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발전기 최대수요 때만 가동, 국가 지원금 받고 최신 장비도 교체

 

▲ 서울 황학동 롯데캐슬아파트(이영환 소장)

설치 후 5년간 월 40만원그 후 5년간 월 130만원씩 지원금 

2011년 9월 15일. 초유의 사고가 일어났다.
고층건물 승강기가 멈춰서 승객들이 갇히고, 각 사무실 전산작업이 중단됐다. 신호등이 꺼진 도로는 차량들이 뒤엉켜 뒤죽박죽에, 수산시장과 횟집 수족관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했다. 각 병원들은 환자보호를 위해 비상태세에 돌입하고, 음식점들은 장사를 포기하고 문을 걸어 잠갔다. 기계가동을 하지 못한 공장들도 일시에 손을 놔버릴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끊겼다. 최대 전력수요의 큰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9월 중순이었다. 당시 늦여름의 기세는 한여름 못지않게 맹렬한 폭염을 내뿜었고, 당초 예측보다 전력수요가 솟구치는 바람에 전국 곳곳에 전기가 공급되지 못하는 전력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현대인류에게 전기는 물과 공기 같은 존재다.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다 보니 그 소중함마저 잊고 지내다가 2011년과 같은 난리를 겪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전기수요는 날로 증대하고 있다. 문명화된 인간의 모든 생활행위 중 전기와 관련 없는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전기수요가 늘 일정하다면 문제될 게 없다. 적정량의 발전소를 가동하면 된다. 하지만 봄·가을과 여름·겨울의 전기사용량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여기로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편의만 생각한다면 최대 수요에 맞춰 발전소를 만들면 그만이지만, 건설과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발전소 건립 자체가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발전으로 수요를 맞추는 게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해를 덜 끼친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와 화석에너지발전소 줄이기 운동이 한창이다. 하지만 발전소를 늘이지 않고 증대하는 전력소모를 맞추는 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등장한 방안이 ‘급전(急電)지시’다. DR(Demand Response)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제도는 순환정전이나 대정전(Blackout)이 걱정될 정도로 예비율이 떨어질 때를 대비하는 비상대책을 말한다.
지난 2014년 처음 도입된 급전지시는 미리 계약을 체결한 기업들이 사전에 통보받으면 자발적인 기계가동 중지, 조업중단 등의 방법으로 전력소비 감축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많은 전기를 소모하는 대형업체들의 참여로 전체 국민의 혼란과 불편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발전소를 덜 지어 환경파괴도 줄일 수 있는 좋은 제도다.
급전지시 도입 초기엔 대기업 위주로 실행돼 왔지만, 아파트와 빌딩도 동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것도 입주민과 전기사용자에게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는 참신하고 획기적인 방법이다.
사용자에게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고도 정부의 전력수요 억제시책에 동참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답은 비상발전기에 있다. 지하에 가만히 앉아 1년에 서너 번 시험가동만 하면서 별 효용도 발휘하지 못한 채 자기수명을 다하고 마는 비상발전기를 전력소모가 최대치에 이르는 때에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엔 의외의 소득과 장점도 있다. 대부분 아파트와 빌딩들의 전기실엔 예기치 못한 정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대형 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유사시 한전 전기공급이 끊기면 엘리베이터와 급수펌프, 비상등, 소방시설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발전기를 가동해야 한다. 
이때 사용되는 장비가 ATS인데 이는 정전 시 비상발전 전원 쪽으로 부하를 이동시켜 발전기가 가동되도록 하는 자동절체 스위치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정전 시에만 가동되기 때문에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정전을 피하긴 어렵다. 예민한 전자장비는 순간정전 후 전기가 재공급돼도 멈춰서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제품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
그래서 DR사업에 참여하려면 CTTS장비가 필수다. CTTS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ATS와 달리 폐쇄형 절체를 통해 한전과 발전기 전원을 무정전으로 절체하는 스위치로, 순간정전 없는 ATS라고도 불린다.
한전의 상용전원과 비상발전 전원의 양쪽 전원을 동시 투입해 병렬운전시키다가 양 전원 간의 전압차와 주파수차를 검출, 동기화 조건을 확인해 제어방향으로 정전 없이 자동 이동해주는 이 장비는 ‘급전지시’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꽤 유용한 제품이다.
평상시 비상발전기를 시험가동할 경우 정전 방지를 위해 실제 전기를 공급하지 않는 무부하 운전을 하게 된다. 이는 디젤기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줌으로써 발전기 효율과 수명을 갉아먹는 역효과를 일으킨다. CTTS가 있으면 이런 걱정이 필요 없다. 한전 측 전기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발전기 전원을 공급하는 실부하 운전이 가능해 전기 전자제품에 영향을 주지 않고 실전 테스트가 진행되며, 발전기 고장 방지 및 수명 연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다만 CTTS 가격이 ATS에 비해 비싼 게 흠인데, DR사업을 신청하면 이 장비를 수용가 부담 없이 국가지원금으로 설치한다. 
여기에 전력거래소와의 감축이행 약정에 따라 급전지시에 의한 비상발전기를 가동하게 되면 계약감축량에 따라 보상금을 지원받는데, ‘용량정산금’과 ‘감축정산금’을 10년 동안 받을 수 있다.
이미 전국의 몇몇 아파트와 빌딩들이 이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1년 전쯤 DR사업에 참여한 서울 황학동 롯데캐슬아파트 이영환 관리사무소장을 만나 실제 효과를 들어봤다.
올해로 입주 10년차인 이 아파트는 지난해 9년 차를 맞아 ATS를 교체해야 했는데 이 사업 덕분에 장기수선충당금을 쓰지 않고도 더 고급사양인 CTTS를 설치하게 됐다며 흡족해 했다.
전력시설과 같은 핵심장비를 새롭게 도입하고, 생소한 사업에 참여할 때 고민이 없었는지 묻자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이견이 있을 법 했지만, 당시에 마침 한전 출신의 동대표가 이 사업의 국가적 타당성과 입주민의 이익, 그리고 전기시설 관리의 편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덕분에 의결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장비 교체 시의 곤란함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도 “어려운 점은 전혀 없고, 오히려 좋은 장비로 업그레이드돼 시설관리가 한층 수월해졌다”고 웃어보였다.
이 아파트는 설치 후 5년 동안 매월 40만원, 그 후 5년간은 매월 130만원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는다고 한다.
강력한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겨울, 4차례의 급전지시가 내려졌다. 그때마다 1시간 정도씩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한전 전기공급을 줄였다. 그만큼 경유가 소모됐지만 대신 전기요금을 아꼈고, 정부 지원금도 매달 나오고 있으니 발전기 가동에 따른 비용은 무시해도 될 정도다.

 

▲ 임기철 시설팀장


이 아파트 임기철 시설팀장은 “급전지시 때마다 발전기 실부하 가동을 하게 되니 별도의 시험운전을 할 필요가 없고, 거기에 더해 정부정책에도 도움이 되니 시설관리 담당자로서 매우 뿌듯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단 원한다고 해서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용가의 전체 전력사용량이 유효전력 500㎾ 이상인 아파트와 빌딩만 신청이 가능하다.
정부시책에 발맞춰 전력 위기를 극복하고, 고급장비를 설치해 핵심시설도 보호하며, 정부 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는 1석 3조의 DR사업.
국가 전체 전력 규모로 볼 때 한 개의 발전기 가동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국의 여러 아파트 단지가 이 운동에 동참하면 여러 개의 원자력발전소를 대체할 수도 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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