 120.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선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내야 한다는 심리가 본능적으로 꿈틀거린다.
적발하지 못하면 부실감사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살 수 있고, 정말 비리가 없다면 감사무용론이 제기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애꿎은 지적 하나가 경리직원을 범죄자로 만들거나, 소장을 무능력자로 인식시키고, 주민대표를 돈 욕심에 눈먼 사람으로 낙인찍을 수 있다.
아파트회계는 기업회계와 체질적으로 다르다. 이에 따른 명확한 회계처리기준과 감사기준부터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공인회계사회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집단 중 하나다. 그런 지성인들이 완장과 밥그릇에만 탐욕의 눈길을 주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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