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달

열린세상 오정순l승인2018.03.27 15:08:48l10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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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 순  수필가


1월은 견디는 달, 2월은 기다리는 달, 3월은 꿈틀거리는 달이다. 대지는 새순을 올리느라고 꿈틀거리고, 학동기의 학생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호기심이 꿈틀거린다. 담임 선생님은 누구일까, 어떤 분일까, 짝은 누가 될까.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나 두려움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서 긴장도를 높이기도 하고 설렘이 일기도 한다. 가정에서는 묵은 학년 것들을 치우느라고 쓰레기통이 가득 찬다. 묵은 학습지가 뭉텅이로 버려지고 쓰던 노트도 묶음으로 나온다. 유치원에서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집에서는 장난감이 자루로 쏟아지고 헌 옷 버리는 곳에는 낡은 이부자리까지 한몫 거든다. 하나의 변화가 다양한 변화를 부른다. 학부모의 자세 또한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교회에서는 사순시기에 걸쳐 있어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생각하고, 성찰하고, 버리고, 치우고, 벗겨내는 작업을 하느라고 성서를 읽고, 쓰고, 묵상한 다음 영혼의 울림을 기록하는 중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삶의 테두리 안에 있다. 4대를 관찰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일을 가려내야 한다. 차근차근 마음을 정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건성으로 살게 될 것 같아 어딘가에 오래도록 감춰진 것들을 치우느라고 들쑤신다. 조용한 듯 바쁜 일상이 익숙해서 어려움을 덜 느끼지만 다양한 일들을 무리 없이 처리하고 살려면 늘 깨어있지 않고는 어렵다. 
추위가 물러가자 드디어 내게도 꿈틀거림이 찾아왔다. 모든 정리는 가장 가까운 자리부터 출발하자는 나의 신조대로 내 책상 서랍을 깊게 열어봤다. 아뿔싸, 거기에는 30년 남짓 그 자리를 버틴 필기구가 새것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의 친구가 내 집을 방문하면서 작가라고 필기구를 한 박스 사다 준 것이다. 마침 그 당시에 손 글씨에서 워드로 작업이 이동하던 시기라 나는 컴퓨터 자판 익히기에 전념하느라 그 필기구를 잊고 지냈다. 필기구뿐 아니라 원고지나 CD가 뭉치로 나온다. 뚜껑을 열어 써보니 이미 말라서 사용불가한 상태다. 버린 필기구가 쓰레기통으로 한가득이다. 지각해가며 변화의 꽁무니를 따라가느라고 혼쭐이 나서 미처 챙기지 못한 탓이다. 나는 이렇게 선물로 받은 내적 자산을 사용하지 않고 보유만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버리게 되는 일로 보여서 섬찟했다. 이렇게 꿈틀거릴 때는 주변 안팎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3월에는 자식을 키워낸 부모들이 모두가 추억 속으로 풍덩 들어가게 된다. 아리고 힘든 세월은 길고 기다림도 지루할 만큼 길었지만, 벅차고 황홀한 날은 잠시인 듯 변화의 연속이었다. 양파의 알뿌리가 크는 것도 한계가 있고 자손들을 키우는 데도 한계가 있어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 자손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추억을 곱씹어야 한다. 
날씨가 풀리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꿈틀거린다. 긴장이 풀리면서 움직이고 싶고 웃고 싶고 변화를 누리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학교보다 놀이공원으로 달리고 싶어 하고 노령의 어른들은 보고 싶은 자식들 얼굴이 아른거린다. 낀 세대들은 위아래로 사랑을 표현하느라고 갖은 노력을 다 쏟아 부어도 효과가 미진하다. 
지난 일요일, 나의 3세대가 손자들의 호칭인 왕할머니를 뵈러 출동했다. 사람이 그립기는 하지만 에너지가 부족한 노인은 어떻게 맞이할까 갈등이 생긴다. 게다가 늘 줘야 마음이 편한 노인은 효도 봉투를 드릴 텐데도 어린 손들에게 흡족하게 나눠 줄 것이 모자란다는 판단이 서는지 어려워 한다.  
나는 어느 정도 어머니의 심리적 정황을 이해한다. 그리고 말없이 진행한다. 내 아이들에게는 효도하라고 큰 봉투를 쥐어주고 어머니에게는 설날에 보지 못했으므로 세배하면 주라고 사람수 만큼 봉투를 쥐어줬다. 그리고 나는 식사하러 밖으로 따라 나설 것 같지 않아서 갖은 음식을 준비해 싣고 갔다. 
낀 세대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이러한 분위기는  창출하기가 어려워진다. 어른에 대한 연민의 정을 품고 예를 갖추고 산다는 것은 만사에 걱정이 적어야 가능하다. 소위 ‘내 코가 석자’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사랑을 품기란 소원한 일이다. 그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일상이 되고 만다. 
뭣이든 급하게 이루려고 서둘러 살다가 중도에 엎어지면 노년이 지옥이다. 느긋하게 모자란 듯 살면서 중요한 순서대로 에너지를 배분하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더 많이 꿈틀거렸으면 싶은 3월이다.    

 

 

 

오정순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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